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0] 목자들의 경배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4/15 [14:30]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0] 목자들의 경배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4/15 [14:30]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6. 7. 성체성혈 대축일 전날

 

나는 스승이신 예수님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그분이 여기 계신다. 오랜 세월 후에, 나만을 위해 돌아오신 스승 예수님.

 

여러분은 아마 나에게 말할 것이다.


“아니, 무슨 소리냐? 네가 다시 듣고 보고 하는 것이 겨우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마침내 예수님을 맞이했다고 말하다니?”

 

나는 내가 말과 글로 여러 번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른 것이고, 특히 남들을 위해 보고 듣는 것과 순전히 나만을 위해 보고 듣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 나는 관찰자이고, 나는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옮기는 사람이다. 그것이 나에게 기쁨을 주지만―그것들은 항상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들이니까―말하자면 그것이 외적인 기쁨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말은 내가 그토록 분명하게 느끼는 것들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 나는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다. 요컨대 내 말은 내 기쁨은 좋은 책을 읽거나 아름다운 정경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 사람은 그 기쁨으로 감격하고, 그것을 맛보고, 그 조화에 감탄하며 생각한다. ‘저 사람의 처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듣고 보는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 때에는 ‘그 사람’이 나다. 그 사람인 내가 듣는 말이고, 내가 보는 얼굴이다. 그분과 나고, 마리아와 나고, 요한과 나다. 살아 있고, 실제적이고, 진짜고, 서로 가까이 있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내 침대 곁에 있거나, 방안을 왔다 갔다 하거나, 가구에 기대거나 앉거나 서거나 하는 사람들 즉 내 손님들과 같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환상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니 어제 오후부터 예수님이 여기 계신다. 상앗빛을 띤 흰 모직의 보통 옷을 입고 계신데, 하늘에서 입고 계신 옷, 너무 희어서 빛의 실로 짰다고 할 수 있을 비물질적인 아마포로 지은 것 같은 빛나는 옷과는 무게와 빛깔이 사뭇 다르다. 예수님의 손은 오래된 상앗빛처럼 희고 길고 날씬하며 아름답다. 예수님의 얼굴은 적갈색을 띠는 번쩍이는 밤색 속눈썹 사이에서 짙은 청옥색의 위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눈이 빛나는 길고 흰 아름다운 얼굴이시다. 예수님은 여기서는 길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금발을 하고 계신다. 햇빛에 노출되는 부분은 더 선명하고, 굽이진 안쪽은 어두운 적갈색 금발이다.

 

예수님이 여기 계신다! 그분이 여기 계신다! 나를 향해 미소 지으시고, 당신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신다. 비아렛지오에서 하시던 것과 같이, 또 성주간 후부터는 중단하셨던 것과 같이…. 그 중단으로 인해 나는 거의 절망적인 열병이라도 되는 것 같은 그 모든 슬픔을 느꼈다. 그분을 잃은 고통에다 그분을 보았던 그곳에서 살기만이라도 하는 기쁨을 빼앗기는 고통이 덧붙여졌을 때에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나는 그분을 본 그곳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분은 여기 기대셨고, 여기 앉으셨고, 여기서는 몸을 굽혀 내 머리에 손을 얹으셨다.”

 

그곳은 또 내 부모님들이 임종하신 곳인데. 아아!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아니다, 내가 이 모든 호의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거저 주시는 은총이며, 은총들이 주어졌을 때 오래 계속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총을 많이 받을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아름다움과 하느님의 부 앞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비참함을 인정하면 우리 자신을 한층 더 겸손하게 낮출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신부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아내는 남편을 보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서나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들을 보지 못할 때에는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산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지 않습니까? 만일 그곳을 떠나야 한다면, 거기 없는 사람이 그들이 함께 사랑을 나눈 장소도 잃었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까? 이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제 경우는요? 예수님은 제 아버지요 정배가 아니십니까? 아버지나 남편보다 더 소중하고, 훨씬 더 소중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저에게 그런 분이시라는 것은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 보시고 판단하십시오. 저는 정말 고통당했습니다. 아시지요? 저는 제 어머니의 모진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직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 보셨지요? 예수님께서 거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어머니보다도 더 소중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저는 고통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괴로웠던 것보다 여덟 달이 지난 어머니의 죽음을 지금 더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지난 두 달 동안 나를 위해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고, 저 자신을 위해 성모 마리아를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분들이 저를 잠시 내버려 두시기만 해도 그 어느 때보다도 병든 고아로서의 슬픔을 더 느끼게 되고, 인간적으로 힘들었던 그 무정한 날들의 쓰라린 고통에 다시 잠기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의 면전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과장하지도,왜곡하지도 않는다. 과장이나 사실의 왜곡이 내 방식은 아니지만, 설령 내가 그런 방식을 쓸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분이 보시는 앞에서 그것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곳에서 이것을 썼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환상에 관해서는 비천한 자아를 개입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성모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모 마리아의 모성이 모든 순간에 영광의 화관이 아니었던가?

