[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 20] 예루살렘에서 즈카르야의 집까지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3/04 [05:30]

[발또르따의 예수이야기 20] 예루살렘에서 즈카르야의 집까지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3/04 [05:30]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3. 28.

 

예루살렘 시내다. 이제 나는 그 거리와 성문들을 잘 알아본다.

 

마리아와 요셉이 맨처음 해야 하는 일은 성전으로 가는 것이다. 나는 성전에 예수님을 봉헌하던 날 요셉이 나귀를 맡겼던 마구간을 알아본다. 오늘도 그는 두 마리의 나귀를 손질한 다음 그곳에 맡기고 마리아와 함께 주님께 예배하러 간다.

예배를 마치고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어떤 집으로 가는데, 지인의 집인 것 같다. 두 사람이 그 집에서 식사한 다음, 마리아는 요셉이 작은 노인과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이분은 당신과 동행할 분이오. 친척집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혼자 갈 길은 얼마 되지 않을 거요. 이 노인을 믿으시오. 내가 잘 아는 분이오.”

 

그들은 다시 나귀에 올라탄다. 요셉은 성문(그들이 들어온 성문과는 다른 성문이다)까지 마리아를 배웅한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리아는 작은 노인과 함께 간다. 말수가 적은 요셉과는 달리 노인은 말이 많고 별별 일에 다 관심을 보이는데도, 마리아는 참을성 있게 대답한다.

 

지금은 안장 앞쪽에 요셉의 나귀가 실었던 작은 궤가 놓여 있고, 마리아는 겉옷도 입지 않은 채로 있다. 숄도 두르지 않고 개켜서 궤 위에 놓아두었다. 마리아는 파란 옷을 입고, 햇볕을 가려주는 흰 베일을 쓰고 있는데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항상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마리아가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것을 보면 작은 노인은 조금 귀가 먹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질문들과 소식들도 동이 나서 노인은 길을 잘 아는 짐승이 알아서 길을 가도록 놔둔 채 안장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마리아는 그 일시적인 침묵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기도드린다. 한 팔을 가슴에 얹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보니 기도하는 것이 틀림없다. 얼굴은 내면의 감동으로 인하여 밝고 행복해 보인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환상이 중단된 지금, 나는 어제와 같이 내 곁에 내적인 환상으로 볼 수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얼마나 확실하게 볼 수 있었던지 어머니의 초상을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약간 포동포동하지만 기분 좋게 부드러운 엷은 분홍빛 뺨, 선명한 붉은 색의 작은 입, 짙은 금빛 속눈썹 밑에 있는 다정하게 빛나는 파란 눈.


나는 머리 꼭대기에서 갈라진 머리가 어떻게 기분 좋게 세 개의 웨이브를 이루면서 양쪽으로 내려와 장밋빛의 작은 귀를 반쯤 덮고, 엷고 빛나는 금빛을 보이며 머리를 덮은 베일 뒤로 사라지는지 말할 수 있다. 나는 성모님이 천국에나 있을 것 같은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으시고, 겉옷을 머리에까지 쓰고 계신 것을 보는데, 그 겉옷은 베일처럼 가볍기는 하지만 옷과 같은 감으로 만든 것이다.

 

옷이 목을 꽉 조이고 있는데, 옷 속에 꿰어져 있는 끈의 두 끝은 목이 시작되는 곳 앞쪽에서 매듭지어져 있다. 목 부분과 비슷하게 허리는 더 굵은 끈으로 매져 있는데, 그 끈도 역시 흰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서 양끝에 달려 있는 술 두 개가 옆구리를 따라 내려뜨려져 있다.

 

목과 허리에 매진 옷의 가슴 부위에 부드럽고 둥글게 한 주름 일곱 개가 있는데, 이것이 그분의 지극히 정숙한 옷의 유일한 장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분의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순결을 알아볼 수 있고, 천사 같은 여인으로 보이게 만드는 그분의 지극히 우아하고 조화로운 몸가짐에서 풍기는 순결도 알아볼 수 있다.

