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입춘굿 놀이마당에서

굴렁쇠 | 기사입력 2007/02/06 [18:53]

제주 입춘굿 놀이마당에서

굴렁쇠 | 입력 : 2007/02/06 [18:53]
입춘(立春), 제주에서는 '샛절('새 절기'를 의미)드는 날'이라 합니다.
옛날에는 이날 이웃집에 다니는 것을 금했습니다.
풍습이었지요. 입춘날은 이렇게 마음가짐부터 새로웠습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절기였기 때문이죠.

제주도에서는 이날 큰굿을 합니다.
새봄을 맞이한 기쁨과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는 '입춘굿'을 말합니다.
유명합니다. 굿은 놀이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세경놀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주 농경의 여신인 '자청비'에 대한 의례와 연희를 통해 풍년을 기원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은 흥미롭습니다.
입춘굿을 할 때 탐라왕이 소를 끌며 쟁기를 잡고
몸소 밭을 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섬 백성들은 모두 관덕정 마당에 나와 입춘 춘경을 구경하며 액땜을 했었구요.

입춘굿이 끝날 때 쯤이면 익살스러운 탈굿놀이로 탈을 없애는 액막이를 합니다.
이때 목사와 고을 사람들은 대동놀이를 즐깁니다.
평등사회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있었지요.

이조시대에 창건되어 558년 역사를 간직한 관덕정(보물 제322호)은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제주사람들이 모여 들어 시장판을 벌이고,
온갖 놀이판이 벌어지는 굿놀이 마당이기도 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는 대중집회가 열리기도 했고,
제주민란과 4·3의 피어린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슬픔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지난 2월 4일,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의 김윤수 수심방의 집전으로 일만팔천 제주의 신들을 초청해
올해의 풍등(豊登)을 기원하는 큰굿이 한나절 동안 열렸습니다.









입춘굿을 구경하는 제주여인들...저 마다의 가슴에 소망을 담으면서도,
고단했던 지난날을 회상하시는가 봅니다. 그 슬픔의 시간들을...





입춘굿의 상징인 '낭쉐'(나무로 만든 소)가 떡 버티고 있군요.
제주 섬사람들이 올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소망종이를
낭쉐에 내걸어 놓았습니다.
제주 섬사람들은 낭쉐에 소원을 걸면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건강하게 잘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소망종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꼬마녀석도 열심히 소원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누나는 동생이 무척 대견스러운가 봅니다.

정성들여 새끼줄에 소망종이를 매다는 아이들의 마음엔
벌써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요.







제주 목관아지(사적 제380호) 마당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이 무거운 제 마음을 씻어줍니다.

복원된 이 연못은 '池島(지도)'라고 옛문헌에 나와 있습니다.
1526년(중종 21년)에 이수동 목사가 성 안에 우물이 없어서 만들었고,
그것을 양대수 목사 때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워서 메워버렸다고 합니다.
목사도 백성을 생각하는 목사와 그렇지 않은 개꼬라지 목사가 있었네요.
양대수 목사는 성을 순시하다가 말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것 참...
연못 뒤로 중대문(中大門)이 보입니다. 동헌(東軒)으로 통하는 외대문(外大門)과
내대문(內大門)의 중간에 있는 대문입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예전에 절제사(節制使)가 사무를 보던 홍화각(弘化閣)의 뒷모습이 보이는군요.

무슨 영문인지 시민들이 꼬리를 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았습니다.






아하~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님이 원인제공자셨군요. (반갑습니다...꾸벅~!)
박 화백님은 제주와 인연이 많으신 분입니다.
친구인 강요배 화백과 더불어 제주 4.3민중항쟁의 진실을 캐기 위해
많은 시간을 화산섬 제주에 바쳤습니다. 그의 장편 애니메이션 <오돌또기>가
올해는 뜻하신대로 잘 제작되어 햇빛을 보았으면 해요.

입춘굿 놀이에도 여러 차례 내려 오셨다네요.
제주 섬사람들의 얼굴을 무료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거리화가로 나가시더라도 굶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한 어린이가 한참동안 저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도 이만큼 그릴 수 있는데..."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인들이 눈에 띄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늘씬한 처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스파크가 일었습니다. 그래서 찰각~
'우리 차 마시기' 체험장이었군요. 마침 목도 컬컬하여 이 차 저 차 마셔보았습니다.
은은한 차, 쌉싸름한 차, 새콤한 차, 향긋한 차...맛들이 저마다 달랐습니다.
여섯잔째 자리를 옮겨가며 마시다가 '꺼억~' 트림을 한 죄로 그만 쫒겨났습니다.








서예가 현병찬 선생님이 입춘굿을 구경 온 시민들에게 '가훈'을 써주고 계시네요.
저도 하나 써달라고 말씀드리려다 아쉽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도무지 가훈이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내 마음속의 굴렁쇠'를 가훈이라 우겨볼까 생각도 했는데 아뢰지 못했습니다.
저 큰 붓이 내 이마 위에서 광란의 춤을 추지 않을까 두려웠거든요.
집에 돌아와 우리집 내무장관께 물어봤더니 <웃으며 살자>가 가훈이라더군요.






이건 또 무슨 행렬?
박재동 화백님 말고, 조선의 화성 김홍도 어르신도 오신겐가?
특종일 수도 있겠다 싶어 줄을 따라 가보았습니다.
어떤 아짐씨가 저를 보고 '미꾸라지처럼 왜 새치기 하냐'며 도끼눈을 치켜듭니다.
도끼눈이 무서워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피했더니 정말 새치기를 하고 말았네요.






아, 여기는 국수집(?)이네요. 이 마을 자생단체 부녀회에서
입춘굿 국수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공짜니까 한그릇 얻어 먹고 갈까, 망설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국수를 삶는 여인들의 손길이 분주했습니다.
물을 끓이고, 국수를 삶고, 삶은 국수 물에 풀어 헹구고,
한웅큼씩 나눈 국수를 사발에 담고, 육수를 붓고...
구경하는 저도 정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자씨가 왔다갔다 하는게 더 정신이 없어. 삶은 국수 옮기게, 좀 비켜~"

다른 분들이 국수를 맛있게 잡수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불렀습니다.

(아쉽게도 사진기 상태가 좋지 않아 세경놀이와 탈굿놀이를 담지 못하고 목관아지를
빠져나왔습니다.)








입춘(立春)이라지만 겨울을 털어낼 수 없다.
새봄이 와도 그럴 것 같다. 일년내내 겨울일 수도 있겠다.
대자연의 현상을 우리 인간들이 따라가지 못해서일까.
그래도 입춘날 반짝 '봄'의 기운을 만끽했다.
그 실핏줄 같은 봄은 어둠에 묻히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시간의 행렬 -

다시 일상이다.


- 굴렁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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