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25] 세례자의 봉헌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4/01 [10:11]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25] 세례자의 봉헌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4/01 [10:11]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1944. 4. 5.~6.

 

다음은 성주간의 수요일 밤부터 목요일까지 내가 본 것이다.

 

마리아의 어린 나귀도 매여 있는 편안한 마차에서 즈카르야, 엘리사벳, 어린 요한을 안고 있는 마리아가 어린양 한 마리를 데리고,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새장을 들고 있는 사무엘과 함께, 성전에 가는 모든 순례자들이 타는 짐승을 맡기기 위해 으레 들르는 마구간 앞에서 내린다.

 

마리아가 마구간 주인인 작은 노인을 불러 전날이나 이른 아침 에 나자렛 사람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대답한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놀란 표정을 짓지만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는다. 마리아는 사무엘에게 자기가 타고 온 어린 나귀를 매게 하고,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로 간다. 마리아는 요셉이 늦어지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한다.


“무슨 일이 있겠죠. 하지만 요셉은 오늘 분명히 올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주었던 아기를 다시 받아 안고, 그들은 성전으로 향한다.

 

즈카르야는 수위들의 경의와 다른 사제들의 인사와 축하를 받는다. 사제복을 입고 행복한 아버지로서 기뻐하는 즈카르야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는 마치 성조(聖祖)와도 같다. 나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기뻐할 때 즈카르야와 비슷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새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의 봉헌과 어머니의 정결례의 예식을 본다. 예절은 마리아의 봉헌 때보다 호화롭다. 요한이 사제의 아들이어서 사제들이 크게 환대하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많이 달려와서 여인들의 작은 집단과 갓난아기의 주위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일반 사람들도 호기심으로 다가와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들린다. 일행이 늘 가는 장소로 가는 동안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어서 사람들은 마리아가 어머니인 줄로 안다.

 

그러나 한 여인이 말한다.


“그럴 리 없어요, 저 여자가 임신한 게 안 보이세요? 아기는 생후 며칠 밖에 안 되었는데, 저 여자는 배가 불렀어요.”

 

“하지만,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은 저 여자 밖에 없어요. 다른 여자는 너무 늙었거든요. 친척이겠지만, 저 나이에 어머니가 될 수는 없어요.”


다른 사람이 말한다.

 

“저 사람들을 뒤따라가서 누구 말이 맞나 봅시다.”


정결례의 의식을 행하는 여자가 엘리사벳인 것을 보고 사람들의 놀람은 커진다. 엘리사벳은 울고 있는 어린양을 희생 제물로 바치고, 보속을 위하여 비둘기를 바친다.

 

“저 여자가 어머니예요, 보셨지요?”

“아니에요!”

“그렇다니까요.”

 

사람들은 아직도 믿지 못한 채 속삭인다. 그들이 하도 소리를 내는 바람에 예절에 참례하는 사제들의 집단에서 ‘쉿!’ 하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사람들이 잠시 입을 다문다. 엘리사벳이 거룩한 긍지로 빛나는 얼굴로 아기를 주님께 바치기 위해 성전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속삭이는 소리가 더 커진다.

 

“저 여자가 맞아요.”

“봉헌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머니잖아요.”

 

“이런 기적이 또 있었어요?”

“저렇게 늙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는 장차 무엇이 될까요?”

 

“이게 무슨 징조지요?”

“당신네들은 몰라요?”

 

숨이 턱에 차서 온 사람이 말한다.


“저 애는 아론 가문 즈카르야의 아들입니다. 지성소에서 향을 드리는 동안 벙어리가 되었던 사람의 아들이오.”

“신비요! 신비! 그런 사람이 지금은 말을 다시 해요! 그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의 혀가 풀렸어요.”

 

“어떤 영이 그 사람에게 말하고, 하느님의 비밀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라고 그의 혀를 마비시켰을까요?”

“신비예요! 어떤 진리가 즈카르야에게 계시되었을까요?”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닐까요?”

“아기가 유다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베들레헴에서 나지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메시아일 수는 없어요.”

 

“그러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대답은 하느님의 비밀 속에 남아 있고, 사람들의 호기심은 풀리지 않은 채로 있다.

 

예식이 끝났다. 사제들이 어머니와 아기에게도 축하의 말을 한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의 상태를 알아차리고는 멸시하듯 피하기까지 하는 오로지 한 사람, 그는 마리아다.