 

나는 심하게 병든 몸이고, 기진맥진해 있어 글을 쓰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가 더 사랑받으시도록 알려야 할 때에 나는 계산하지 않는다. 어깨가 아픈가? 심장이 약해지는가? 머리가 아픈가? 열이 오르는가? 상관없다! 마리아가 내가 보는 바와 같이 하느님의 인자와 당신의 착함으로 지극히 아름답고 다정스러운 분으로 알려지기만 하면 나는 만족한다.

 

나중에 나는 넓은 들판을 본다. 달은 중천에 올라와서 별이 총총 박힌 하늘을 조용히 가로질러 간다. 별들은 짙은 파란색 벨벳으로 만든 거대한 천개에 박힌 금강석 못처럼 보인다. 달은 그 한가운데에서 그 새하얀 얼굴로 웃고 있는데, 그 얼굴에서 젖빛을 띤 광선이 강물처럼 내려와 밤의 풍경을 온통 흰빛으로 감싼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은 이 흰 빛깔 위에 더 크고 우중충하게 부각되고,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낮은 담장들은 엉긴 우유와도 같다. 멀리 보이는 작은 집은 까라라의 대리석 벽돌 같다.

 

내 오른쪽의 양면은 가시덤불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고, 나머지 양면은 낮고 투박한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 보인다. 이 담은 창고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그 창고의 울타리 안쪽 일부분은 돌로 지어져 있고, 일부분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여름에는 나무로 된 부분을 치워서 창고가 문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거기에서 가끔 단속적이고 짧은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꿈을 꾸거나 달빛 때문에 새벽이 가까운 줄로 생각하는 양들이다. 지나치다고 할 만큼 강렬한 빛인데, 별이 땅 가까이 오거나 알 수 없는 화재로 인하여 번쩍이는 것같이 점점 더 밝아진다.

 

목자 한 사람이 문지방으로 나온다. 그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이마 높이까지 올리고 공중을 쳐다본다. 달빛에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달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눈이 부시다. 특히 컴컴한 울안에서 나오는 사람의 눈이 부시다. 목자가 동료들을 부르자 모두 문으로 나온다. 다양한 연령층의 덥수룩한 남자 무리다. 청소년들도 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상한 사실을 이리쿵저리쿵 말하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무서워한다. 특히 열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울기 시작하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놀린다.

 

“뭐가 무서우냐? 이 바보야.”


가장 연장자인 사람이 말한다.

 

“하늘이 조용한 걸 보지 못하니? 넌 달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넌 알을 품은 암탉의 날개 밑에 있는 병아리처럼 늘 엄마 치마꼬리나 쥐고 있었단 말이냐? 앞으로 별별 일을 다 보게 될 거다! 한번은 내가 레바논 산맥 너머로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난 젊어서 걸어도 피곤하지가 않았지. 그리고 그 시절엔 부자이기도 했어. 어느 날 밤, 난 빛을 보았는데 그 빛이 어찌나 강하던지 엘리야가 불 수레를 타고 돌아오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늘이 온통 불타고 있었다. 한 노인이―그 노인은 엘리야였다.―나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세상에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에겐 그것이 로마 군인들의 점령이라는 재앙이었다. 아! 너도 오래 살다보면 별일 다 볼 거다.”

 

목동은 노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가 문지방을 넘어 숨어있던 실팍한 목자의 어깨 뒤에서 살짝 빠져 나와 헛간 앞에 있는 풀 덮인 우리로 나간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몽유병자처럼 뭔가에 완전히 사로잡혀 정신을 빼앗긴 것같이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오!” 하고 외친다. 그리고 팔을 약간 벌리고 화석이 된 것같이 서 있다. 다른 목자들이 놀라서 서로 바라본다.

 

“아니 대관절 저 바보가 왜 저러지?”


누군가가 말한다.

 

“내일 저 녀석을 제 어머니한테 도로 데려다 줄 테다. 미친놈에게 양들을 지키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러자 앞서 말한 늙은이가 말한다.


