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일본의 취업률과 한국의 취업률

언제까지 청년 실업을 논할 것인가? 일본에 배울 건 배우고 벤치마킹 할 것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강문 영남본부장 | 기사입력 2018/08/10 [00:05]

[깡문칼럼] 일본의 취업률과 한국의 취업률

언제까지 청년 실업을 논할 것인가? 일본에 배울 건 배우고 벤치마킹 할 것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강문 영남본부장 | 입력 : 2018/08/10 [00:05]

▲ 취업 박람회 자료사진

 

 

이웃나라 일본은 심각한 구인란에 외국 노동자 50만 명에게 문을 열 개획이라 한다. 요즘 일본 청년들은 참 복도 많다. 일본 경제가 호황을 맞아 실업률이 2%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올해 봄, 일본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은 98%를 기록했다. 놀라지들 마세라. 일본 고등학교 졸업생도 취업률이 98.1%라는 것이다. 너무 우리 한국과 비교되는 수치에 놀랄 수밖에........,

  

기업들은 대학 졸업반뿐만 아니라 대학 3학년들에게도 입도선매(立稻先賣)식 채용에 나서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열리는 취업설명회는 대학 4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3학년들을 미리 붙잡아 두려는 쟁탈전이라 한다. 이미 대학 3학년생 40%가 취업이 결정된 상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일자리 지옥이 우리 청년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층, 기성세대가 못난 탓이다. 오늘 일본 청년들이 행복한 것은 그들 지도층과 기성세대들이 잘나서이다.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한국 청년 일자리 문제는 오직 선거공약에서만 존재한다. 6.13 지방선거 때 나온 일자리 공약을 합치면 256만개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로 끝이다 듣는 사람들도 ‘하는 소리겠지’ 하고 만다. 이제 우리 청년들의 눈물을 누가 닦아줄 것인가. 소득주도 성장이든 포용적 성장이든 다 좋다. 그깟 포장이 뭐가 중요한가. 삼성전자가 평택 공장을 짓느라 수백 가지 규제에 맞서 장애물 경기를 벌였다고 한다. 웬만한 공장 하나 짓는데 관련부처는 물론 국회의원 수십 명은 포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뿐인가. 시민단체, 환경단체, 주민대책위원회까지, 이 나라는 어른들이 허울 좋은 명분으로 청년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그런 나라다. ‘끝내라’라는 일본어 오와루와 ‘괴롭힌다’는 영어(harass)의 조합어이다. 기업들이 학생들에게 “이미 우리 회사에 붙었으니 다른 회사에 기웃거리지 말라”며 전화나 메일로 귀찮게 구는 걸 말한다.

  

지난해 12월 우리 교육부가 발표한 대졸취업률은 67.7%이다. 작년 청년실업률 9.9%로 역대 급이다. 구직활동도 포기하고 경제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노는’ 청년들이 3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졸업’이 바로 만연 ‘실업’으로 이어지는 슬픈 풍경이다.

  

‘오와하라’ 대신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 ‘흙턴(흙수저 인턴)’, ‘비계인(비정규직과 계약직 반복)’ 등이 우리 청년들을 대변하는 유행어다. 일본이라고 늘 이렇지는 않았다.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의 시절이 있었다. 답답한 것은 그런데도 누구 하나 일본의 ‘오와하라’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 관료들은 일본 정부가 어떻게 청년 일자리 난국을 탈출했는지 전혀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 정치권에서는 아예 일본하면 손사레 치며 외면해 버리기 일쑤다. 물론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몹쓸 짓을 했다.

  

위안부도 그렇고 일제강점기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옛날 일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많은 것을 잃었고 패전까지 했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과도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일본을 한번 벤치마킹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존심인가. 콤플렉스인가. 그 와 중에 자기 식솔들의 부정한 취업청탁에는 프로급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국정원, 금감원, 은행장의 빽도 없이 죽어라 원서만 쓰는 취업준비생들은 그럼 뭐란 말인가. 국회의원 한 사람이 수십 명을 강원랜드에 취업시키는 나라, 지도층 자녀들은 어디든 취업이 되는 나라 이제 완전히 고리를 끝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길게 청년일자리 문제를 팽개친다면, 어느 날, 청년들이 일어설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후 영국 ‘앵그리 영 맨’ 세대의 구호는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라’ 였다. 사람이 침묵하면 나중엔 돌들이 소리치리라 하지 않았는가. 반일 감정은 이해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이해한다. 그리나 일본에 배울 건 배우고 벤치마킹 할 것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청년 실업을 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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