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에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을까?

<일본통신> 조선학교의 체육대회에서 느낀 것들...

박철현 뉴민주닷컴 | 기사입력 2009/10/02 [05:54]

왜 일본에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을까?

<일본통신> 조선학교의 체육대회에서 느낀 것들...

박철현 뉴민주닷컴 | 입력 : 2009/10/02 [05:54]
"야! 빨리 돌려라"
"용철! 바싹 붙어라. 떨어지지 마라!"
"쏴라!!!"

 
9월 초순 도쿄 고마자와  올림픽 기념 경기장을 찾았다. 재일조선학생 중앙체육대회(이하 '중앙체육대회')를 보기 위해서 였다.
 
이 대회는 매년 한번씩 벌어지는 것으로 전국의 초중고급 조선학교가 대부분 모인다. 학생들만 참가하는 대회로는 34회째이지만, 재일동포 일반인 체육대회는 1954년에 처음 열렸으니(78년 18회째를 끝으로 일반인 체육대회는 없어짐) 역사로만 보자면 55년째 개최되고 있는 셈이다.

중앙체육대회가 매년 한번씩 열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급 학교에는 축구부, 럭비부, 농구부, 육상부 등 다양한 분야의 운동서클이 있고, 부원들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서클 활동을 열심히 해도 대회를 참가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쌓은 실력을 발휘조차 못하게 된다. 서클활동의 동기부여(모티베이션)가 사라져 버릴 우려가 있다.
 
즉, 중앙체육대회는 이러한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국의 조선학교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한다.
 

 
▲ 고베에서 올라온 조선중급학교의 농구부. 가나가와 조중과 붙어서 승리를 거뒀다   © hiroki yamamoto / jpnews
 
조선학교가 일본대회에 참가 못하는 이유
 
조선학교가 일본의 정식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학교교육법' 제1조가 정하는, 이른바 '1조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학교는 학교교육법 제83조의 "1조학교가 아닌 그 외의 학교를 각종학교라고 부른다"는 조항에 따라 '각종학교'로 분류된다. 
 
이 각종학교에는 어학계통, 간호계통, 예비교(과외학원)등을 비롯해 인터내셔널 스쿨, 그리고 조선학교 등이 들어간다. 자동차 교습소도 각종학교에 해당될 정도이므로, 1조 학교가 아닌 모든 학교는 각종학교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벌어지는 전국레벨의 선수권 대회는, 지역예선전은 해당지역의 룰을 따르지만 전국대회는 1조 학교가 출전권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몇몇 한정된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대회는커녕 지역예선조차 출전하지 못했다.
 
중앙체육대회는, 그래서 시작되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대회는 약동하기 마련이다. 초급학교 어린이들로부터 고급학교 청소년들까지 1년간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는 공간이다 보니 전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내가 본 축구시합 <도쿄중급학교 vs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의 경기도 그랬다. 도쿄 중급학교 축구부는 약 40여명의 부원인 반면 기후현 중급학교과 미에현 욧카이지 중급학교는 둘 다 서클 부원수가 모자라 연합팀으로 만들어 출전했다. 또 연합까지 했는데도 한명이 부족해 옆동네 아이치 중급학교로부터 1명을 빌려 겨우 11명을 채웠다고 한다.
 
사실상 시합전부터 이미 도쿄중급학교의 승리가 거의 결정난 셈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시합에 임한다. 미에에서, 아이들과 같이 올라온 학부모들도 기대어린 눈빛이다.
 
"이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1년간 이날만을 위해서 연습을 했으니까. 사람수가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하하"


▲  빨간 유니폼이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팀. 열심히 뛰었지만 17-0으로 졌다   © hiroki yamamoto / jpnews

▲ 후반전 설교도 들었지만...  © hiroki yamamoto / jpnews

▲ 점수차가 벌어지자 아예 웃어버리는 욧카이치 선수들의 어머니들   © hiroki yamamoto / jpnews
 
하지만 시합휘슬과 동시에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초반 10분은 어떻게 버텼지만 전반 12분 터진 도쿄 중급학교의 첫 골을 시작으로 엄청난 골세례가 시작된다. 3-0, 5-0, 7-0...
 
내 입에서는 절로 영화 <친구>의 "마니 뭇따 아이가, 고마해라"가 튀어 나왔다. 5-0까지만 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던 어머니들도 10-0이 넘어서자 아예 폭소를 터뜨린다.
 
"어차피 처음부터 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좋지 않습니까. 1년에 한번씩 이렇게 같이 모여서 시합도 하고. 내가 다녔던 20년 전엔 훨씬 많아서 더 재미있었습니다만, 요즘엔 학생들 수가 적어져서 많이 조용해졌습니다."
 