“가서 보고 나서 판단하세. 자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깨우고 몽둥이들을 가져오게. 어쩌면 못된 짐승이나 강도들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들은 들어가서 다른 목자들을 부르고 횃불과 곤봉들을 들고 와서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간다.

 

“저기, 저기….”


어린이가 미소 지으면서 속삭인다.

 

“나무 위에 있는 저 불빛을 보세요. 달빛을 타고 오는 것 같아요. 가까이 오고 있어요. 아름답기도 해라!”

“나는 상당히 밝은 불빛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도.”

“나도.”


다른 목자들이 말한다.

 

“아니야, 난 몸뚱이같이 생긴 것이 보여.”


또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나는 그가 마리아에게 양젖을 준 목자임을 알아본다.

 

“처…, 천사예요!”


어린이가 외친다.

 

“내려와 가까이 오고 있어요. 땅에 엎드리세요! 하느님의 천사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목자들의 무리 가운데에서 길고 공손한 “오!” 소리가 들리고, 그들이 얼굴을 땅에 숙이고 엎드리는데, 노인들은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이 발현에 더 놀라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무릎을 꿇고 천사를 쳐다본다. 천사는 점점 가까이 와서 큰 날개를 펴고 둘러쳐진 담 위 공중에 멈춰 선다. 천사를 둘러싸고 있는 흰빛 속에서 두 날개가 흰 진줏빛으로 빛난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아요.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 세상의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을 선언합니다.”


천사의 목소리는 나이팅게일의 목소리를 연주하는 듣기 좋은 하프소리 같다.

 

“오늘 다윗의 도시에 구세주가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천사가 날개를 점점 넓게 펴고 벅찬 기쁨의 표시로 날개를 흔들자 빛나는 금은보석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 같다. 초라한 목장 위에 개선문을 그려 놓는 참다운 무지개다.

 

“그리스도이신 구세주가 태어나셨어요.”

 

천사는 더 반짝이는 빛으로 빛나고, 이제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두 날개는 청옥색 바다 위에 움직이지 않고 있는 두 폭의 돛 같고, 타고 있는 두 줄기 불꽃같다.

 

“그리스도, 주님!”

 

천사는 빛나는 날개를 접고, 마치 진주로 지은 옷을 금강석으로 지은 웃옷으로 가리듯이 날개로 몸을 가리고, 가슴을 두 팔로 감싸고 경배하기 위한 것처럼 숙였기 때문에 접힌 날개 윗부분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대영광송 한 번 욀 만한 시간동안 움직이지 않는 길고 빛나는 형체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 천사가 움직인다. 그는 날개를 다시 펴고, 빛이 천국의 것과 같은 미소로 피어나는 얼굴을 들고 말한다.

 

“다음 표로 여러분은 그분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베들레헴 뒤편에 있는 초라한 외양간에서 배내옷에 싸여 짐승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입니다. 다윗의 도시에 메시아를 위한 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엄숙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그와 비슷한 천사들의 무리가 내려온다. 아아! 얼마나 많은 무리인가! 천사들이 환호하며 사다리 모양으로 내려와 천국의 빛으로 달빛을 흐리게 한다. 천사들은 예수의 탄생을 알린 천사 주위에 모여서 날개를 흔들어 향기를 풍기며 천상의 화음을 들려준다. 거기에는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가 모두 모여 있는 듯하다.

 

그림이 빛이 되려는 물질의 표현이라면, 여기서는 아름다운 곡조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암시하는 음악의 표현이다. 이 멜로디를 듣는 것은 천국을 알게 되는 것인데, 거기서는 모든 것이 복된 영혼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발산되고 그들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와 “저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는 사랑의 조화이다.

 

천사들의 ‘영광송’은 고요한 들판에 빛과 함께 점점 더 넓게 퍼진다. 새들도 이 빛을 환영하기 위해 자기들의 노래를 합치고, 양들도 미리 찾아온 이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울음소리를 곁들인다. 동굴에서 소와 나귀에 대해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이것이 짐승들이 사람으로서뿐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그들을 사랑하시려고 그들 가운데 오신 창조주께 인사드리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다가 노랫소리가 천천히 줄어들고 빛도 약해지면서 천사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목자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들었어?”

“가 볼까?”

 

“짐승들은 어떡하고?”

“뭐! 별일 없을 거야. 하느님 말씀을 따르러 가세!”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아기가 오늘 태어났고, 베들레헴에서 방을 구하지 못했다고 천사가 말하지 않았어?”