 

축하가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은 자리를 뜨고, 마리아는 요셉이 도착하였는지 알아보려고 여관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요셉이 도착하지 않아 마리아는 실망하여 생각에 잠긴다.

 

엘리사벳이 이 상황을 걱정한다.


“우리는 제6시까지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초경까지 집에 도착할 수 있도록 출발해야 합니다. 아기가 아직 너무 어려서 밤까지 있을 수는 없어요.”

 

마리아는 침착하고 슬프게 말한다.


“나는 성전 마당에 남아 있겠어요. 선생님을 찾아가 뵙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보겠어요.”

 

즈카르야가 다른 제안을 내놓자, 좋은 해결책이라며 그 제안이 이내 수락된다.


“제베대오의 친척집으로 갑시다. 마리아를 데리러 요셉이 틀림없이 그리로 올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오지 않으면 갈릴래아로 마리아와 동행할 사람을 만나기가 쉬울 것입니다. 겐네사렛의 어부들이 그 집에 끊임없이 왕래하거든요.”

 

그들은 마리아의 나귀를 찾아가지고 제베대오의 친척집으로 간다. 그들은 넉 달 전에 마리아와 요셉을 유숙시켰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요셉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리아는 아기를 흔들어 주면서 걱정을 억제한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더워서 모두들 땀을 흘리고 있지만 그녀는 겉옷을 벗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자기 몸의 상태를 숨기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마침내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셉이 왔음을 알린다. 마리아의 얼굴이 밝아져서 환히 빛난다.

 

마리아가 먼저 나가서 공손히 인사하고 요셉이 마리아에게 인사한다.

 

“마리아,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 위에 내리기를!”

 

“요셉, 당신께도요. 그리고 당신이 오신 것으로 인해주님을 찬미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밤이 되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떠나려던 참이었거든요.”

 

“일 때문에 내가 카나에 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전갈을 보낸 사람이 나자렛에 도착해서, 어제 저녁에 소식을 듣고 곧바로 출발해서 쉬지 않고 왔는데도 도중에 나귀가 편자 하나를 잃었기 때문에 늦어졌소. 나를 용서해 주시오.”

 

“이렇게 오랫동안 나자렛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저를 당신이 용서해 주셔야 해요. 하지만 보세요. 저분들이 저를 데리고 있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저분들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어요.”

 

“잘했소, 여보. 그런데 아기는 어디 있소?”

 

그들은 출발하기 전에 요한에게 젖을 먹이는 엘리사벳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요셉은 부모에게 아기가 건강한 것을 축하한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요셉에게 보이려고 젖에서 떼어내자 아기는 누가 때리기라도 한 듯이 울며 발버둥을 친다. 모두가 아기의 항의에 웃음을 터뜨리고, 심지어 신선한 과일과 우유와 빵과 생선을 담은 큰 접시를 가지고 달려온 제베대오의 친척들까지도 웃으며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마리아는 말을 별로 하지 않고, 한구석에서 조용히 겉옷 속으로 넣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가 우유 한 잔을 마시고 황금빛 포도 한 송이와 빵을 조금 먹으면서도 말은 별로 하지 않고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마리아는 걱정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요셉을 쳐다본다.

 

요셉도 마리아를 바라보다가 마리아의 어깨 위로 몸을 숙이고 묻는다.


“피곤하오? 어디 아프오? 얼굴이 창백하고 침울한데.”

“어린 요한의 곁을 떠나는 것이 슬퍼요. 저는 아기를 사랑해요. 아기가 태어난 후 줄곧 제가 안아 주었거든요.”

 

요셉은 다른 질문은 하지 않는다.

 

즈카르야가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차가 대문 앞에 멎고 모두가 가까이 다가간다. 두 사촌자매는 다정하게 얼싸안는다. 마리아는 벌써 마차 안에 앉아 있는 어머니 품에 아기를 안겨 주기 전에 아기에게 여러 번 입 맞춘 다음 즈카르야에게 인사하고 축복을 청한다.

 

마리아가 사제 앞에 무릎을 꿇을 때 겉옷이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면서 몸매가 여름날의 오후의 강한 빛 속에 나타난다. 요셉은 그 순간에 엘리사벳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마차가 멀어져 간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다시 들어오는데, 마리아는 아까 자기가 앉았던, 덜 환한 구석자리에 다시 가서 앉는다.

