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44] 예수께서 나자렛을 떠나시면서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하시다

강명준 변호사 | 기사입력 2018/06/03 [10:02]

[발또르따의 예수 이야기-44] 예수께서 나자렛을 떠나시면서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하시다

강명준 변호사 | 입력 : 2018/06/03 [10:02]

 

[번역 강명준 변호사    편집 추광규 기자]

 

 

 

1944. 2. 9. 오전 9:30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길은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군중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렀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요한1:19―28, 루카3:3―18)
  
환시는 영성체 때에 시작되었다.

 

나자렛 집의 내부가 보인다. 가족이 식사도 하고 낮 시간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 거실 같은 방이 보인다. 그것은 장방형의 식탁 하나와 벽에 붙여 놓은 일종의 궤 하나가 놓여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이 궤처럼 보이는 물건은 의자로도 쓰인다. 다른 벽들 중 하나에는 베틀과 등받이 없는 걸상이 놓여 있고, 나머지 한 벽에는 걸상 두 개와, 기름등잔들과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는 책장 하나가 있다. 새로 돋아나는 잎들로 푸르러지기 시작한 높은 나무의 꼭대기에 약간의 햇살만이 비치는 것을 보니 석양 무렵인가 보다.

 

예수께서는 식탁에 앉아 음식을 잡수시고, 마리아는 작은 문을 드나들며 시중을 드신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아궁이의 불빛이 보인다.

 

예수께서는 어머니도 앉아서 잡수시라고 마리아에게 두세 번 말씀하신다. 그러나 마리아는 서글프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흔드신다. 마리아는 처음에 삶은 야채를 가져오신 다음 구운 생선을 가져오시고, 그 다음에는 둥그스름한 무른 치즈를 가져오시고, 그 다음에는 검고 작은 올리브들을 가져오신다. 접시 크기의 작고 둥글넓적한 빵은 이미 식탁 위에 놓여 있다. 밀기울이 남아 있는 거무스름한 빵이다. 물 주전자와 잔이 예수 앞에 놓여 있다. 예수께서는 애정 어린 서글픈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말없이 잡수신다.

 

마리아는 분명히 드러나는 슬픔을 감추느라 태연한 척 하면서 왔다 갔다 하신다. 그분은 아직은 어둡지 않은데도 등불 하나를 켜서 예수 곁에 놓은 다음, 팔을 뻗어 예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신다. 마리아는 물이 스미지 않는 수제 순모 담갈색의 배낭을 뒤지시다 말고 작은 정원으로 나가신다. 그분은 정원 끝에 있는 창고 같은 데로 들어갔다가 말라서 쪼그라든 사과 몇 개를 가지고 나오신다. 그 사과들은 분명히 지난 여름부터 보관했던 것일 텐데, 마리아는 그것들을 배낭에 넣으신다. 예수께서 이미 넣은 것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 넣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마리아는 빵 한 덩이와 치즈 한 조각을 더 집어넣으신다.

 

그런 다음 마리아는 예수의 왼쪽, 식탁의 좁은 쪽으로 다시 와서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는 모습을 사랑과 흠숭의 태도로 지켜보신다. 마리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인해 여느 때보다 창백하고 늙어 보이고 눈자위는 거무스레하고 그로 인해 눈이 더 커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 그분이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은 눈물에 젖어 있어 더 맑아 보이는데, 잔뜩 고여 있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슬프고 지친 두 눈이다.

 

예수께서는 천천히 잡수신다. 오로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그분이 억지로 잡수시는 것이 분명하다. 여느 때보다 더 생각에 잠기신 채 얼굴을 들어 마리아를 바라보신다. 그분은 눈물이 잔뜩 고인 어너미의 시선과 마주치자 자유롭게 우시도록 고개를 숙이신다. 예수께서는 말없이 식탁 가장자리에 얹혀 있는 어머니의 섬세한 손을 당신의 왼손으로 잡아 당신 뺨으로 가져가신 다음, 그 손을 뺨에 대고 떨리는 그 가엾은 손이 어루만지도록 그 손을 당신 뺨에 비비신다. 그런 다음 그분은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존경으로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신다.

