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발에 대하여, 천안함에 폭발이 없었다고 말하는 10가지 이유

신상철 | 기사입력 2018/12/10 [11:18]

[천안함] 폭발에 대하여, 천안함에 폭발이 없었다고 말하는 10가지 이유

신상철 | 입력 : 2018/12/10 [11:18]

선박사고에서 ‘좌초’와 ‘충돌’은 물리적인 손상과 변화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폭발’은 물리적 손상에 더하여 화학적 손상과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같은 물리적 손상이라고 해도 접촉에 의한 손상과 압력 (충격파)로 인한 손상은 그 형태가 다릅니다.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하여 반파 침몰하였다’고 결론내린 것이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 검증함에 있어 핵심은 ‘천안함 절단면과 그 주변에 폭발을 입증할만한 흔적과 증거들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폭발이 존재했다는 증거와 흔적이 있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어떤 유형의 폭발인지. 어느 지점에서 폭발했는지 등을 따져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폭발의 증거와 흔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방부 주장의 중심축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안함에는 폭발을 입증할만한 그 어떤 증거도 흔적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화약냄새도, 고열도, 물기둥도, 폭발로 인한 파편조차도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당장 샅샅이 훑어보아도 그을음 조차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국방부가 ‘1번을 쓴 어뢰’를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국방부가 - 한 나라의 주요 국가기관들이 - 국민을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벌였습니다. 군인들도, 과학자도, 교수도, 공무원도, 연구원도, 조사기관 검사관들도 모두 알게 모르게 정부와 국방부의 거짓과 조작의 조력자가 되었으며 스스로 ‘집단적 침묵의 카르텔’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심지어 국제사회까지 속이는 짓을 겁도 없이 우리 정부가 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천안함에는 ‘폭발의 흔적’이 존재하는가.. 제가 천안함 하부에 그 어떠한 폭발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하는 10가지 이유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화약냄새

 

‘폭발’이 존재했다면, ‘물리적 변화’만을 발생시키는 ‘좌초’ 혹은 ‘충돌’과는 달리 ‘물리·화학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반드시 나타났어야만 합니다. ‘폭발’은 ‘연소 및 산화’의 과정이고 그 현상은 반드시 결과물로 남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화약폭발’의 경우 당연히 화약이 연소되는 냄새가 진동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약이 연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은 고열, 그을음 그리고 화약가스입니다. 그런데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폭발이 없었다’는 결론입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어뢰를 맞아 격침된 사례가 전혀 없다 보니 그에 대한 분석자료나 데이터베이스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청상어’ 등 어뢰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어뢰폭발실험 조차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천안함 생존대원들이 작성한 진술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천안함 대원 거의 대부분이 “기름냄새는 맡았지만 화약냄새는 맡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배를 반토막 냈다는 360kgTNT 화약이 터졌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는 얘깁니다.

 

 

여기에 어뢰를 직접 맞아 본 美해군제독의 증언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년 전인  1865년 미국 ‘해군병기의 아버지’라 불리운 달그린 제독은 어뢰피격 경험을 회고하는 글에서 “곧 바로 화약냄새가 진동했다(The smell of gunpowder quickly followed)”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 Fraser's Magazine Vol. 78 page 720)

 

 

가깝게는 2차대전 중인 1942년 과달카날 해전의 무전병 시빌리의 증언에 따르면 “(어뢰에 맞고) 뒤로 돌자마자 물기둥이 보였는데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 멈출 것 같지가 않았다”며 “바닷물과 어뢰에서 나온 화약, 그리고 전함에서 새어나온 기름에 흠뻑 젖어버렸다”고 증언합니다. (출처 : World War 2 Stories)

 

그리고 그는 “한동안 나쁜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멀게는 백오십 년 가깝게는 수십년 전의 이야기라 최신 어뢰들은 특별히 개선되고 개량되어 냄새가 좋아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통상적인 상식의 선에서 견주어 보더라도 <화약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천안함 생존대원들의 증언은 ‘폭발 없음’을 강변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폭죽 하나만 터뜨려도, 담배 필 때 성냥 한 개비만 그어도 주변에 화약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런데 배를 반 토막 낼 만큼의 화약 덩어리가 터졌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2. 인체손상 - 폭발에 약한 ‘생명체'

 

승조원 어느 누구도 장파열, 코피, 고막 손상 등 폭발로 인한 신체손상이 없었습니다. 희생자의 사인 또한 ‘전원 익사’였습니다. 선체는 거대한 깡통과 같아 충격파 손상이 더 큽니다. 폭발에 가장 취약한 것이 ‘생명체’입니다.

