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의 파랑새, '슬픔접고 푸른하늘 훨훨'

갇힌자들도 함께 풀려나 모두가 활짝 웃는 따뜻한 희망의 새봄 기원

김형근 | 기사입력 2010/02/14 [04:01]

녹두의 파랑새, '슬픔접고 푸른하늘 훨훨'

갇힌자들도 함께 풀려나 모두가 활짝 웃는 따뜻한 희망의 새봄 기원

김형근 | 입력 : 2010/02/14 [04:01]
▲   작품 '키질'     ©컬쳐인 시흥  김경선

 
 설날   - 마늘 껍질 벗기며
 

여성들의 분주한 손놀림으로
설은 성큼 다가서 오고
집안 곳곳 방 마다에선
반가움의 목소리, 삶의 이야기
가난과 희망으로 여맨 보따리
봄눈 녹듯 사르르 풀어지고 마는데
 

어디에도 끼지 못해 허성이는 마음은
구석에 오무려 앉아 마늘껍질 벗겨낸다
 

한움큼 물에다 담그었다가
따닥닥 동그랗게 붙은 포기
엄지에 힘을 주어 반으로 쪼개
엉겨붙어 죽은 뿌리 뚝떼어서
또 한쪽씩 짜악짝 나누어 주어
겉과 속 꺼풀들을 손끝으로 벗겨낸다
 

껍질은 껍질, 속살은 속살대로
뽀오얀 알맹이 가득 쌓일 때까지
힘겹고 부끄럽던 삶의 허울도
따라서 벗겨내며 다둑이는데
 

손놀림만큼 쌓인 흔적 지켜보다가
문득 더덕덕 우북하고 투명한 애뿌리 내려
영롱하게 자라나던 생장점을 보았다
 

무심결에 지나던 쪽 위의 싹눈까지
연푸른 희망을 솟아내고 있어
맵고찬 속살 그 속에서도
한없이 조화로운 생명의 작용이여!
눈시도록 애리게 바라보았다
 

죽은 듯 두꺼운 각질을 뚫고
함박같이 움틔워낸 새생명 의지
험난한 세상살이 그 안에서도
물쭉같이 키워낸 부모은중이
대를 이어 살아낸 혈육의 정이
함지 가득 쌓여서 눈시울 붉혀
 

싸늘한 겨울날씨 분단세월도
해맑은 생명력 약동하라고
속 깊은 저 안에서 쟁쟁거리는
설을 맞는 또 다른 풍경
손톱 끝 씨애림도 잊어버렸다

 

 
이 글은 2004년(을유년) 설을 준비하며 쓴 사색의 편린입니다. 여전히 지속되는 우리네 가족들의 고단한 삶, 그리고 6.15선언 있었기에 분단이란 단단한 각질을 뚫고 나오는 여리고 푸르른 생명력을, 희망을 노래했던 것 같습니다.
 
조상 대대로 온가족 함께 모이는 설 명절! 이번 경인의 설날은 내 조국 벅찬 내일만을 노래하렵니다. 우리 민중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분단의 억압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잖아요. 언 땅 그 밑으로 흐르던 물이 물길 따라 졸졸졸 개울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눈물뿐이던 녹두의 파랑새, 슬픔은 접어놓고 저 푸른 하늘 향해 힘차게 날잖아요.
  
호시절이 되어 가는지, 저의 결심공판 일정이 잡혔답니다. 2월17일 오전 9시 전주지법 103호 법정으로 나오라 하네요. 이제 1심선고예요. 2006년 겨울의 조선일보의 공격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햇수로는 5년인가요?

살기위해 허겁지겁 하다 보면 돌이켜 눈 깜빡할 시간이겠지만, 참 길었네요. 압수, 취조, 투옥, 보석 등... 저를 잡아넣겠다는 사람들도 악랄했지만, 저 또한 있는 조건에서 모든 것을 다 던지면서 대항했기에, 그 시간들이 길게만 느껴지나 봅니다.
 
 
▲  문산 통일대교 건너 민통선내 장단마을에서 바라다본 dmz내 초평도 습지   ©박종남 컬쳐인시흥 

 
우리 민족에게 분단세월도 너무 길었지요? 이번 설이 지나면 약결강하 기세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통일이 성큼 오길 빕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따사로운 태양이 비치고, 갇힌 자들도 함께 풀려나  모두가 활짝 웃는 따뜻한 희망의 새봄이 되기를 빕니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겠지요. 


 
이글은 김형근 선생님의 '효량통신 61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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