 

마리아는 흐느낌을 억제하시기 위해 자유로운 왼손을 입으로 가져가신다. 그런 다음 그분은 속눈썹에서 넘쳐흘러 뺨으로 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신다. 예수께서는 다시 잡수시기 시작하시고, 마리아는 이제는 어두워진 작은 정원으로 급히 나가신다.

 

예수께서는 왼쪽 팔꿈치를 식탁에 올려놓으신 다음 이마를 왼손에 얹으신 채 잡수시는 것을 잊고 생각에 잠기신다. 그러다가 그분은 무슨 소린가에 귀를 기울이시더니 일어서신다.

 

예수께서는 정원으로 나와 둘러보신 다음 집 오른쪽으로 가셔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신다. 동굴 안은 목수의 작업실인데, 거기에는 널빤지나 나무 부스러기가 없고, 작업대와 연장들이 제각기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놓여 있는데, 불기운은 없다.
 
마리아가 작업대에 엎드려 울고 계시는데, 그분은 어린아이 같다. 구부린 왼팔에 머리를 얹은 채 소리 없이 비통하게 우신다.

 

예수께서 어찌나 조용한 걸음걸이로 다가가셨던지 마리아는 아들이 애정이 듬뿍 담긴 비통한 어조로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손을 어머니의 머리에 갖다 대실 때에야 아들이 온 것을 알아차리신다.

 

마리아는 고개를 들고 눈물 젖은 눈으로 예수를 쳐다보시며, 양손을 모으고 예수의 오른팔에 기대신다. 예수께서는 넓은 소맷자락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닦아 드리고 어머니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으시며 이마에 입을 맞추신다. 예수는 여느 때보다 더 씩씩해 보이시고, 마리아는 얼굴에 고통의 흔적만 없다면 더 어린 소녀처럼 보이신다.

 

“어머니, 나가시죠.”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오른팔로 어머니를 꼭 껴안고 걸어서 정원으로 돌아오시어 집의 벽에 기대 놓은 걸상에 앉으신다. 밤이 되어 정원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달빛과 주방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있을 뿐이다. 고요한 밤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신다. 조용히 속삭이는 말이라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그 말씀에 마리아는 고개를 숙여 동의하신다. 그런 다음 나는 이런 말을 듣는다.

 

“친척들을 오게 하세요. 어머니 혼자 계시지 말고요. 그러면 제가 더 안심하고 제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여전히 어머니를 사랑할 거예요. 전 자주 오겠어요. 제가 갈릴래아에 와 있으면서 집에 돌아올 수 없을 때에는 알려 드릴 테니 그 때는 어머니가 저를 보러 오세요.

 

어머니, 이 시간은 와야 했습니다. 그 시간은 천사가 여기서 어머니께 나타났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이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이 시간을 겪어야 합니다. 어머니, 그렇죠? 그 후에는 시련을 이긴 다음의 평화와 기쁨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조상들처럼 언약된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광야를 건너가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 조상들을 도와주신 것처럼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영적인 만나처럼 당신 도움을 우리에게 주셔서 시련이 가장 심할 때 우리 영혼을 강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함께 우리 아버지께 기도드립시다.”

 

예수께서 일어서시고 마리아도 일어서신 다음 하늘을 우러러보신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명의 산 제물이다.

예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맑은 목소리로 암송하신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두 구절은 다른 구절들과 떼어서 강조하신다. 예수께서는 팔을 벌리고 기도하시는데, 정확히 십자가 모양으로 벌리지 않고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할 때와 같은 모양으로 벌리신다. 마리아는 두 손을 합장한 채로 계신다.