 

폭발한 선박을 가장 많이 접하는 전문가들은 ‘인양잠수전문가’일 것입니다.

 

인하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평생을 인양업에 종사하고 있는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는 이라크에 가서 어뢰 맞고 가라앉은 군함 11척을 조사한 인양전문가입니다. 그는 폭발로 발생한 인체손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종인 대표(위 사진)는 2012년 1월 15일 인천 자월도 앞바다 두라3호 유증기 폭발사고에 투입되어 시신을 수습할 당시 “(시신에) 목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두라3호 폭발사고시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무려 4구의 시신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고 벽에 발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천안함 절단면에서 최초로 발견된 희생자는 故 남기훈 상사의 시신입니다. 시신을 인양한 잠수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피부가 살짝 긁혔지만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고 말합니다.

 

 

첫 인양 희생대원 남기훈 상사가 발견된 곳은 절단면입니다.

 

남 상사는 원.상사 식당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원.상사 식당이 뜯겨져 나가면서 사고를 당하여 사망하였으며 날카로운 절단면에 옷깃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폭발의 충격파(국방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인은 ‘익사’였습니다.

 

 

 

해양기술개발 전중선 대표(위 사진)는 2010년 4월 24일 천안함 함수를 인양하였던 회사의 대표입니다. 그는 금년 3월 28일 KBS 추적60분과의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생존자들이 다들 깨끗하게 나왔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고막이 다 터져야 돼요”라고 말합니다.

 

다음은 함미를 인양했던 88수중개발 정호원 부사장의 법정 증언입니다. 

 


3. 물고기 폐사 - 3월은 백령도 까니리철 -

 

백령도 3∼4월은 까나리 풍어철입니다. 어민들에겐 1년 수확과 수입을 보장하는 생계수단입니다.

 

그 시기 인근 해역엔 까나리가 우글거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360kgTNT 폭발에 폐사한 까나리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폭발이 있었다면 인근해역엔 폐사한 까나리군이 포구마다 해변마다 발견되었어야 합니다.

 

 

제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국방부는 <조류가 강해 폐사한 까나리들이 모두 떠내려 갔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국방부 이재혁 대령)

 

서해안 조류가 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 마치 그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대단히 큰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조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한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조석의 변화는 하루에 두 번 발생합니다. 따라서 바닷물이 한쪽으로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빠져나간다는 것을 간과한 주장인 것입니다.

 

 

위 조석표는 천안함 사고 당일의 백령도의 조석표입니다. 2010년 3월 26일 밤 21:22분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거의 만조일 때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시간대에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정조시간대(조류가 정지하는 시간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새벽 3:41까지 물이 빠지며 다시 09:57까지 물이 들게 됩니다.

 

만약 폐사한 물고기 떼가 있었다면 거대한 군락을 형성하며 서해바다를 오르내리며 흘러갔을 것이고 이것은 헬기 혹은 주변 선박에서 충분히 관찰되었을 것은 물론, 인근 해안가에 떠내려와 포구마다 해변마다 폐사한 물고기 들이 발견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사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해상크레인(삼성중공업)과 유조선(홍콩)의 충돌사고로 유출된 시커먼 기름떼가 태안반도를  덮었습니다. 아무리 조류가 빠른 서해 바다라도 떠밀려오는 시커먼 기름떼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4. 물기둥

 

천안함에서 ‘물기둥’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고순간 함교밖 좌우엔 견시병이 있었고 그들 중 누구도 물기둥을 본 사실이 없음을 법정 증언하였습니다.

 

수중폭발이 있었다면 2∼20만 기압의 압력이 사방팔방 확산되다가 탁 트인 수면 위로 솟구쳐 100m 이상의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 솟구친 물기둥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5∼8초이며 물기둥이 수면위로 올라오기도 전 폭발소리에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 견시병이 그것을 보지 못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호주 토렌스함 어뢰폭발 실험 (천안함 추모관 동영상)

 

위 토렌스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폭발로 인해 물기둥이 선체를 부수며 올라오는 동안에도 견시병 위치에서 충분히 뒤로 돌아볼 수 있는 여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폭발로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져 견시병이 뒤를 보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어뢰 폭발실험 어떤 동영상을 보아도 폭발과 동시에 즉시 선체가 기울어지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체가 반파되고 난 후 무게중심의 이동에 의해 선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폭발에 의한 선체 움직임의 특성이며, 선체의 정지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좌우 견시병의 위치에서 폭발원점까지의 거리는 30m에 불과합니다. 