 

양젖을 준 목자가 말한다.


“가세. 내가 아네. 나는 한 여자를 보았는데, 불쌍한 생각이 들었네. 그 여자가 방을 얻지 못할 걸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한 장소를 알려 주었어. 그리고 여자에게 먹이라고 남자에게 양젖을 주었어. 그 여자는 아주 젊고 대단히 아름다워. 우리한테 말한 천사만큼 착할 게 틀림없어. 양젖과 치즈, 어린양과 무두질한 양가죽을 가지러 가세. 그 사람들 틀림없이 매우 가난할 거야, 그런데 감히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아기가 얼마나 추워 할지 누가 아나! 그리고 내가 하찮은 여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기 어머니에게 말한 것을 생각하니!…”

 

그들은 헛간으로 갔다가 잠시 후에 어떤 사람은 양젖 그릇을,어떤 사람은 골풀로 짠 그물에 싼 둥근 치즈를, 어떤 사람은 우는 어린양을, 어떤 사람은 마감질을 한 양가죽을 가지고 나온다.

 

“나는 한 달 전에 새끼를 낳은 양을 가지고 가겠네. 요놈 젖이 아주 훌륭해. 만일 그 여자가 젖이 부족하다면 양젖이 유용할지도 몰라. 그 여자는 아주 어려 보였어. 아주 창백하고… 달빛을 받은 재스민 색깔이었어.”


양젖을 준 목자가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들은 헛간과 울타리 문을 닫고, 횃불로 길을 밝히며 달빛 비치는 길을 간다. 겨울이라 잎이 떨어진 가시나무 울타리들 사이로 들판의 오솔길을 간다. 그들은 베들레헴을 한 바퀴 돌아 외양간에 이르렀는데, 마리아가 왔던 길로 오지 않고 반대쪽으로 왔다. 그들은 더 나은 동굴들 앞을 지나지 않고 목적지를 곧 발견하여 입구로 가까이 간다.

 

“들어가!”

“난 감히 못 들어가겠어.”

 

“자네가 들어가게.”

“아니야.”

 

“들여다보기라도 해.”

“천사를 제일 먼저 본 레위, 네가 우리보다 낫다는 표니, 네가 들여다보아라.”

 

그들은 처음에는 그 꼬마를 미치광이로 취급했으나, 지금은 자기들이 감히 못하는 것을 해야 한다면서 그를 추켜세운다.

 

소년은 망설이다가 결단을 내리고, 입구로 가까이 가서 겉옷을 조금 젖히고 들여다보다 황홀해져서 딱 멈춘다.

 

“뭐가 보이니?”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묻는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구유에 몸을 숙이고 있는 남자가 보이고, 소리도 들려요. 아기 우는 소리하고 여자가 아기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요. 오, 기막힌 목소리예요!”

 

“뭐라고 하니?”

 

“‘내 아기 예수야! 네 엄마의 사랑 예수야! 울지 마라, 아가!’ 하고 여자가 말해요. ‘아아! 너에게 ’아가, 젖 먹어라” 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엄마는 아직 젖이 나오지 않는단다!’ 또 이렇게 말해요. ‘내 사랑아, 몹시 춥지! 건초가 찌르지. 네가 이렇게 우는 소리를 들으니 엄마는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다!’ 또 이렇게 말해요. ‘내 어린 것아, 자거라! 네 우는 소리를 듣고 네 눈물을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여자가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손으로 작은 발을 녹여 주고 있어요. 여자는 구유에 손을 내려뜨리고 몸을 숙이고 있어요.”

 

“그 여자를 불러라!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라!”

“난 싫어요. 차라리 우리를 인도했고 저 여자를 아는 아저씨가 부르세요.”

 

목자는 입을 벌리고 요란한 한숨만 내쉬고 만다.

요셉이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온다.


“누구세요?”

 

“목자들입니다. 먹을 것과 양털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그들이 외양간으로 들어서자 외양간이 횃불로 환해진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앞으로 민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오세요. 오세요!”

 

마리아가 손과 미소로 그들을 인도하고, 천사를 본 소년을 구유 가까이에 있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자 소년은 기뻐하며 들여다본다.

 

다른 목자들도 요셉의 권유로 선물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와 짤막한 감격의 인사말을 하고 선물들을 마리아의 발 앞에 내려놓는다. 그런 다음 가만히 울고 있는 갓난아기를 들여다보며 감격하고 행복해서 미소 짓는다.

 

그중 대담한 한 사람이 말한다.