 

그런 다음 두 분은 집으로 돌아오신다. 나는 지금까지는 예수께서 포도주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예수께서는 책장 위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서 흰 포도주를 잔에 약간 따라서 식탁으로 가져가신다. 그런 다음 마리아의 손을 잡아 당신 곁에 앉히시고는 강권하여 그 포도주를 마시게 하시고, 포도주에 빵의 부드러운 부분 한 조각을 담갔다가 마리아에게 들게 하신다. 마리아는 예수의 간청에 굴복하실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나머지 포도주를 드신다. 그런 다음 그분은 어머니를 가슴에 꼭 껴안으신다. 예수와 마리아는 길게 누워 계시지 않고, 우리가 식사할 때처럼 앉아 계시는데, 두 분 다 말이 없으시다. 마리아는 예수의 오른손과 무릎을 어루만지시고,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팔과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일어서시고 마리아도 따라 일어서신다. 두 분은 서로 껴안고 여러 번 다정하게 서로 입을 맞추신다. 서로 떨어지려는 것 같은 순간마다 마리아는 아들을 몇 번이고 다시 꼭 껴안으신다. 그분은 성모님이지만 결국 어머니시다. 그분은 이제는 아들과 헤어져야 하며 그 이별이 어떤 결과에 이를지를 다 아시는 어머니시다. 마리아가 고통당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지 말라. 전에는 나도 약간 의구심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짙은 남색의 겉옷을 들어 어깨에 걸치시고 두건을 머리에 쓰신다. 그런 다음 걷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배낭을 어깨에서 허리로 비스듬히 메신다. 마리아는 예수를 도우시면서 무수히 그분의 옷과 겉옷과 두건을 매만지시며, 간간이 아들을 어루만지신다.

 

예수께서는 집을 향하여 강복하시는 손짓을 하신 다음 출입문 쪽으로 가신다. 마리아는 예수를 따라 가시고, 문지방에서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신다.

 

길은 조용하고 쓸쓸하며 달빛으로 환하다. 예수께서는 대문 문설주에 기댄 채 서계시는 어머니, 달빛보다도 더 창백하고 눈물로 두 눈이 반짝이는 어머니를 보시려고 두 번 돌아보신다. 예수께서는 하얀 길 위로 점점 더 멀어져 가신다. 마리아는 여전히 문에 기대서서 울고 계신다. 마침내 예수는 어떤 길모퉁이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골고타에서 끝나게 될 그분의 전도여행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집안으로 돌아가 문을 닫으신다. 마리아를 골고타로 이끌어갈 여행도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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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네 번째 고통이다. 첫 번째 고통은 나를 성전에서 바치실 때였고, 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 피난이었으며, 세 번째 고통은 요셉의 죽음이었고, 네 번째 고통은 나와의 이별이었다.”

 

네 영적 지도 신부의 바람을 내가 알기에, ‘우리’ 고통에 대한 서술을 서둘러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겠다고 어제 저녁 너에게 말했었다. 그러나 너도 보다시피 그 고통들은 내 어머니의 고통으로 인하여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이집트에 피난한 이야기를 성전에서 바친 것보다 먼저 들려준 것은 그날 그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으며 너도 그것을 이해하니 네가 신부께 말로 설명해 드려라.

 

나는 너에게 환시를 보게 하고 곧이어 내가 설명하는 것과 협의(狹義)의 받아쓰기를 번갈아 하도록 계획했는데, 그 이유는 너에게 환시의 지복을 주면서 너와 네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이고, 또 그렇게 해서 너와 나의 문체의 차이가 분명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나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고치고 바꾸고 윤색한 나머지 내 인간생활이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나를 믿는 사람들에게 실제의 내 인간생활을 보여 주기를 내가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환상으로 인하여 왜소해지지 않고 오히려 실제로 너희를 위한 양식이 되는 내 겸손으로 인하여 더 위대하게 되어, 너희와 같은 사람이면서도 인간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완전함을 지니고 있었던 나를 닮아 겸손하도록 너희를 가르치게 된다. 나는 너희 모범이 되어야 했는데, 모범이란 모름지기 완전해야 한다.

 

나는 환상을 보여 주는 데 있어 복음서의 시간적 순서를 따르지는 않겠다. 나는 내 자신의 가르침과 선함의 방침에 따라서 어느 정해진 날에 너와 다른 사람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택하겠다.