 

 

이론적으로 폭발원점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면 소리(폭발음)는 1초에 340m를 전파하므로 불과 0.1초만에 견시병의 귀에 닿게 됩니다. 그러면 견시병의 고개는 자동으로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후 발생하는 하얀 물기둥과 시커면 부유물들이 5∼8초간 하늘로 200m가량 솟구쳤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다가 낙하하는 물벼락을 흠뻑 뒤집어 써야 논리에 맞는 것입니다.

 

<배가 반토막나서 견시병이 쓰러지는 바람에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국민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어뢰폭발’만 입력하고 검색해보면 거대한 물줄기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갇혀 있는 바다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면 사방팔방 해수와 해저의 저항에 부딪친 충격파가 뻥 뚫린 하늘로 솟구치는 것은 기초 물리학입니다.

 


5. 고열(高熱)의 존재여부

 

천안함에 ‘화학적 변화’ 존재를 입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열(高熱)의 존재여부’입니다. 폭발은 반드시 고열(高熱)을 동반합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절단면 하부에서 무려 섭씨 3000도의 고열이 발생했다고 주장합니다.

 

호주 토렌스함                      천안함 절단면

 

그러면 위의 호주 구축함 토렌스호 어뢰실험처럼 선체 내부가 완전히 녹아내려 떡이 되었어야 하는데 천안함 내부는 녹아내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에 관한 무수히 많은 의문에 대해 마치 만능키인 듯 <버블제트>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가 신주단지처럼 생각하는 버블제트 어뢰실험인 토렌스함 절단면과 같이 시커멓게 녹아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봄날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흘러내린 케이블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요. 저 주렁주렁한 케이블들 아래에서 ‘3천도c’와 ‘2∼20만 기압의 충격파’가 가해졌다고 방문객들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국방부 요원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천안함 절단면 내부에 어떠한 고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장 결정적 증거는 케이블 절단부입니다. 저 케이블은 폭발로 인한 순간적인 절단이 아니라, 수초∼수십초의 시간을 두고 물리적으로 뜯겨져 나간 케이블입니다.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는 동안 어느 순간 케이블을 감싸고 있던 PVC피복(녹색)이 제일먼저 끊어집니다. 이후 내부의 구리선이 늘어날 만큼 늘어나다가 견디지 못하고 어느 순간 끊어집니다. 이때 구리선 끝단부가 관성의 힘에 의해 오그라듭니다. 전형적인 물리적인 절단의 형태입니다.

 

그리고 고열이 없었음을 증빙하는 중요한 증거물은 녹색피복과 케이블 사이에 있는 하얀 비닐(분홍색 화살표)입니다. 나풀나풀한 이 하얀 비닐의 두께는 분명히 종량제 쓰레기 봉투 보다도 얇을 것입니다.

 

전혀 녹은 흔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폭발’을 이야기 합니다.


6. 화염(火焰)과 그을음

 

폭발시 고열(高熱)과 함께 화염(火焰)이 발생하며 화염은 반드시 ‘그을음’을 남깁니다. 우리가 흔히 뉴스로 보는 ‘가정집 프로판가스 폭발사고’ 현장 사진만 보아도 내부가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되어 있는 장면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합니다. 그것이 ‘폭발의 결과물’입니다.

 

 

대구에서 프로판가스가 폭발했습니다. 그런데 인근을 지나가던 경찰관 2명이 충격파에 의해 사망하고 인근 주민 12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폭발현장의 모습은 시커먼 그을음 투성이입니다. 이것이 폭발입니다.

 

2012년 1월 인천 자월도 앞바다 두라3호 폭발사고에서도 TV에 비춰진 모습은 시커멓게 그을음이 가득 발려진 모습이었습니다.

 

물질이 연소되어 시커먼 탄소를 만드는 것은 기초과학(화학)입니다. 촛불 위에 하얀 종이를 가까이하면 종이에  검댕이 묻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7. 형광등 - 멀쩡한 유리제품

 

천안함 ‘최대의 미스테리’로 회자되며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사례입니다. 형광등 바로 밑 9m 하부에서 몇 겹의 철판을 뜯어내며 치고 올라오는 2∼20만 기압의 충격파와 섭씨 3000도의 고열에도 어떠한 손상을 입지 않은 형광등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노란색 원)

 

 

인천 두라3호 유증기 폭발시 30m 떨어진 선교의 손가락두께 유리창들이 모두 깨졌다는 사실과 너무나 대조됩니다. 국방부는 ‘내진 방폭 형광등’이라고 둘러댔지만 그런 형광등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8. 충격파(衝擊波)

 

선체는 거대한 ‘북’과 같습니다. 선체 외부에서 폭발해도 내부로 전달되는 충격파로 인해 사람의 신체에 손상이 발생합니다.

