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통 짊어지고 떠나는 농부들의 화려한 휴가

[무늬만 농촌출신농사일 체험기] 농사고수 아버지, 화나면 공력 상승

이민선 기자 | 기사입력 2008/08/11 [10:36]

농약 통 짊어지고 떠나는 농부들의 화려한 휴가

[무늬만 농촌출신농사일 체험기] 농사고수 아버지, 화나면 공력 상승

이민선 기자 | 입력 : 2008/08/11 [10:36]
 [아버지 어머니 평생직업인 농사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부모님이 농사지어서 보내준 쌀 과 고추, 배추 등을 여태껏 얻어먹으면서도 어떻게 자라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농사일 체험기를 가을 벼이삭 추수 때까지 연재 한다. -기자주-] 

 
▲ 농약주기, 조카     © 이민선

무더운 여름철, 도시에서는 휴가 얘기로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농촌은 무엇이 핫 이슈 일까? 바로 농약 이다. 농부들은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에서 ‘농약 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그 다음 약 통을 짊어지고 또는 경운기나 트럭에 싣고 들판으로 ’화려한 휴가‘ 를 떠난다.

장마철이 지나면 병충해가 기승을 부린다. 독한 농약을 치지 않고 벼를 갉아먹는 해충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우리 농촌은 그런 묘수를 찾지 못한 듯하다. 농약을 치지 않고 친환경 재배를 하는 곳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분 일 뿐이다.

경기도 양평은 유기농 단지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양평군에 있는 농가 중 40%정도가 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양평군 친환경 농가 비율이 높은 이유는 자치단체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 줬기 때문이다.

13년 전부터 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방식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5년12월에는 친환경 특구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팔순 부모님이 농사짓고 있는 충남 예산은 아직 친환경 재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예전 모습 그대로 여름이면 농약 통을 경운기에 싣고 또는 짊어지고 들판으로 향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농약을 치지 않으려면 특수한 농법이 필요하다. 또, 마을 전체가 모여 ‘결의’ 를 해야 한다. 절대 농약을 치지 않겠노라고.

만약, 혼자만 또는 일부 농가만 농약을 치지 않는다면 그 집은 농사를 망치게 된다. 농약을 뿌린 논에서 도망친 해충이 모두 모여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해충들 ‘파라다이스’ 를 만들어 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농약 치지 않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마을 전체 ‘결의’ 가 필요한 것이다.

농약 치지 않고  농사짓고 싶기는 하지만 

 
▲ 경운기에 약통을 싣고     © 이민선


“얘 아배야 빨리 일어나라 늦으면 농약 못 준다”

고함에 가까운 아버지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5시, 아직 캄캄한 밤이다. 아버지는 2년 전부터 청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당신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금만 목청을 높이면 화가 나서 ‘고함’  치는 것처럼 들린다.

이른 새벽에 농약을 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벼에 이슬이 맺혀 있어서 농약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버스를 피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로로 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첫차(7시30분)가 지나가기 전에 경운기를 길가에서 치워 주어야 한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이미 밥상을 차려 놓았다. 밥맛이 없어도 몇 숟가락은 떠야 한다. 어머니가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조카 녀석은 이미 밥상에 앉아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먼전 일어나 “호철아 할아버지 기다리신다. 빨리 일어나라” 라며 어른스럽게 살짝 나무랐었다.

논 에 도착할 때쯤 동이 텃다. 파란 벼들이 물결치는 모습이 새벽바람만큼이나 시원하다. 허걱! 100m 미인이라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인가! 약대(분무기대)를 쥐고 논에 들어와 보니 벼들이 파랗지 않았다. 병이 든 벼 잎은 누렇게 떠 있었고 해충들이 갉아 먹은 자욱이 벼 잎에 선명하게 나 있었다.

이제야 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농약을 치려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만 늦추자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벼들이 누렇게 타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마 아버지 속도 까맣게 타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농사 망치는 것을 망신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신다. 현역 농부 중 아버지는 거의 ‘최고참’ 이다. 아버지 말을 빌리면 “애들 보기 창피한 것”이다. 아버지가 말하는 애들은 70대와 60대 를 말한다.

