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희생당한 아이누족과 한민족

[홋가이도(北海道) 여행기 4] 영일(英日)의 역사왜곡과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 찾기’라는 퍼즐 맞추기

김병섭 | 기사입력 2007/10/29 [12:08]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희생당한 아이누족과 한민족

[홋가이도(北海道) 여행기 4] 영일(英日)의 역사왜곡과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 찾기’라는 퍼즐 맞추기

김병섭 | 입력 : 2007/10/29 [12:08]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희생당한 아이누족과 한민족

[홋가이도(北海道) 여행기 4] 영일(英日)의 역사왜곡과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 찾기’라는 퍼즐 맞추기

작성일 : 10월 23일

이런. 비가 내렸다. 오늘 여행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다행이었다. 삿포로 모이와산(藻岩山)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 볼 수는 없었을지언정 시내 답사는 대부분 건물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로 인한 여행 차질이 그나마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타루(小樽)나 비에이(美瑛)를 가지 않고 미리 갔다 온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인 유스호스텔을 나와 빗속을 걸어 홋가이도 대학(北海道大學)에 들어섰다. 역시 아침은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주스로 해결을 했다. 빗속 캠퍼스를 거닐다가 9시 30분 경 대학 박물관에 들어섰다.

홋가이도 대학이 설립된 것은 1876년이다. 1876년은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해 중에 하나이다. 바로 굴욕적인 강화도 조약이 있었던 해이기 때문이다. 1869년에 이 섬을 홋가이도(北海道)로 명명하고 영토로 편입시킨 메이지 정부는 홋가이도 개척의 거점을 삿포로(札幌)로 결정하였다. 삿포로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함께 설치한 것이 홋가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였다.

일본이 홋가이도를 1869년에 영토로 편입시킨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홋가이도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전초기지였던 것이다. 우리도 고려시대에 5도양계로 행정구역을 둔 적이 있었다. 이중 양계는 북방의 특별 행정구역으로 군사적으로 중요시 되었던 지역이다. 홋가이도는 고려시대의 양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었다. 지금도 홋가이도(北海道)는 “1도(都) 1도(道) 2부(府) 43현(縣)”인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유일한 도(道)로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

홋가이도가 러시아 영토가 아니라 확실히 일본의 영토가 되기 위해 가장 시급했던 것은 홋가이도에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것이었다. 즉 많은 일본인들을 이주시켜야 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민을 이주시키는 것이다. 영국도 아일랜드 북부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해 국민을 이주시키는 방법을 취한바 있다. 지금 중국은 티벳과 만주를 자국의 영토로 공공이 하기 위해 한족(漢族)을 대량으로 이주시키고 있다.

홋가이도에 일본인들을 이주시키면서 가장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항은 이주한 일본인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절실히 육성해야 할 산업이 농업이었다. 더욱이 홋가이도는 일본에게 새로 주어지는 땅이었으므로 이를 잘 개간한다면 일본의 식량증진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메이지 정부는 판단하였으며, 그 판단은 옳았다. 농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농업학교였다. 삿포로 농학교는 이런 배경 속에 시급히 건설되었던 것이다. 농업학교에서 출발한 홋가이도 대학은 지금도 농학과 자연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캠퍼스의 상당 부분이 농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1] 홋가이도 대학 모형

당시 메이지 정부는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홋가이도를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을 시급한 당면 과제로 인식했었다. 삿포로 농학교 초대 총장으로 개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인을 고용하였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삿포로 농학교의 초대 총장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농과대 학장이었던 윌리암 클라크(william s. clark)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했던 경험을 전수하고 홋가이도의 자연을 파악해 농지를 개척해 줄 적임자로 메이지 정부는 미국인 윌리암 클라크(william s. clark)를 지목했던 것이다. 윌리암 클라크(william s. clark)는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뉴잉글랜드식 개척정신을 대학과 홋가이도에 주고 떠났다.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명언과 함께... “boys, be ambitious"

