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롬덴 추장은 골짜기로 돌아 갔을까?

플라치도 | 기사입력 2007/12/02 [14:26]

브롬덴 추장은 골짜기로 돌아 갔을까?

플라치도 | 입력 : 2007/12/02 [14:26]
크리스토퍼에게 영어로 된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는 봉직의사 생활을 청산하고 개업을 준비 중인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 중이었다. 친구는 옛날 미문화원 사건 동지이자 근 삼십년 지기로서 같은 외과 여의사다.

- gud pm doc its me, christopher. i would like to thanks for helping me. god bless thank you.

                                    송도해안가를 걷다가 잠녀들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식당을 나서기 전에 답장을 보내고 친구와 송도 바닷가를 걸었다. 바람이 불었지만 낮 시간에 걷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바닷가에서 막 해산물을 따고 올라온 잠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노동은 참 고귀하다. 잠녀할머니들의 끈질긴 삶의 힘은 어린시절부터 익히 보며 자랐다.
친구와 걸으면서 생각난 건 ‘뻐둥새’였다. 1975년 다섯 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휩쓴 캔 캐이시 원작,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떠올렸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맥머피(잭 니콜슨 분)는 강제 노역을 피하려고 어느 날 일부러 미친 척하였는데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교도소의 처벌로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정신병을 가장하여 정신병원으로 들어 온 맥머피는 근대 계급 사회의 억압구조의 상징인 정신병원의 규칙들과 그 지배 체계 하수인의 상징인 수간호사 래치트에게 맞선다. 맥머피는 동료 죄수들을 이끌고 바깥바람을 쐬고 온다거나 하는, 래치트의 기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을 벌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맥머피와 환자들을 구속하고 억압하려 하는 래치트의 대립에서 결국 맥머피에게 돌아온 것은 교화와 치료라는 미명 아래 시행된 전기충격요법(eletroshock therapy)과 현대 의학 기술을 동원하여 그의 뇌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lobotomy)이었다. 십년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 온 아메리카 원주민 브롬덴 추장은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닌 친구 맥머피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식물인간이 된 그를 안락사 시킨다. 그리고 브롬덴 추장은 덧문을 부수고 정신병원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의 부족이 살고 있을 골짜기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열흘 전쯤이었다. 노동사목 지도신부인 손 다미아노 신부의 전화를 받은 것은.
“행님, 창원에서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상담소를 찾아왔는데 참 난감하네요.”
신부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크리스토퍼(29세)는 가슴이 뛰고 답답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해 마산의 ㅍ 병원에서 심장에 대한 검사를 하였으나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고, 환자는 불안한 증상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런 크리스토퍼 보고 필리핀으로 귀국을 종용했다. 환자는 입원치료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라모, 일단 구호병원으로 보내봐라. 내가 수녀님께 전화를 넣고, 구호병원으로 가볼끼니까.”
마침 그 날은 수요일이라 쉬는 날이었다. 구호병원에 갔더니 불안한 안색의 크리스토퍼와 동행한 낯익은 k가 와 있었다. k는 해운대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있는 친구다. 직장 일을 잠시 미룬 채 같은 필리피노를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이런 걸 동포애라고 하나? 필리핀 공동체가 나름대로 잘 짜여진 것 같았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에서 크리스토퍼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며칠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일하는 공장은 사출공장이다. 김해에서 일하다가 창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을 먹으러 갔는데 술값 17만원을 크리스토퍼가 내도록 했다는 것이다. 더치 페이를 하지 않고. 그 뒤로 위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슴사진과 심전도 검사는 이상이 없었고 그냥 일주일 정도 충분한 수면과 휴식으로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크리스토퍼, 이 병원은 무료병원이니까 전혀 입원비 걱정은 하지 마라. 자기 30분전에 먹는 수면제와 진정제를 처방해 줄게. 일주일 정도 푹 쉬어라. 그리고 회사의 사장에게는 좋게 이야기 해 줄게. 나는 두 번 정도 올 수 있다. 만약에 문제가 있으면 간호사가 나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푹 쉬어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갑자기 바뀐 공장에서 같은 필리핀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것이다. 그의 월급이 얼마인데 17만원은 거액이었다. 고향을 떠나 멀리 타국에서 어렵사리 고된 노동을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그를 데리고 왔던 k의 지갑에서 100만원 뭉치 돈을 얼핏 보았다. 병원에 입원할 것에 대비해서 k가 급히 마련한 듯했다. 사실 그는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야 했다. 이주노동자인 그로서는 종합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수개월 간의 노동의 결과를 수포로 돌리는 것이다. 하여, 외과의사인 내가 그를 입원시켜 치료를 하다니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서글프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돌팔이 외과의사야! ㅡㅡ;;