 

“밤에 길을 가는 것이 싫지 않으면 저녁 때 떠났으면 하는데 어떻소. 낮은 너무 덥지만 밤은 서늘하고 조용하오. 당신이 너무 햇볕을 쬐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말이오. 나는 삼복더위를 무릅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소. 하지만 당신은…”

 

“요셉, 당신 좋으실 대로 하세요. 그래요, 밤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집은 잘 정돈되어 있고 정원도 그렇소.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을 거요. 꽃이 만발한 때에 맞춰 가는 거요. 사과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넝쿨에는 전에 없이 열매가 많이 맺혔고, 석류나무 가지에는 근래에 전혀 볼 수 없었을 만큼 열매가 얼마나 많이 달렸던지 버팀 막대를 세워 주어야 했소. 그리고 또 올리브나무는…, 기름을 많이 얻게 될 거요. 마치 기적처럼 꽃이 많이 피었고, 하나도 그냥 떨어지지 않았소. 벌써 작은 올리브가 많이 맺혔소. 그놈들이 익으면 나무에는 흑진주가 가득 찰 거요. 나자렛 전체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사람은 당신 밖에 없소. 친척들까지도 그것에 놀라워하고 있는데, 알패오는 기적이라고 말하오.”

 

“당신이 손수 보살펴서 그렇게 잘 되었어요.”

 

“아, 아니오! 나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내가 뭘 했겠소. 단지 나무 손질 좀 해주고, 꽃에 물 좀 준 것뿐이오. 이것 봐요. 당신을 위해 샘을 하나 파 놓았으니 물 길으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소. 안쪽 동굴 근처까지 물을 끌어오고, 거기에 수반을 하나 갖다놓았소. 물은 마티아의 올리브나무 위쪽에 있는 샘에서 끌어왔소. 물이 맑고 풍부해요. 작은 개울을 통해 끌어 왔소. 잘 덮인 작은 수도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물이 흘러오면서 하프처럼 노래하오. 당신이 마을의 샘까지 가서 물 항아리를 들고 오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웠소.”

 

“요셉, 고마워요. 당신은 정말 친절해요!”

 

이제는 두 부부가 피곤한 듯이 말이 없고, 요셉은 졸기까지 한다. 마리아는 기도드린다.

 

저녁때가 되었다. 주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먹으라고 간절히 권하자 요셉은 빵과 생선을 먹고, 마리아는 과일과 우유만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기 위해서 나귀에 올라 준비한다. 올 때와 같이 요셉은 마리아의 궤를 자기 나귀에 실었고, 마리아가 나귀에 오르기 전에 안장이 제 자리에 놓여 있는지 살핀다. 나는 마리아가 나귀에 오를 때 요셉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일 이른 별들이 하늘에서 깜박이기 시작할 때에 길을 떠난다.

 

그들은 성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는데,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하려고 그러는 것 같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 갈릴래아로 가는 큰길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하늘 전체에 별들이 쫙 깔렸고, 들판은 아주 고요하다. 들리는 것은 오직 나이팅게일의 노래와 여름 가뭄으로 단단해진 길을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나귀들의 발굽 소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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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께서 말씀하신다.

 

“오늘은 성목요일 전날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환상이 상황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네 고통은 네 마음속에 있고, 즐거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마음속에 그대로 있다. 그것은 마치 불꽃에서 퍼지는 온기와 같은 것인데, 그것은 여전히 불기운이기는 하지만 불은 아니다. 불은 불꽃이지, 불꽃이 그 주위로 퍼뜨리는 미지근한 기운이 아니다.

 

지복을 주거나 깨끗하게 하는 어떤 환상도 네 마음에서 그 고통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그 고통을 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으로 여겨라. 사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평화로운 내 환상이 이 부활주간의 기념행사와 잘 조화되기도 한다.