“아기 어머니, 받으세요, 이건 부드럽고 깨끗합니다. 머지않아 저희 집에서 태어날 아기를 위해 준비했지만 이걸 당신께 드립니다. 아드님을 이 양털 속에 눕히세요. 부드럽고 따뜻할 겁니다.”


털이 새하얗고 긴 매우 아름다운 양가죽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들어 올려 양가죽으로 싼다. 마리아가 아기를 목자들에게 들어보이자 그들은 땅바닥에 깔린 건초 위에 무릎을 꿇고 황홀해서 쳐다본다.

 

그 중 한 사람이 대담하게 제안한다.

 

“아기에게 양젖 한 모금을 주어야 합니다. 꿀물은 더 좋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꿀이 없어요. 갓난아기들에게는 꿀을 주는 게 좋은 건데. 저에게는 아이가 일곱이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알지요.”

 

“여기 양젖이 있어요. 아기 엄마, 받으세요.”

 

“하지만 젖이 찬 걸. 따뜻한 젖이 있어야 해. 엘리야, 어디 있나? 그 사람이 양을 가지고 있는데.”

 

엘리아가 양젖을 준 사람인 모양인데 여기에 없다. 그는 밖에 남아서 틈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며 밤의 어둠 속에 숨어 있다.

 

“누가 이리로 데려왔어요?”

“천사가 우리에게 가 보라고 말했고, 엘리야가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이 어디 있나?”

 

양이 우는 바람에 그의 위치가 탄로나고 만다.


“이리 오게. 자네를 찾는 중일세.”

 

많은 사람들이 권유하는 바람에 그가 망설이며 양을 데리고 들어온다.

 

“당신이오?”


요셉이 그를 알아보고 말한다. 그리고 마리아는 미소를 보내면서 말한다.

 

“아저씨는 착하십니다.”
 
그들이 양젖을 짜자, 마리아는 거품이 이는 따뜻한 양젖에 린넨 천 끝을 담가서 아기의 입술을 적시자 아기가 달콤한 크림을 빤다.

 

그들 모두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입술에 천 귀퉁이를 문 채 예수가 따뜻한 양털 속에서 잠이 들자 한층 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여러분은 여기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춥고 축축해서요. 그리고 또…, 이 짐승들 냄새! 좋지 않습니다. 구세주께 이건 좋지 않습니다.”

 

“알아요. 그렇지만 베들레헴에는 우리가 있을 자리가 없는 걸요.”


마리아가 크게 한숨지으며 말한다.

 

“용기를 내세요. 아기 어머니, 저희가 집을 구해보겠습니다.”

 

“저는 저희 여주인에게 말하겠습니다.”


양젖을 준 사람인 엘리야가 말한다.

 

“저희 여주인은 착합니다. 자기 방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저희 주인 집은 꽉 찼지만 자릴 내줄 겁니다.”

 

“최소한 아기만을 위해서라도, 요셉과 저는 땅바닥에서 자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아기는…”

 

“아기 어머니, 한숨짓지 마세요. 우리가 들은 말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부족한 게 없을 겁니다. 지금은 가난한 우리가 드리는 걸 받으세요. 저희는 목자들입니다.”

 

“우리도 가난하오. 그래서 당신들에게 아무것도 보상해 줄 수 없구려.”


요셉이 말한다.

 

“아! 우리는 보상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들이 보상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원치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이미 보상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천사들은 ‘마음이 착한 이들에게 평화’ 하고 말했어요. 우리에게 이미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 아기가 구세주,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천사가 말했거든요.

 

우리는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구세주는 평화의 왕이라고 예언자들이 말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천사가 우리에게 아기에게 가서 경배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또 그분의 그리스도이신 아기에게도 영광! 아기를 낳은 어머니, 축복받으세요! 당신은 그리스도를 가질 자격이 있었으니 거룩합니다! 여왕으로서 저희에게 명령하세요. 당신을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기쁨이니까요. 당신에게 뭘 해 드릴 수 있을까요?”

 

“내 아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신가요? 당신 아들이 났다는 것을 알려야 할 친척도 없습니까?”

 

“예,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이 근처에 있지 않고 헤브론에 있습니다.”

 

“제가 거기 다녀오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엘리야가 말한다.

 

“사제 즈카르야와 사촌언니 엘리사벳입니다.”