                                입원 나흘째 우리는 서로 손전화로 사진을 한장씩 찍었다.

전세계 인구의 1/4이 일생동안 한 번 이상 정신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는 who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에 4억 5천만여 명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간질, 치매, 알코올 중독 같은 정신신경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나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전문의 상담을 받지 못한 채 해마다 1천만에서 2천만 명의 환자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고, 이 가운데 10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고 있다고 분석한다. 3대 정신질환인 정신분열증, 우울증, 간질을 치료하는 처방약을 제대로 갖춘 나라가 25% 밖에 안 되고, 전신건강에 대한 보건정책이 아예 마련되지도 않은 나라도 40%나 된다고 한다. 전세계 나라들의 2/3가 보건 예산을 전체예산의 1%정도로 책정해 놓고 있으며, 1/2은 정신과 의사가 10만 명에 1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80% 이상이 기족들의 도움 아래 1년 정도 치료를 받으면 정상이 될 수 있고, 우울증이나 간질 환자도 60-70% 정도는 회복이 가능한 만큼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도 who 보고서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화요일 탈장수술을 하러 구호병원에 갔다가 크리스토퍼를 만났다. 그 사이 병동에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식사도 잘하고 잠도 충분히 자고 바이탈 사인도 괜찮다고 했다. 퇴원을 위해 회사에 전화를 넣었더니 회사에서 과장이 병원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수술을 마치고 수술복을 입은 채로 병실에 갔더니 과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토퍼는 공장에서 일하기를 강력히 원합니다. 지금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아마 친구들의 따돌림에 심리적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가슴이 답답했던 것 같아요.”
나는 크리스토퍼가 다시 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많이 걱정하는 것을 알고 넘겨짚으며 말했다.
과장의 말은 공장이 김해와 창원 두 곳에 있는데 김해에서 일하다가 창원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장은 최근에 일어난 필리핀 노동자 자살사건을 알고 있었다. 우울증으로 산에서 목을 매단 사건이었다. 한달쯤 되었을까. 손 다미아노 신부가 필리핀 친구들과 그 문제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혹시 크리스토퍼가 우울증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우울증은 아닙니다. 일시적인 스트레스와 환경변화에서 오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자신도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니까 잘 할 겁니다.”
“그럼, 공장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크리스토퍼와 악수를 나누고 말했다.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시간 나면 일요일에 가톨릭센터 미사에 와. 돈 워리. 비 해피.”
- don't worry. be happy. 이 말은 내가 이주노동자들에 자주 쓰는 말이다.

정신보건 영역에서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의 내용은 많다. 정신병 환자는 위험하거나 난폭하여 범죄를 잘 저지른다. 정신질환자는 엉뚱하거나 특이하다. 정신병은 사회적으로 창피한 병이다. 격리수용해야한다 등등. 정신질환을 일탈로 보고 낙인과 배제, 사회적 통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한 사회적 편견은 사라질 수 없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고, 사회 여러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문자 답장을 보내고 나서 크리스토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다행이다. 일요일에 가톨릭센터로 올 있느냐니까 근무 시간상 이번에는 못 가지만 다음에는 꼭 가겠다고 한다.


뻐꾸기 둥지(the cuckoo's nest')는 정신이상자들이 모여 있는 정신병원을 상징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는 정신병원을 탈출하려는 정신병 환자의 상태 즉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본능’을 뜻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1962년에 간행된 미국의 장편소설을 영화화 한 것인데 원제목인 '한 마리는 뻐꾸기의 둥지 위로 날아갔다'는 인디언의 전래동화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그나저나 ‘뻐둥새’의 브롬덴 추장은 무사히 그 골짜기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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