[사진 2] “boys, be ambitious” 꿈을 상실한 현 시대, 너무나 소중한 명언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사할린을 일본은 홋가이도를 접수한 후, 러시아는 남하를 일본은 북진을 하였고, 두 국가 사이의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마다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그러하기에 양국은 아직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국가가 사할린과 홋가이도를 접수 한 것은 기껏해야 100여년에 불과하다. 과연 몇 천 년 이 땅의 주인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홋가이도의 주인은 아이누족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인가? 필자가 알기로 상당수는 멸족을 당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일본에 동화되었다. 일본은 아이누족을 동화하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였으며 창씨개명을 단행하였다. 아이누족에게 썼던 동화정책은 후에 한민족에게도 그대로 단행되었다. 홋가이도나 조선이나 아이누족이나 한민족이나 당시 처해 있던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당시 일본에게 홋가이도와 아이누족이 일종의 모의시험 대상이었다면 조선과 한민족은 본 시험 대상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창씨개명은 아이누족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되었고 한민족에게 본격 도입되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요에 의해 성씨를 외형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씨를 잊지는 않았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성씨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잃었을지언정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성씨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수천년간 지켜온 성씨제도는 곧 없어진다. 창씨개명 때에도 지켜온 성씨제도가 이제 내년이면 무너진다. 성씨제도가 양성평등에 위배된단다. 그래서 없어져야 한단다. 양성평등과 부계성씨가 어떻게 모순관계에 있는지 필자는 누구에게도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필자는 스스로 양성평등과 진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국가, 민족, 기준, 정체성, 역사, 전통, 문화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양성평등과 진보가 악용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필자를 보수로 칭하던지 진보로 칭하던지는 세속의 무리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자칭 현 한국의 진보들과는 분명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국가, 민족, 전통이 무너지면 현 한국의 진보들이 추구했던 바도 다 물거품이 된 다는 것이다. 이는 무거운 주제다. 그런데 가벼운 것만 떠들도록 만드는 한국의 현 풍토 속에 이런 무거운 주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이제 이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우리의 참 역사가 어떠했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 어디서 어떻게 왜곡된 것인지... 우리는 기존의 역사책과 새로 드러난 사실과 흔적을 찾아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와 이웃해 있는 사할린과 홋가이도가 우리와는 관계가 없었을까? 필자는 그 흔적을 얼마 전에 발견한 바 있다. 필자에게 무슨 공상소설을 쓰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모든 냄새나는 것들을 추적해 봐야 한다. 그런 냄새를 맡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역사와 진실을 찾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연해주와 사할린 사이의 해협은 타타르(리)해협(tatar str.)이라 불려진다. 문제는 이 타타리(tartarie)가 조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옛 서양지도를 보면 아시아 북방에는 언제나 타타리가 등장한다. 그 타타리를 북방유목민족을 통칭하는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이성계 부족을 타타리로 부른다는 견해도 있다. 필자는 두 견해가 다 옳다고 본다. 이는 상당히 복잡한 역사 전개를 바탕으로 하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튼 타타르(리)해협의 존재는 적어도 조선-북방유목민족과 연해주-사할린과의 관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한 역사가는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과 싸워 지킨 녹둔도(鹿屯島가 두만강에 있다 지금은 연해주에 붙어버린 자그마한 섬이 아니라 사할린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 주장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본다. 두만강을 가 본 필자는 두만강의 폭이 아주 좁은 것을 확인하였다. 폭이 좁은 강에 있는 조그마한 섬에 수군(水軍)이 진을 치고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화살공격 한번이면 전멸을 당할 곳에 과연 진을 쳤겠는가? 타타르(리)해협에서 가장 좁은 폭은 7㎞에 불과하며, 11∼5월이면 해협이 얼어붙어서 걸어서 건널 수 있다고 한다.

사할린이 녹둔도라면 조선의 영토가 반도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이에 대해 최근에 흥미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산(白頭山)이 사실은 묘향산(妙香山)이고, 진짜 백두산은 만주에 있는 평정산(平頂山)이라는 주장이다. 간도학회에서 주장한 바 있고, 최근에는 대한지적공사에서 유사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도대체 우리의 역사는 어디서 어디까지 왜곡된 것인가? 

[사진 3] 左 - 1935년 하버드대학에서 출판한 중국역사부도집편의 1760년대의 중국과 주변 자치령의 지도 (출처 : 오마이뉴스) / 右 - “우리나라 북방영토의 경계획정에 관한 연구”, 대한지적공사 조병현 지적재조사팀장, 2007 (출처 : 국민일보)

조선은 언제나 반도에 있었다고 배워온 우리다. 그러나 저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역사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누가 무슨 목적으로 저렇게 역사를 바꾸어 놓았는지 겁이 덜컹 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왜곡이라는 것 30년이면 족하다. 2002년에 만주 고구려 유적 답사 후, 고구려 역사 중국에 넘어간다고 했다고 바보 취급 받았었던 필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국내에서도 고구려 역사를 중국과 공유해야한다는 얼간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만 왜곡되었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의 역사만 왜곡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역사가 왜곡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남해경 시대소리 발행인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전 세계 역사라는 것이 1911년에 정립된 역사라고 한다. 당시 서양과 동양의 맹주였던 영국과 일본은 공동으로 1911년에 세계대백과사전을 발간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역사왜곡의 최종판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등장했다는 일반 역사학자들의 주장에도 반론을 제시한다. 그는 고려와 조선이 동시에 존재했었다는 南고려-北조선 가설을 설정하고 있다. 남쪽에 고려해(sea of korea)가 북쪽에 타타리(르)해협(tatar str.)이 존재하는 것으로 봐서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에 반해 필자는 고려가 1,000년을 이어왔으며 조선은 한반도만의 특별행정구역으로 봐야 한다는 가설을 설정하고 있다. 물론 남해경 발행인이나 필자가 모두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지금의 역사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확실한 것은 러시아의 남하와 일본의 북진 사이에서 가장 피해를 본 민족은 아이누족과 한민족이라는 사실이다.

홋가이도 대학 박물관을 나서 스스키노(すすきの) 라멘요코초(ラーメン横丁)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고기가 잔뜩 들어간 라면이다. 라면에 들어간 고기는 한국에서 먹던 삶은 머리고기와 비슷해 보였다. 유명한 라면 골목이라고 해서 좀 클 줄 알았는데,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비도 오고해서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사진 4] 스스키노(すすきの) 라멘요코초(ラーメン横丁)

비는 계속 내렸다. 한국으로 태풍이 갈 것이라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태풍으로 제주도에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라멘요코초(ラーメン横丁)를 나와 마루야마 공원(円山公園)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지하철 바퀴가 자동차 타이어였던 것이다. 이런 바퀴는 2001년에 유럽에 갔을 때 파리 지하철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왜 지하철에 자동차 타이어를 달았을까? 잘 모르겠지만 자동차 타이어는 소음 감소에 확실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쇠끼리 부닥쳐서 내는 괴음은 없을 것이 아닌가? 

[사진 5] 삿포로 지하철 바퀴 

[사진 6] 삿포로 지하철은 삿포로시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계속)


원본 기사 보기:ddcng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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