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속으로'와 '작은연못'이 공존하는 세상

[방송비평] 이념적 편견 털어버린 '6.25' 작품을 기대한다

최현순 | 기사입력 2010/07/03 [07:05]

'포화속으로'와 '작은연못'이 공존하는 세상

[방송비평] 이념적 편견 털어버린 '6.25' 작품을 기대한다

최현순 | 입력 : 2010/07/03 [07:05]
6.25 당시 학도병을 소재로 다룬 영화 ‘포화속으로’가 어느덧 관객 200만을 돌파했다는 언론보도다. 한류스타(권상우), 아이돌 가수(빅뱅 t.o.p 최승현) 등을 주연으로 전면배치한 블록버스터 영화답게 연일 관객 최고기록 경신이다. 
 
한편 6.25를 소재로 다룬 영화로는 지난 4월 개봉한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소재로 다룬 ‘작은연못’이란 작품도 있다.
 
이 영화는 지난 4월 15일 개봉 약 45,000여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일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관객들의 요구에 의해 지난 6월23일부터 8개관에서 재개봉되었다. 200만 관객의 포화속으로에 비교하면 너무나 조용하고 초라한 재개봉이다.

2007년 당시 5.18을 소재로 다루었던 영화 ‘화려한 휴가’가 진보성향의 파워엘리트,지식인 및 시민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아래.
 
학생,젊은층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단체관람까지 벌어졌던 현상을 생각해본다면 ‘작은연못’의 초라한 개봉은 정권이 바뀐뒤에 달라진 세상인심을 실감케하는 장면이기도 해 씁쓸하기도 하다.
 
학도병을 소재로 한 영화 ‘포화속으로’가 대체로 보수우파진영의 코드와 맞아떨어지는 영화라한다면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연못’은 진보성향의 영화라 평가할만하다.
 
그래서인지 블랙버스터 ‘포화속으로’와 초라한 개봉을 한 ‘작은연못’의 대조되는 모습은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케한다.

6.25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격 기습남침을 개시 벌어진 전쟁으로 이는 불변(不變)의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6.25는 남,북한중 어느곳의 승리인가를 가늠하는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전 국토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맺었다. 무엇보다 6.25는 수많은 사상자와 미망인,전쟁고아 그리고 이재민을 만들어냈다.

6.25때 북한 공산군의 학살과 만행에 의해 희생된 사람도 많지만 보도연맹원 학살을 포함 미군과 국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도 적지 않음은 근래에 들어서야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무엇보다 보도연맹이나 부역자등의 누명을 쓰고 희생된 사람과 그 유가족들은 지난 수십년동안 소위 ‘빨갱이’란 오명을 뒤집어쓴채 연좌제의 굴레에 묶여 팝박받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전쟁과 비극의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훌륭한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을 많이 만들어낸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무기여 잘있거라’를 미국의 남북전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만들어냈다.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의 시대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이쯤되면 비극의 역사는 불후의 명작을 낳는다는 공식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6.25는 어떨까. 당장에라도 기억나는 작품들이 몇 있다. 홍성유의 ‘비극은 없다’와 ‘비극은 있다’. 최인훈의 ‘광장’,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장용학의 ‘요한시집’ 등등...

왜 전쟁의 비극은 불후의 명작을 태어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전쟁의 비극 그 자체가 인간의 다양한 본질과 본성을 제대로 고찰해볼수 있는 상황들을 저절로 만들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정치집단과 정치집단 또는 국가와 국가간의 이익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을때,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사용하는 가장 폭력적인 수단이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것은 결국 민중이며, 인간이며, 보통사람들이다.

인간은 확실히 희극보다는 비극에서 더 깊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시대는 인간의 비극을 가장 총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양산해낸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은 결국 인간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삶을 그리고,노래하고,말하고,써나가는것이 예술이기에 비극은 인간의 삶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고찰하고 성찰할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전쟁은 바로 인간을 가장 큰 비극의 극한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의 시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불후의 예술작품,문학작품을 많이 만들어낼수밖에 없다.

사실 ‘포화속으로’나 ‘작은연못’은 위에 열거한 1,2차 세계대전이나 남북전쟁등을 배경으로한 문학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못 된다. 다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포화속으로’와 ‘작은연못’이 공존하는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논하고 싶은 것이다.

포화속으로가 6.25때 참전한 어린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작은연못은 미군에 의해 희생당한 어느 한 시골마을의 평범한 민초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6.25사변이란 전쟁의 와중속에 희생당한 인간의 삶,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포화속으로’나 ‘작은연못’이 지향하는 이념적 성향을 갖고 왈가왈부 하는것은 사실 또다른 소모적인 논쟁이 될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6.25의 진상에 대해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어떻게하면 보다 제대로 알릴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제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중 6.25를 체험한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 6.25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도 어느덧 6.25 세대의 자녀세대뻘이지 그 당대를 살아본 사람들이 아니다.
 
6.25는 어느덧 60년전의 일. 이제 10대,20대들에겐 할아버지 시절에 있었던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같기만한 6.25를 그 교훈과 의미를 후세들에게 어떻게하면 제대로 전해줄수 있느냐가 6.25 세대의 자녀세대인 지금의 3,40대들에게 있다.

‘포화속으로’와 ‘작은연못’이 공존하는 이 시대 자체가 어쩌면 우리사회의 좌우갈등 구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말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 좌우갈등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남북분단과 6.25 그리고 구시대 이념논쟁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생각한다면 역시 비극은 여전히 진행중이라 말할수 있을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점을 하나 덧붙이자면 6.25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그동안 그런대로 많이 나왔으나 아직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무기여 잘있거라’나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울릴수 있는 6.25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제쯤이면 우린 이념적 편견을 모두 벗어던지고 개운한 마음으로 전 세계에 내놓을만한 6.25 소재의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킬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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