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7] 예수에게 처음으로 일을 가르침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5/13 [07:12]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37] 예수에게 처음으로 일을 가르침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5/13 [07:12]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3. 21.

 

나는 비가 오다가 갑자기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내 어린 예수가 기분 좋게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는 다섯 살쯤 된 어린 소년으로서정원에서 흙을 가지고 논다. 작은 무더기들을 만들고, 축소된 작은 숲을 만들려는 듯 그 무더기에 나뭇가지들을 꽂는다. 그는 조약돌들로는 길을 만들고, 작은 야산들 밑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접시 조각을 가져다가 가장자리까지 땅에 파묻은 다음 빨래하거나 작은 정원에 물을 주는 데 쓰이는 웅덩이에서 물을 퍼서 그 물을 땅에 묻은 접시 바닥에 붓는다. 그러나 아기는 고작 자기의 옷을, 특히 소매를 적시는 일밖에는 하지 못한다. 물은 금이 가거나 어쩌면 틈이 벌어진 접시 밑바닥으로 새 버리고, 호수에는 물이 말라 버렸다.

 

요셉이 문지방에 나타나더니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아기가 노는 것을 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것은 정말 행복하게 미소 짓게 하는 광경이다. 그러다가 그는 아기가 옷을 더 적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부른다. 예수는 방긋 웃으면서 돌아서서 요셉을 보고는 두 팔을 벌린 채 그에게 달려간다. 요셉은 더러워지고 젖은 작은 손을 짧은 작업복 한 귀퉁이로 닦아 주고 예수에게 입을 맞춘다. 다정한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간다.

 

예수는 그의 일과 놀이와 그것을 만들기가 어려운 점을 설명한다. 예수는 겐네사렛 호수와 같은 호수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나는 아기 예수에게 겐네사렛 호수 이야기를 해 주었거나 그리로 데려갔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아기 예수는 조그만 호수를 만들려 하였다. 여기는 티베리아스고, 저기는 막달라, 좀 더 먼 데는 카파르나움이다. 이것은 카나를 거쳐 나자렛으로 가는 길이다. 아기는 호수에 작은 배들을 띄우려고 하였다. 이 나뭇잎들은 저쪽 호수 기슭으로 가는 배들이다. 그런데 물이 새나가다니…
 
요셉이 지켜보며 그것이 마치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내일 작은 호수를 만들되, 이 빠진 접시를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피치와 벽토를 바른 작은 나무대야를 가지고 만들어 그 안에 요셉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 작은 나무배들을 띄울 수 있게 하자고 요셉이 제안한다. 마침 예수가 힘들이지 않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일부러 작게 만든 연장들을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그럼 내가 아버지를 도울 수 있을 거야.”


예수가 방긋 웃으면서 말한다.

 

“너는 훌륭한 목수가 되어 나를 도와주게 될 거다. 와서 봐라.”

 

그들은 작업장으로 들어간다. 요셉은 어린 예수의 키에 맞는 작업대, 아기 목수 작업대에 늘어 놓은 작은 망치, 작은 톱, 조그만 드라이버들, 작은 대패를 예수에게 보여 준다.

 

“잘 봐라, 톱질을 하려면 나무를 놓고 이렇게 누른다. 톱은 이렇게 잡고, 손가락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톱질을 한다. 해 봐라.”

 

수업이 시작된다. 예수는 힘을 쓰기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다. 그는 입술을 꼭 다물고 조심해서 톱질을 한다. 그런 다음 작은 널빤지에 대패질을 한다. 널빤지가 좀 구부러지기는 했어도 그에게는 예쁘게 보인다. 요셉은 칭찬해 주고,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마리아가 돌아온다. 분명히 집에서 나가 있었던 것 같다. 마리아는 문어귀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두 사람은 등을 문 쪽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를 보지 못한다. 마리아는 대패를 다루는 예수의 열심과 요셉이 예수를 가르치는 다정한 광경을 보고 미소 짓는다.

 

예수가 이 미소를 느꼈는지, 몸을 돌려 엄마를 보고는 반쯤 대패질한 널빤지를 들고 달려가서 엄마에게 보여 준다. 마리아가 감탄하며 예수에게 입 맞추려고 몸을 굽힌다. 마리아는 헝클어진 예수의 머리를 가다듬어 주고 얼굴의 땀을 닦아 주면서, 엄마가 일할 때에 더 편안하도록 작은 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예수의 말을 애정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여 듣는다. 요셉은 조그만 작업대 옆에 서서 손을 허리에 댄 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내 예수의 첫 번째 노동 학습을 참관했는데, 이 성가정의 모든 평화가 내 안에 있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가난한 가운데서도 행복했던 내 어린 시절을 너에게 보여 줌으로써 너를 위로하였다. 이 세상이 가졌던 성인들 중 가장 위대한 두 성인의 애정에 감싸여 있었기 때문에 나는 행복했다.