 

 

국방부는 천안함 하부에서 360kgTNT 어뢰가 폭발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폭발원점에서 가장 가까운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김병남 원사, 김덕수 상사 등 원.상사와 인근 침실에서 휴식중이던 대원들에게 신체적 손상이 없는 것에 대해 국방부는 <버블제트 어뢰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여 마치 폭발물과 선체 사이의 바닷물이 충격파 대부분을 흡수하여 선체에 미치는 충격파를 흡수해버리는 것처럼 인식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모순인 것은 <선체를 파괴시키는 충격파는 그대로 존재하였으나 유독 인체만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는 말과 같으니 네티즌들이 ‘친환경 녹색 어뢰’라며 국방부를 비웃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위 프로판가스 폭발의 경우 건물과 건물이 콘크리트로 막혀있음에도 30m이내 승용차와 주택유리들이 파손되고 주민들이 다친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서울 행당동에서 신호 대기중이던 천연가스버스 가스통 8개 중에서 하나가 터졌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여성 양쪽 발목이 절단되고 버스유리창이 모두 부숴졌으며 인근 상가 유리창들도 상당수 파손되었습니다.

 

폭발을 이용한 테러 가운데 놀랄만한 것으로 2013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 압력밥솥 폭발테러를 꼽을 수 있습니다. 2개의 압력밥솥이 터지면서 3명이 사망하고 26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부상자 상당수가 팔다리를 잃었습니다. 이렇듯 충격파로 인한 손상은 크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침몰 사건에는 충격파로 인한 인체손상이 단 한 사례도 없었습니다.

 

 


9. 커다란 굉음(轟音)

 

폭발은 ‘굉음(轟音)’ 즉 ‘큰소리’를 동반합니다. 사고 당시 큰 소리(폭발음.충격음)를 들었다고 대원들은 증언하지만, 정작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연화리 주민 가운데 360kgTNT 어뢰폭발 소리를 듣고 집밖으로 뛰쳐나온 주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불과 3k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어뢰’가 터졌는데...

 

다만 멀리 두무진에서 속초함이 새떼 보고 함포를 쏠 때 주민들이 뛰어 나옵니다. 어뢰의 화약은 함포 화약에 비해 수십∼수백 배나 되는데 어뢰폭발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즉 승조원들이 듣기에 큰 소리는 났으되, 소위 ‘어뢰폭발’과 같은 폭발의 소리(데시빌)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입니다. 

 

그것은 천안함 생존대원 가운데 고막 터진 대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어뢰는 무슨 얼어죽을..”

 


10. 적외선카메라(TOD) - 폭발 없음을 과학적(실험적)으로 입증

 

천안함 반파 직후의 TOD에 과학적 진실이 있습니다. 천안함 하부에 어떠한 온도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고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TOD영상입니다.

 

 

위 영상은 인천 알파잠수에 있는 수조에서 실험하는 장면입니다. 좌측의 사진은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가 불에 달군 쇠막대(수백도 수준)를 물에 담구었을 때 TOD(적외선카메라)에 나타나는 온도의 변화를 촬영한 모습입니다.

 

 

좌측의 수조실험과는 달리 우측의 천안함 TOD 영상에서는 해수에 어떠한 온도의 변화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만약 천안함 하부에서 3000도c 폭발이 존재했다면 최소한 몇 도라도 상승하였을 천안함 하부의 해수온도 변화는 TOD 영상의 색상변화로 나타났어야 하며, 차가운 선체 외판보다 훨씬 더 짙은 색으로 나타났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안함 반파직후 모습을 보여주는 우측사진에서는 적외선카메라에 색상의 변화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천안함 하부에 어떠한 온도변화도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인 것입니다. 

 

TOD는 과학입니다. 적외선카메라에 나타나는 것은 ‘온도변화’입니다. TOD 영상에 온도변화가 잡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최종적이고 과학적인 증거인 것입니다.


결언

 

이렇듯 ‘폭발’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자 국방부 수뇌부들은 고민 끝에 황당한 대안을 마련합니다. 소위 ‘1번을 쓴 어뢰’를 등장시켜 그것이 ‘천안함을 반 토막 낸 스모킹건’이라며 국민을 호도하고 진실을 왜곡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비접촉폭발’이라는 논리가 최초에 누구의 입으로부터 나왔던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바이블로 굳어버린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상철 (前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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