 

요셉도 수난을 겪었다. 그 수난은 예루살렘에서 내 상태를 알아차렸을 때 시작되었고, 예수와 내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의 수난이 영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 남편 요셉의 성덕으로 인하여 그 고통이 그토록 격조 있고, 비밀스러운 형태로 유지되어 여러 세기를 두고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아! 우리의 첫 번째 수난! 누가 그 수난의 내적이고 말없는 강도(强度)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아직 이 신비를 요셉에게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내 청을 들어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내 고통을 누가 묘사할 수 있겠는가? 요셉이 그 신비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요셉이 평소처럼 경의만 가지고 대하는 것을 보고 알았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요셉이 알았더라면 그는 내 태중에 계신 그 말씀을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숭배의 행위로 흠숭하였을 것이고, 틀림없이 그가 드렸을 숭배를 받는 것을 나도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을 위하여, 마치 계약의 궤가 율법의 십계판과 만나의 그릇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이 내가 간직하고 있던 그분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주님께 헛되이 바랐다고 설득하며 나를 짓누르려고 애쓰는 낙망과 내가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아아! 나는 그것이 사탄의 분노였다고 생각한다! 의심이 내 어깨를 움켜잡고, 그 촉수를 뻗어 내 영혼을 사로잡고 기도를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몹시 위험하고 영혼에 치명적인 의심이 말이다. 치명적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실망’이라는 병, 자기의 영혼이 죽고 하느님을 잃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 힘을 다해 저항해야 하는 병의 첫 번째 공격이기 때문이다.

 

요셉의 고통, 그의 생각, 그의 애정에 있어서의 혼란을 누가 정확하고 진실하게 말할 수 있겠느냐? 커다란 돌풍에 휘말린 작은 배와 같이 서로 상반된 생각, 그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괴롭고, 더 찌르는 것 같은 상념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남 보기에 아내에게 배반당한 남자였다. 그는 자기의 좋은 평판과 세상 사람들의 존경이 아내로 인하여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었고, 자기가 고향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동정의 대상이 된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사랑과 존경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죽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요셉의 성덕은 내 성덕보다 훨씬 더 빛난다. 나는 그것을 아내로서의 내 사랑으로 증언한다. 그것은 지혜롭고, 신중하고, 참을성 있는 착한 이 사람, 내 요셉을 너희가 사랑하기를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구속의 신비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위해 그가 고통을 겪었는데, 그 구속을 위하여 고통으로 자신을 소진하였고, 자기의 성덕으로 자신을 희생한 대가로 너희 구세주를 건졌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그토록 거룩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적으로 행동하여 나를 간음한 여자로 고발해서 돌로 쳐 죽이게 하고, 나와 더불어 내 죄로 얻은 자식도 죽게 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가 덜 거룩했더라면, 하느님께서 그와 같은 시련 속에서 그를 인도하기 위한 빛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거룩한 사람이었다. 지극히 깨끗한 그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었다. 그의 안에 있는 사랑은 열렬하고 강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으로 요셉은 너희에게 구세주를 구해 주었다. 나를 원로들에게 고발하지 않은 것도 그랬고, 재빠른 순종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이집트로 데려간 것도 그랬다.

 

요셉의 수난 사흘은 숫자로는 짧았지만 그 강렬함은 깊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역시 엄청난 것이었는데, 내 최초의 수난이었다. 내가 수난을 겪은 것은 요셉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말하지 마라’ 하고 나에게 말씀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하여 그 괴로움을 그에게 완화시켜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나자렛에 도착하여 그가 간결한 인사를 한 뒤에 몸을 구부리고, 순식간에 늙어서 나를 떠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늘 하던 것처럼 저녁 때 내 집에 오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내 자녀들아, 눈물에 젖은 내 마음은 참으로 격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혼자서 내 집에 틀어 박혀, 모든 것이 천사의 알림과 성자의 강생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모든 것이 내 마음 속에 티 없는 동정으로 나와 결합한 요셉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 주는 집에 혼자 틀어 박혀 낙담과 사탄의 암시에 저항하고,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야 했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했다. 나는 또한 요셉의 의심과 정당하게 분개한 의인으로서의 격분을 용서해야 했다.

 

내 자녀들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개입해 주시는 은혜를 얻으려면 바라고, 기도하고, 용서해야 한다. 너희도 고난을 겪어야 한다. 너희 죄가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고 기쁨으로 바꾸는지를 너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 한없이 바라고,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너희가 용서받기 위하여 용서해라. 내 아들들아, 하느님의 용서는 너희가 갈망하는 평화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부활의 개선 후에는 침묵이 올 것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지금은 수난의 시기다. 너희 구속자가 견디어내는 것을 동정하고, 그의 한탄을 귀담아 들으며, 그의 상처와 눈물을 세어라. 그 눈물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고, 그의 상처들은 너희를 위하여 입은 것이다. 다른 환상은 어떤 것이든 그가 너희를 위하여 완수한 구속을 상기시키는 환상 앞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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