 

내가 나자렛을 떠나는 환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교훈은 하느님의 뜻이 더 높은 사랑을 위하여 서로를 버리도록 부르시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것인데, 이는 고통스러운 포기에 직면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너희는 인생에서 그런 경우를 얼마나 많이 당하느냐! 그것들은 지상 생활의 가시들로서 너희 마음을 꿰뚫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 가시들은 영원한 장미꽃으로 변한다. 주의해라. 나는 ‘그것들을 바라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미 완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체념으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고집 센 나귀처럼 아버지의 뜻에 완강하게 반항하고 주저하며, 심지어 때로는 너희는 영적인 발길질과 물어뜯음으로써 다시 말해 하느님께 반항하고 그분을 모독함으로써 좋으신 하느님을 때리려 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 좋은 것밖에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가셨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애정밖에 없었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빼앗아가셨다’고 말하지 마라. 완전한 사랑을 가진(은총이 가득한 동정녀 안에서는 사랑과 감각도 완전하였기 때문이다) 온유한 여인 마리아도 이 세상에서는 유일한 재산, 유일한 사랑밖에 가진 것이 없었는데 그것은 자기의 아들이었다. 마리아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 애정 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요셉도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었다. 마리아를 사랑하고 마리아가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 않게 해 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친척들은 나의 신적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나로 인해 마리아에게 약간 적대적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마리아는 상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물질적인 도움은 물론 가문의 위신을 높여 줄 수 있었을 결혼 제안들을 거절하는 아들에게 자기 뜻을 강요할 줄 모르는 어머니였다.

 

친척들은 상식과 인간적인 생각에 따라 추론했다. 너희는 상식을 양식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 즉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유다교 측을 자극할지도 모르는 사상들을 감히 표현하는 나로 인해 언젠가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였다.

 

히브리 역사에는 예언자들의 운명에 관한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예언자의 사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사명으로 인하여 자주 예언자 자신은 죽음을, 그의 일가족은 난처한 일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언젠가 내 어머니를 떠맡아야 할 것이라는 염려를 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 어머니가 매사에 나에게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에 대해 끊임없이 숭배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났었다. 이 갈등이 내 공생활 3년 동안에 점점 더 커져서, 그들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나를 만날 때마다 공공연하게 비난하게 되었고, 자기들 생각으로는 권력층을 자극하는 내 괴벽으로 인해 부끄러워할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나와 가엾은 내 어머니를 비난했다.

 

마리아는 친척들의 기분을 알고 계셨고 그들의 마음이 장차 어떻게 될지 예견하고 계셨다. 친척 모두가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이나 그들의 어머니 클로파스의 마리아 같지 않았다. 마리아는 내 공생활 3년 동안에 당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포함하여 당신 자신의 운명과 내 운명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그분은 너희처럼 반항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우셨다. 어머니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질 때, 당신 혼자 있게 될 외로운 그 집에 내가 있지 않게 될 오랜 세월을 생각해 볼 때, 자기들의 죄의식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도록 공격하여 복수하려는 죄인들과 충돌해야 할 운명을 가진 아들의 음울한 전도(前途)를 아는 어떤 어머니가 울지 않겠느냐?

 

어머니는 공동구속자(the Co―redeemer)시고 하느님을 향해 다시 태어난 인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우셨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자신들의 고통을 영원한 영광의 관으로 바꿀 줄 모르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 우셔야 하였다.

 

품안에 있는 자식을 죽음에게 빼앗기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으냐! 초자연적인 뜻에 의해 자기 곁에 있는 아들을 빼앗기는 어머니가 얼마나 많으냐! 마리아는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로서 그분의 모든 딸들을 위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 속에서 그분의 모든 자매들을 위해 우셨다. 또한 그분은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서 하느님의 사도가 되고,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으로 인해서나 사람들의 잔인성으로 인해서 하느님을 위한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 모든 아들들을 위해서도 우셨다.

