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회 '대반란' 대선정국 충격파

박창환부장 | 기사입력 2008/10/01 [23:10]

美의회 '대반란' 대선정국 충격파

박창환부장 | 입력 : 2008/10/01 [23:10]
"믿었던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백악관의 발등을 찍다"

임기 말년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자존심을 구겨가며 7천억달러 규모의 금융구제 법안 처리를 위해 의회에 하소연도 하고 머리도 조아렸지만, 정작 믿었던 공화당 의원들의 `반란표'로 인해 법안처리가 무산되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29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금융구제 법안의 예상치 못한 부결사태는 곤두박질친 뉴욕증시의 주가만큼이나 워싱턴 정가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차기 정권을 인수하게 될 공화당 존 매케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선후보에게는 대선을 불과 30여일 앞두고 위기관리 능력의 드높은 시험대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의회지도자들이 빚어낸 총체적인 리더십 부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 점은 미국의 현 집권세력에게는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 될 전망이다.
 
하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고작 65명이 찬성표를 던진 데 반해 배에 가까운 133명이 법안에 반대표를 행사함으로써 금융법안의 부결을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140표, 반대 95표를 행사한 것과 비교해 볼 때 공화당의 '반란'이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라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됐음을 시사한다.
 
만일 부시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이 공화당 저류에 흐르는 이 같은 '쿠데타' 정서를 읽지 못한 채 표결을 강행했다면 리더십의 실종, 백악관과 의회간의 소통 부재, 국정 최대 어젠다에 대한 준비부족 등 이외에는 마땅히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는 결국 재임기간 온갖 실정을 거듭해 온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친정'인 공화당 내부에서도 땅에 떨어졌음에도 백악관과 의회가 공화당이라는 이념적 연결고리로 '대통령 호소=공화당 의원 지지'라는 등식에 안주했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아침 일찍 tv에 출연, "아주 어려운 표결이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막판까지 대의회 읍소작전을 펼쳤지만, 민주당 보다 훨씬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보스'의 말을 거절한 셈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현실적으로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내세우는 금융붕괴 위기 방지라는 '검증되지' 않은 대의명분보다는 '탈(脫) 부시' 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월가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를 납세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막는데 대한 유권자들의 `불복종' 정서가 강하다는 점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당파적 이익 보다는 개인적 정치 이해관계에 따른 투표를 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미래 권력'을 놓고 사활을 건 승부를 펼치고 있는 매케인과 오바마에게는 이번 금융구제법안 부결사태는 `현재형'이자 대선과 직.간접적으로 맞물린 `미래형'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10월이면 돌출사건이 발생해 대선의 흐름을 바꿔놓는다는 '옥터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이틀 정도 먼저 등장한 격이기도 하다.
 
당장 현 시점에서 유.불리만 따지자면 매케인의 '적자 폭'이 훨씬 커 보인다. 매케인은 지난 26일로 예정됐던 대선후보 1차 tv토론을 연기하자고 승부수를 던질 만큼 금융위기 극복에 초당적, 거국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을 미처 간파하지 못한 듯하다.
 
매케인이 공화당 내부를 다잡고 찬성표를 결집시켰다면, 당에 대한 장악력은 물론 위기관리능력을 과시할 좋은 기회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실기(失機)했다.
 
매케인은 금융구제법안 부결사태에 대해 선뜻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고민의 깊이가 컸을 것이라는 방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제관리 능력이 오바마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온 매케인에게는 이번 부결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지금도 뒤쳐져있는 지지율을 만회하거나 역전시킬 기회가 더욱 줄어든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어 보인다.
 
매케인이 30여일 남은 대선기간 내내 이 문제에 발목이 잡혀 끌려가는 형국을 맞게 된다면 대권고지 등정은 점점 더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칠 수 있다.
 
결국 구제금융 부결사태는 매케인을 '구제'해 주지 못했고, 만일 매케인이 대권을 놓친다면 '9.29 공화당 반란'이 대선가도에서 가장 중요한 패인 중 하나로 꼽힐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도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95표가 나오는 바람에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공화당의 배에 해당하는 140표의 찬성표를 견인해 냈다는 점에서 매케인 보다는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오바마는 구제금융법안의 부결에도 불구하고 아직 법안처리가 끝난 게 아니라면서 금융시장 참여자들에 대해 침착성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는 등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반응을 보였다.
 
오바마는 일단 자신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교.안보 이슈가 뒤로 밀리면서 경제이슈가 대선정국을 지배한다면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신문고뉴스 영남취재본부/취재부장
日刊 투데이로우 보도국/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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