실제로 조선학교의 학생수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국 약 5만명의 학생수를 자랑했던 조선학교였지만, 2004년에 1만 1천 5백명, 그리고 2008년 2월에는 1만 1천명까지 줄었다. 이대로 가다간 2011년엔 만명선도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북한이라는 나라를 떠나 재일동포들이 반세기에 걸쳐 온갖 힘을 다해 일구어 왔던 '민족교육'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에 관한 열의와 그 노력을 보아 왔던 나로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경기가 끝난 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기후현・미에현 욧카이치 연합팀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우물우물, 아니 울먹울먹거리던 아이가 어느 한순간 갑자기 고개를 들고 "열심히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라고 또렷한 '조선어'로 답한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고개를 돌려 "내일 시합은 꼭 이기자"고 소리를 친다. 아! '조선놈' 답다.
 
축구의 경우 90년대 말부터 고교생 레벨의 전국대회 출전의 길이 열렸다. 이로써 지역의 조선고급학교는 예선대회부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각종학교'는 원칙적으로 출전이 금지되어 있지만 조선학교의 경우 그 특수성이 인정되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2006년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 조고')가 전설을 만들어 낸다.
 
오사카 지역예선을 돌파한 오사카 조고가 16강전에서 강호 구니미 고교를 이겨버린 것이다. 구니미 고교는 2004년 인터하이 전국대회의 우승팀으로 20년 연속으로 전국대회 본선에 진출한 강호중의 강호다. 또 2004년 대활약을 펼친 히라야마 소타는 j리그 fc 도쿄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오사카 조고의 8강전 상대는 시가현 대표 야스고교. 밀고 밀리는 접전끝에 0-0 무승부를 기록,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오사카 조고는 눈물의 고배를 마셨다. 결국 야스고교는 4강전과 결승전을 승리해 그해 전국축구대회의 우승컵을 안았다.
 
이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가 바로 16강전 구니미 고교를 이겼을 때 해설자가 흥분된 어조로 내뱉은 다음 말이다.
 
"오사카 조고,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구니미는 전국에서 유망주들을 다 끌어모은 강팀입니다. 반면 오사카 조고는 초등학교때부터 그대로 올라온 학생들이랍니다. 그런데 저 학생들이 구니미를 이겼습니다. 이거 정말 대단한 겁니다"
 
중앙체육대회는 3일간 육상, 축구, 배구, 농구, 탁구, 야구, 정구, 럭비(투구), 유술, 권투, 가라데등 조선학교의 서클활동 전종목에 걸쳐 벌어진다. 극진 가라데는 최영의 선생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들어가 있다고 한다.
 
경기에 임해서는 치열함을 보이고 경기가 끝나면 금세 악수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단결과 우애를 과시하는 장이 바로 중앙체육대회다.
 
하지만 나는 중앙체육대회가 끝날 때쯤 농구장에서 만난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술 한잔 마신 재일동포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총련조직원이 아니지만 아이들은 민족학교에 보내고 있어. 왜냐면, 우리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왜 남한은 민족학교를 세우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지금은 왜 세우지 않는건가? 해방되고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줬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인데 말야"
 
 
▲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유니폼은 그냥 "코리아"라고 적힌 것이 많았다   © hiroki yamamoto / jpnews
 
어린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라
 
사실 극영화 '박치기'나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 등을 통해 조선학교, 아니 '민족학교'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 민족학교는 '영화속' 뿐만 아니라 때로는 현실의 뉴스로 등장하기도 했다. 94년에는 민족학교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가 찢겨지기도 했고, 도쿄 조선제2초급학교, 속칭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도쿄도와 몇년 간에 걸쳐 지루한 법정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하지만, 이런 영화나 뉴스들을 볼 때마다 웬지 불편한 기분에 빠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인상이 상당히 고정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좌우가 없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민족학교를 '웬지 불쌍하고 차별받고 고통받는 이미지'로 정형화시키고, 보수세력은 '조총련계의, 수령론을 교육시키는 빨갱이 양성소'로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다.
 
이 말도 구조적으로 본다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조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은 아주 당당하며 '빨갱이' 교육 보다는 '민족' 교육을 받는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왜냐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쪽이냐 북쪽이냐로 단정지을 수 없는 '자이니치'(재일) 만의 특수한 사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을 초월한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그들이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자는 민족교육, 즉 우리글과 우리말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선조들의 전통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라고도 말한다. 조선, 아니 '민족학교'에서 일부러 이데올로기를 추출하려 노력하기 보단 일단 아이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이겨서 기쁘다는 고베 조중 농구부의 여학생. 고베는 가나가와를 52-36으로
<출처 j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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