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안부 감사관의 '나만나서...', 땅콩회항 조현아에 비하면

구석현 고양시공무원노동조합 | 기사입력 2018/09/14 [15:19]

[기고] 행안부 감사관의 '나만나서...', 땅콩회항 조현아에 비하면

구석현 고양시공무원노동조합 | 입력 : 2018/09/14 [15:19]

▲ 고양시 공무원 노동조합이 최근 고양시에서 발생한 행안부 감사관의 갑질에 항의하면서 행안부를 방문했다.  ©김승호 수도권 취재본부 본부장

 

 

최근 행정부의 갑질문제(갑의 횡포)는 어떠한 개인(조사관)이나 집단(행안부)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고양시, 산하기관)과 맺은 사회관계(계약관계나 권력관계)에서 한쪽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다른 쪽에 자의적 권력(arbitrary power)을 행사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관련기사 ‘나 만나서 살아남은 공무원 없어'...행안부 감사관 강압조사 논란 )

 

자의적 권력 하에 놓인 사람들은 권력의 비대칭 상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갑질)을 감수해야 한다. 이로 인하여 자유의 상실을 경험하며 자신이 노예와 같은 지배 상태에 놓여 있다고 여기게 된다.

 

즉 갑을 관계는 지위에 부여된 권력자원의 불평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의 갑이 을에게 자의적으로 권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취약한 사회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관계 속에서 상대적 강자와 약자의 기대가 상호작용하면서 일정한 감정 규범이 형성되는 데, 이는 이 사건의 발생(고질적인 병폐,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악습)과 관련되어 있다.

 

불평등하게 분배된 자원이나 권력, 자신이 지닌 자원을 이용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지배하는 것이다. 갑을 관계에 놓인 을은 자신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되는 모욕감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분노나 정의감은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먼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경우를 포함하여, 나쁜 것으로 지각된 일을 바로잡으려는 영혼의 움직임으로 정의한다(플라톤).

 

서로 다른 지위의 갑과 을에서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권력을 지닌 을이 큰 권력을 지닌 행위자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갑(행안부)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을(지방직 직원)이 허용할 경우에 이들 사이에 지배관계(제도를 빙자한 관습적이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갑은 을을 아주 쉽게 무시하고 을은 이에 적응하는 것이다. 갑은 자신을 상대보다 우월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을의 사소한 이의 제기에도 자신의 지위가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크게 분노하게 된다.

 

반면, 을은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 경우 생길 수 있는 갑의 보복으로 인한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화가 나도 이를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차츰 이러한 상황에 적응한다. (지금까지 사건이 덮여있던 이유, 타 시군구에도 김조사관의 사례가 무수히 접수되고 있슴)

 

이와 같은 감정규범 속에는 을은 비굴함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자존감이 손상되고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누적된다. 이러한 누적된 욕구가 H주무관의 사건을 통해(계기) 표출된다. 이러한 행위를 촉발하는 감정으로 분노(정의감)가 작용한다.

 

H주무관, 일반 공무원, 노동조합과 고양시민의 분노(정의감)는 이러한 갑을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교정해, 자신의 정당한 지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지니는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손상되었다는 판단이 개입된다. 비록 공무원조직의 상명하복의 의무와 상하관계의 조직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정당한 범위나 범주에서 기능이 작동하기 보다는, 관습적인 감정적 복종관계가 노예적 굴종을 강요하고, 문제가 곪아 터지기 전까지 악취를 풍기며 잠재해 왔다.

 

고양시 공무원의 요구, 고양 시민의 참여는 공감, 거기에 일반적으로 을이라고 여겨지는 자신의 권리가 무시된 것에 항의하고, 나의 존엄성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번 계기로 갑과 을 사이에 존재했던 감정규범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엄성을 지닌다고 가정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개인에 따라 사회경제적 차이가 존재하고, 사회적 지위에 수반된 권력의 차이도 실재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는 서로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대우하려는 암묵적 상호작용을 통해 존엄성을 해치치 않는 방향으로 작동하려고 한다. 무시나 모욕, 학대는 이러한 상호작용 의례를 직접적으로 깨뜨린다.

 

그러면 지금까지 K 조사관의 행태가 수십년 동안 교정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언제든 직접적으로 해당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고 관행처럼 여기고 조직적으로 덮으려 했던 집단적인 갑질 행위가 근본적 원인이다. 이제는 단순 개인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행안부 스스로 조직진단을 세밀하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은 감정 관리를 위한 법적 합리적 규칙의 체계이며, 그 구성원들에게 일정한 감정 표현 규칙을 부과한다. 공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구성원들의 감정 관리에 대해 공식 비공식적 규범을 부여하고 작동한다. 하급자(을)에게는 최대한 자신의 진실한 감정(특히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직이 선호하는 감정을 연기할 것을 요구한다. 을은 이러한 감정을 민원인이나 조직의 상급자에게 드러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간주되며, 실제로 분노를 표출하면 조직 내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행안부 조사관의 행위는 땅콩회항으로 사회문제가 된 조현아와 비교할 수 있다.

 

“상관없어, 니가 나한테 대들어, 어따내고 말대꾸야, 내가 세우라잖아.”

“내가 까라면 까야 할거 아냐? 어따대고 말대꾸야, 그게 감사받는 태도야.”

 

상당히 유사, 아니 동일한 메커니즘이 아닌가?

 

그(그녀)가 기대했던 반응은 권력관계를 이용해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는 것, 즉 자신의 자의적 명령에 대한 복종과 자신의 감정을 달래주기 위해 상대방이 애쓰는 태도였다. 이게 업무인가, 화풀이인가, 아니면 변태적 학대인가?

 

K 조사관의 행위는 헌법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 고문받지 않을 권리,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적법한 절차에 의해 구속이 제한되는 권리 등 이루 헤어릴 수 없이 많은 형사상 규정을 어겼다는 외에도 근본적으로 행안부 조직문화와 관행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행안부 갑질 사건이 봇물 터지듯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런 행위가 한 번에 그친 일탈이 아니고, 장관이 약속한 대로 적절한 조직진단에 의한 합리적인 처방이 이루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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