 

“즈카르야님, 아! 전 그분을 잘 압니다. 여름에는 좋은 풀이 많은 그곳 산으로 가지요. 그리고 전 그분의 목자와 친구입니다. 아기 엄마가 자리 잡게 되면 즈카르야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엘리야,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가난한 목자인 저에게는 사제에게 가서 ‘구세주가 태어나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아니에요. ‘사제님의 사촌 나자렛의 마리아가 예수가 태어났다고 베들레헴으로 오시라고 하더라’고 말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당신들 모두를 기억하겠습니다.”

 

“아기에게 저희에 대해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예.”

“저는 엘리야입니다.”

 

“저는 레위에요.”

“저는 사무엘입니다.”

 

“저는 요나고요.”

“저는 이사악입니다.”

 

“저는 토비아에요.”

“저는 요나탄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니엘입니다.”

“저는 시메온이고요.”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저는 요셉이고, 제 동생은 벤야민입니다. 저희는 쌍둥이지요.”

 

“여러분의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저희는 가야 하지만 또 올 겁니다. 저희는 다른 사람들도 경배하도록 데려오겠습니다!”

 

“아, 우리는 아기를 두고 어떻게 목장으로 돌아가지?”

“아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아기 옷에 입 맞추게 해 주세요.”


레위가 천사와 같이 웃으며 말한다.

 

마리아가 예수를 살며시 들고, 건초에 앉아서 린넨 천으로 싼 조그만 발에 입 맞추라고 내민다. 수염이 있는 사람들은 먼저 수염을 닦는다. 거의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떠날 때에는 마음을 구유 곁에 남겨둔 채 뒷걸음질로 나간다.

 

환상은 이렇게 끝난다. 마리아는 아기를 안고 짚 위에 앉아 있고, 요셉은 구유에 팔꿈치를 괴고 아기를 바라보며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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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은 내가 말하겠다. 너는 대단히 피로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라. 오늘은 성체성혈 대축일 전날이니, 나는 성체와 성체 공경의 사도들이 되었던 성인들에 대해서 말해 줄 것이다. 성심(the Sacred Heart)의 사도가 된 성인들에 대해서 말해 준 것처럼 다른 것에 대하여, 즉 내 몸 공경의 선구자들의 범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선구자들은 사람이 된 말씀(the Word)인 내 몸의 첫 번째 숭배자들인 목자들이다.


나는 언젠가 무죄한 어린이 성인들이 그리스도 최초의 순교자들이라고 너에게 말했고, 내 교회도 그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목자들은 하느님의 몸을 맨 처음 숭배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내 몸의 숭배자, 성체적인 영혼이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질이 있다.

 

확고한 믿음. 그들은 천사의 말을 빨리 무조건 믿는다.

 

너그러움. 그들은 재물 전부를 주께 드린다.

 

겸손. 인간적으로는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지 않는 행위로 조심성 있게 가까이 가서 자기들이 그들의 종이라고 말한다.

 

소원. 그들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은 용기 있는 열성으로 빨리 마련해 주려고 애쓴다.

 

재빠른 순종. 마리아가 즈카르야에게 통지하기를 희망하자 엘리야가 즉시 그리로 간다. 뒤로 미루지 않는다.

 

끝으로 사랑. 그들은 차마 구유를 떠나지 못한다. 너는 ‘그들이 마음은 거기 남겨 놓았다’고 말했지. 네 말이 맞다.

 

내 성체에 대해서도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건 다른 이야기다마는 너만을 위해서 말한다. 천사가 누구에게 먼저 나타나는지, 또 누가 마리아의 애정 어린 환대를 받았는지 유념해라. 바로 어린 소년 레위다. 어린이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보이시고,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신다. 그에게는 하느님의 말씀과 마리아의 말을 듣도록 허락하신다. 그리고 어린이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은 레위와 같은 거룩한 대담성을 가지고 ‘예수의 옷에 입 맞추게 해 주세요’ 하고 말한다.

 

그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마리아는 항상 예수를 너희에게 주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성체를 모시고 있는 마리아, 살아 있는 성합인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가는 사람은 나를 만난다. 마리아에게 나를 청하는 사람은 그를 통하여 나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내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예수를 사랑하도록 예수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하면 내 어머니의 미소가 하늘을 더 강하고 명랑한 광채로 빛나게 한다. 그만큼 내 어머니는 그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말해라. ‘예수님의 옷에 입 맞추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상처에 입 맞추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더 용감하게 말해라. ‘제 머리를 어머니의 예수 가슴에 얹고 거기서 지복을 얻어 내게 하십시오.’
 
와서 요람에 있는 예수처럼, 예수와 마리아 사이에서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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