 

성모님을 보면 볼수록 사람들이 그분을 어느 정도까지 괴롭혔는지를 생각하면 고통이 느껴진다. 육체적인 모습으로도 그토록 온유하고 친절하고 섬세한 그분을 어떻게 사람들이 동정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분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나는 그분을 향하여 질러대는 칼바리아의 아우성, 그분이 사형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분을 향하여 내뱉는 모든 조롱과 야유와 저주가 들리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성모님의 아름답고 평온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 모습도 예수님의 임종의 고통 때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예루살렘 집에서의 슬픔의 시간에 가지셨던 비참한 얼굴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를 쓰다듬어 드리고, 우아하게 발그레한 뺨에 입 맞추어 드려서, 성모님과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눈물들의 기억을 없애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모 마리아를 아주 가까이에서 모시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평화를 주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성모님을 보면서 죽는 것이 살아 있을 때의 가장 즐거운 시간보다도 더 즐거울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혼자서만 이렇게 그분을 온전히 뵙지 못한 요 근래에는 마치 엄마가 없는 것처럼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큰 괴로움이었다. 이제 나는 지난 12월과 1월 초에 느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다시 느낀다. 나는 행복하다. 수난의 고통을 보는 것이 내 모든 행복을 가리는 고통의 베일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수난 동안에 예수님이 고통당하시는 것을 본 2월 11일 저녁부터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슨 일을 당하였는지 말하고 독자에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보고서 나는 근본적으로 변하였다. 내가 지금 죽던 100년 후에 죽던 그 환상은 강함과 영향력을 그대로 보존할 것이다. 나는 그 전에는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했었는데, 지금 나는 그 고통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성화를 한 번 흘낏 보기만 해도, 그날 저녁 내가 당한 고통을 다시 당할 수 있고, 소름끼치는 그 고통을 다시 느낄 수 있다. 그분의 비탄에 잠긴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그 기억들이 내 마음을 찢어 대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말씀을 시작하신다. 그래서 나는 더 쓰는 것을 스스로 멈춘다. 
  

▲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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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내 가엾은 내 딸아, 네가 매우 피로해 있기 때문에 길게 말하지는 않겠다. 나는 단지 항상 기도를 제일 중요시하던 요셉과 나의 끊임없는 습관에 너와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를 원할 뿐이다. 피로, 급박한 상황, 근심, 일 따위는 결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지 못했다. 아니 그것들은 오히려 기도를 도왔다. 기도는 항상 우리 일의 여왕이었고, 우리의 위안이요, 빛이요, 바람이었다. 슬플 때에는 기도가 위안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에는 기도가 노래가 되곤 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충실한 벗이었다. 기도는 우리를 땅에서, 귀양살이하는 곳에서 떼어놓고, 우리를 천국 즉 고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어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께 예배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는 나는 물론, 요셉도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과 결합하여 있음을 느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을 흠숭하고, 그분의 포옹을 받음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녹아 버리는 우리 존재 전체의 참다운 예배이기 때문이었다.

 

기록해라. 비록 내가 내 안에 영원하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나도 성전에 대한 존경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아무리 높은 성덕도 하느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느님 영광에 대한 끝없는 찬미로 바꿀 의무를 우리에게 면제해 주지는 못한다. 하느님께서 그런 미약함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약하고, 보잘것없고, 허물이 많으냐? 주님의 거룩하심을 찬미해라.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고. 불행에 처한 너희를 도와 주십사고 그 복되신 거룩하신 분을 불러라. 하느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너희에게 주입해 주실 것이다. 너희가 거룩하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공로가 많으냐? 역시 똑같이 주님의 거룩하심을 간구하여라. 그 무한한 거룩하심이 너희 거룩함을 점점 더 자라나게 하실 것이다. 약한 인간보다 우월한 천사들도 ‘거룩하시다(Sanctus)’를 노래하기를 잠시도 그치지 않는데, 우리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부를 때마다 그들의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천사들을 본받아라.

 

기도의 보호에서 결코 벗어나지 마라. 기도는 사탄의 무기와 세상의 악과 육체의 욕망과 마음의 교만을 무디게 만든다. 하늘을 열어 거기에서 은총과 축복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려오게 하는 무기들을 결코 버리지 마라.

 

세상은 하느님의 벌을 끌어들이는 잘못을 깨끗하게 씻기 위하여 기도의 목욕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이므로, 그 소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수가 많은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그들은 살아 있는 기도를 증가시켜 은총을 얻는 데 필요한 분량을 채워야 한다. 기도에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 가미될 때 그 기도는 살아 있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 고통에 더해 내 고통과 내 예수의 고통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며, 공로가 되기 때문이다. 너의 동정하는 사랑이 나에게는 대단히 소중하다. 나에게 입 맞추기를 원하느냐? 내 아들의 상처에 입 맞추어라. 그 상처에 네 사랑의 향유를 발라라. 나는 영적으로 채찍과 가시의 아픔, 못과 십자가의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내 예수에게 주는 모든 사랑의 어루만짐도 영적으로 느끼는데, 그것은 그 회수만큼 나에게 입을 맞추는 것과 같다. 오너라. 나는 하늘의 여왕이지만 언제나 어머니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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