 

요셉이 내 양부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그는 남자였으므로 자기 젖으로 나를 기른 마리아처럼 나에게 젖을 줄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빵과 안락함을 마련해 주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했고, 친어머니와 같은 애정을 나에게 쏟아 부었다. 나는 그에게서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는, 밥벌이를 해야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을 배웠다. 그보다 친절한 선생을 모셨던 제자는 일찍이 없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내 지성은 완전하였지만 내 나이 또래의 특성과 성취를 벗어나 과시하기를 내가 원치 않았다는 것을 너희는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나는 나의 하느님으로서의 지적 완전성을 인간적인 지적 완전성의 수준으로 낮추어서, 사람을 스승으로 가지고, 스승의 필요를 느끼도록 나 자신을 억제하였다. 내가 빨리 그리고 열심히 배웠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 한 사람에게 복종했다는 공로가 나에게서 없어지지 않고, 또 요셉에게서도 내 어린 마음을 생활에 필요한 지식으로 양육한 공로가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 나와 함께 놀아 주는 것처럼 일을 배우도록 나를 이끌어가던 요셉 곁에서 지낸 즐거운 시간들을 나는 천국에 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추정상의 내 아버지와 작은 정원과 연기로 그을린 작업장을 떠올릴 때면, 집을 낙원이 되게 하고 나를 몹시 기쁘게 하던 미소를 머금은 엄마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누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지 못했을 만큼 서로 사랑한 부부의 이 완전함으로부터 가정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하겠느냐!

 

요셉은 가장이었다. 가정에서 그의 권위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 권위 앞에서는 하느님의 정배이며 어머니인 분의 권위도 공손히 굴복하였고, 하느님의 아들도 그 권위에 기꺼이 복종하였다. 이론도 없고, 이의도 없고, 반대도 없이 요셉이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모두 잘된 일이었다. 그의 말은 우리의 작은 법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마나 겸손하였느냐! 권력의 남용이나, 자기가 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아내는 그의 친절한 고문이었고, 크나큰 겸손으로스스로 자신을 남편의 종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셉은 은총이 가득한 그 여자의 지혜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인도하는 빛을 얻어내곤 하였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해 내 위에서 서로 얽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기운찬 두 그루 나무의 보호를 받는 꽃처럼 자라고 있었다.

 

내가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 동안은 천국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성부와 성령이 그곳을 떠나시지 않았다. 마리아가 성부와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천사들도 그곳에 줄곧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그 집에서 그들을 내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천사들 중 하나가 육체를 취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짐에서 해방되어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이익만을 돌보는 일과 치품천사들이 그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분을 사랑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천사 같은 영혼을 가진 요셉이었다. 요셉의 시선! 땅의 정욕을 모르는 별의 빛과 같이 조용하고 깨끗한 시선. 그것은 우리의 안식이고 힘이었다.

 

우리 집을 지키던 이 성인의 시선이 사라졌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하느님이고, 또 하느님인 만큼 요셉의 복된 운명을 알고 있었고, 이 이유로 고성소(Limbo)에서 잠깐 머물게 한 다음 하늘나라의 문을 그에게 열어 주게 되었던 그의 떠남을 슬퍼하지 않았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다정한 그가 사라진 집에서 울었다. 나는 사라진 친구를 애도하며 울었다. 그토록 다정했던 이 성인과의 이별을 내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어린 소년인 나를 가슴에 안고 재우던 이 성인, 그토록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랑해 주던 이 거룩한 친구와의 이별을 말이다.
 
끝으로 나는 세상의 부모들에게 요셉이 별다른 지식도 없이 어떻게 나를 유능한 일꾼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지적하고 싶다.

 

내가 연장을 다룰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요셉은 나를 놀기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일을 시작하게 하였고, 내가 일하도록 격려하는 도구로 마리아에 대한 내 사랑을 활용하였다. 나는 엄마를 위하여 유용한 물건들을 만들게 되었다. 요셉은 이렇게 해서 아들이면 누구든지 엄마에게 가져야 할 존경을 가르쳤다. 미래의 목수를 양성하는 그의 가르침은 존경과 사랑의 동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부모를 기쁘게 해 주려는 동기를 활용해서 어린 자녀들에게 노동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가정이 지금 어디 있느냐? 오늘날 자녀들은 가정의 폭군이다. 자녀들은 자기 부모에게 냉혹하고 무관심하고 무례하게 자란다. 그들은 자기 부모를 자신들의 종이나 노예로 여긴다. 자녀들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부모들로부터도 별로 사랑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희가 너희 자녀들을 성질이나 부리는 난폭한 자들로 만들어서, 부끄러운 무관심으로 그들과 갈라져서 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부모들아, 너희 자녀들은 너희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자녀다. 너희가 부자라면, 그들은 유모나 가정교사나 학교의 자녀들이다. 너희가 가난하다면, 그들은 친구들에게 속해 있고, 거리와 학교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너희에게 속해 있지 않다. 어머니들아, 너희는 그들을 낳지만 그 뿐이다. 아버지들아, 너희도 똑같다. 자녀는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과 영혼을 도야할 자격과 의무를 부모보다 더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라.

 

가족은 필요하다. 가족은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야 한다. 파멸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이 진리를 파괴할 수 있는 이론이나 진보는 없다. 파괴된 가정에서는 장차 더 타락하고 더 큰 파멸을 가져오는 남녀밖에 나올 수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엄숙하게 말하는데, 원숭이 가족들이 화합하는 것보다 화합하지 못하는 가정들과, 가정이 덕행과 노동과 사랑과 종교의 학교가 되지 못하고,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아서 결국은 부서지고야 마는 톱니바퀴 장치처럼 각자가 자기를 위해 사는 무질서한 가정들만이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결혼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없게 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파괴된 가정들. 너희는 사회적 삶의 가장 거룩한 방식을 파괴하고, 이 파괴의 결과를 보고 그로부터 고통당한다. 자, 너희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계속해라. 하지만 이 세상이 점점 더 지옥이 되고 가정과 민족을 잡아먹는 괴물들의 소굴이 된다 해도 불평하지 마라. 너희가 그것을 원하니 그렇게 될 것이다.”
 

 

원본 글 바로가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