 

내 피와 마리아의 눈물은 영웅적인 운명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강화시키고 약함으로 인하여 저지른 불완전함이나 죄마저도 지워 없애는 액체인데,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 당하는 모든 고통은 하느님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나중에는 하늘의 영광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 신부들은 그 액체가 만년설에 덮인 땅에서 자신들을 따뜻하게 해 주는 불꽃이 되고, 폭염이 내리쬘 때 이슬이 된다는 것을 안다. 마리아의 눈물은 그분의 사랑에서 발원하여 백합꽃 같은 마음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사랑(Love, 사랑이신 성령―역주)의 정배인 동정녀의 사랑의 불을 얻고, 백합꽃 잔에 고인, 이슬 내리는 밤의 물방울 같은 동정녀의 순결의 향기로운 신선함을 얻는다.

 

하느님께 봉헌된 수도자들은 수도생활의 사막에서 이 액체를 찾아내는데, 그들은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만 살고 부모나 친구나 윗사람이나 아래 사람에 대한 다른 모든 애정은 멀리하여 그들 자신이 순수한 초자연적인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이해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않는 세상 안에서도 이 숭고한 액체를 찾아낸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전혀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어서 자기 혼자인 것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은 그들에게도 사막이다.

 

내 사랑하는 ‘희생자들’은 이 액체를 찾아낸다. 희생자라고 말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고, 어머니이자 의사인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다시 새롭게 하고 더 큰 희생을 고취시키는 눈물을 주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의 거룩한 눈물!

 

마리아는 기도드린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셔도 기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이것을 기억해라. 마리아는 우리와 너희의 아버지께 기도드린다.

 

‘주의 기도’는 나자렛의 정원에서 맨 처음으로 드려졌는데 그것은 마리아의 마음 고통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 기도는 점점 더 큰 희생이 시작되고 내 목숨의 희생과 자기 아들의 죽음에 대한 내 어머니의 수용이라는 절정에 이른 때에 ‘우리의’ 뜻을 영원하신 아버지께 드리기 위해서 드려졌다.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용서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우리는 한숨 한번 쉰 것에 대해서도 용서를 받고나서 우리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합당하게 되고자 겸손하게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너희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더 머물러 있을수록 너희 임무가 더 복되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기를 우리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공경과 겸손을 가르치기를 원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완전한 남자와 여자인 우리 두 사람도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용서를 청하였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청한 것과 똑같이 말이다.

 

우리의 빵은 무엇이었느냐? 오! 그것은 마리아의 깨끗한 손으로 반죽하여 작은 화덕에 담아 내가 준비해 둔 장작더미로 불을 피워 구워 내는 그런 빵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한 그런 빵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 우리 사명의 몫을 행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임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의 하루의 기쁨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그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작은 요한아? 만일 주님이 너에게 고통의 임무를 주시지 않은 채 내버려두시면, 마치 그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날은 잃어버린 날이 된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기도한다. 내 자녀들아, 너희를 의롭게 하는(justify) 것은 예수이다. 너희 기도가 열매 맺고 아버지께 인정되게 하는 것은 나 예수이다. 너희 기도를 아버지께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되게 하고 유익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말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어 주실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기도를 고양시킨다.

 

너희가 기도할 때 항상 나와 일치하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큰 소리로 기도할 것이며, 하느님-사람인 내 목소리로 인간인 너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 기도를 꿰뚫린 내 손에 얹어 아버지께 들어 올리겠다. 그 기도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제물이 될 것이다. 너희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합쳐져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입맞춤처럼 올라갈 것이고, 내 상처들의 피는 너희 기도를 값진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너희 안에, 너희와 함께,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를 차지하고 싶으면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는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도’라는 말로 이 이야기를 끝마쳤는데, 너는 이런 뜻으로 그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칼바리아로 올라가신 두 분에 대하여 몹시도 배은망덕한 우리를 위해서도’라는 뜻으로 말이다. 네가 그렇게 쓴 것은 잘한 일이다. 내가 우리 고통 중의 하나를 보여줄 때마다 그렇게 써 넣어라. 이 말들이 사람들이 묵상하고 뉘우치도록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쉬어라.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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