농사 망치는 것을 ‘망신당하는 것’ 으로 생각하는 아버지

▲ 논둑옆 콩 에도 약을 쳐야한다     © 이민선

“야 이 녀석아 둑가시(논 둑 옆) 있는 베(벼)에는 하나도 안 묻잖아 션찮게(시원치 않게) 주면 주나 마나여”

좁은 논둑길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오는 아버지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잘 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저 정도면 굉장히 화가 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것도 13살이나 차이가 나는 조카 녀석 앞에서. 얼굴 화끈 거리는 순간이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늙은 고수들이 지팡이 짚고 다니며 끙끙 거리다가 위급한 순간에는 갑자기 힘이 나서 공중곡예를 하며 적들을 물리친다. 그것처럼 농사고수 아버지는 평상시에는 허리가 아파서 빨리 걷지도 못 하다가 뭔가 마뜩치 않은 일이 생기면 갑자기 공력이 상승해서 논둑길을 타고 날아다닌다. 

“아버지 논둑 옆에 한 번 더 줄까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시쳇말로 ‘쪽 팔리는 순간’ 이지만 다소곳하게 아버지 말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처신 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뭐라 대꾸하는 순간 불호령은 재차 삼차 떨어질 것이다. 난 아버지 공력을 당 할 수 없다. 80년 농사공력 아버지를 ‘무늬만 농촌출신’ 인 내가 어떻게 감당 하겠는가!

조카 녀석 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다소곳해야 한다. 할아버지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착한삼촌’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다.

“야 이 녀석아 오른쪽은 하나도 안 묻잖여 농약도 부족헌디 왜 자꾸 왼 쪽으로만 내 두르는 겨”

이번엔 조카 녀석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약대(분무기대)를 조카 녀석에게 넘겨주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사태(?) 다. 농약 치는 일이 끝날 무렵 아버지 령(令) 에 따라 조카에게 약대를 넘겨주었다. 손자에게 농사일을 실습 시키려는 할아버지의 깊은 배려다.

“얘 이제 내려오지 마라. 할아버지가 일하러 오라고 해도 오지 마. 당신은 어째 툭하면 그렇게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고.....늙어서나 젊어서나 쯧쯧”

옆에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핀잔하며 조카 녀석 역성을 들어 줬다. 마침, 어머니가 자전거에 음료수를 싣고 논에 와 있었다.

할머니 역성에 힘입어 할아버지에게 ‘앙탈’ 이라도 부릴 줄 알았던 조카 녀석은 기특하게도 “예 알았어요‘ 라며 오른 쪽 벼에다 농약을 듬뿍 뿌렸다. 좀 전에 모범을 보인 효과가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야 이 녀석아 둑가시는 하나도 안 묻잖여”

▲ 아버지     © 이민선


농약을 뿌린 날은 지난9일(토요일) 이다. 일을 마치고 난후 몇 시간 뒤 비가 내렸다. 비가 올 때 난 이미 경기도 안양에 와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여기 비 많이 오는데 거기 어때요”
“여긴 몇 방울 떨어지다 말았어! 걱정 말아라 비와도 농약 다시 안줘. 이미 해충들은 다 도망했거나 죽었어”

역시 아버지는 고수다. 목소리만 듣고도 막내아들 마음까지 읽어내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고수다. 농부들이 여름에 떠나는 화려한 휴가, 일 년에 한번쯤은 묻어서 갈만 하지만 두 번 세 번 가기는 부담스럽다. 너무 덮고 힘들기에.

농약을 치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또, 가만히 서 있기도 힘 든 무더운 날씨에 땡볕을 머리에 이고 들판에서 일을 해야 한다. 몸에 걸치는 장비는 일사병 걸리기 딱 알맞은 수준이다. 물 장화에 비 옷, 보기에도 더워 보이는 긴팔 옷에 마스크 까지. 농약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몸에 걸쳐야 하는 장비다.

농약은 대체로 일 년에 두 번 이나 세 번 친다. 하지만 우리 마을 현역 농부 최고참 아버지는 딱 한번만 친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다. 한 번에 해충을 다 몰아내는 노하우가 있는 것인지 수확에 대한 마음(욕심)을 비운 것인지는 잘 모른다.

[무늬만 농촌출신] 은 80년 공력 농사고수 와 함께 떠난 화려한 휴가를 통해 농부들 고마움을 다시한번 느꼈다.










원본 기사 보기: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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