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블러핑.

류철원 | 기사입력 2007/01/17 [15:50]

대통령의 블러핑.

류철원 | 입력 : 2007/01/17 [15:50]


개헌소동이 아햏햏한 이유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로 행복한(?) 유권자들일 지도 모른다. 그간 노무현 정권은 임기내내 소위 지방분권화를 운운하며 온 세상을 개발열풍과 부동산게임으로 몰아 넣더니, 이제는 임기 마지막 해까지 손에 땀을 쥐는 정치놀음을 선사하기 위하여 원포인트개헌을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때맞춰 보수언론과 노빠언론은 한 목소리로 이번 노무현의 베팅이 가져올 각 정파별 손익계산을 예측하며 자아도취에 여념이 없다. 가히 '노무현판 바다이야기'가 따로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정치권력 쟁탈전에 온 국민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형국이다.

그러나 어쩌랴. 개헌정국을 촉발한 정권측과 오랜만에 받아든 이바구거리를 뻥튀기하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 미디어를 제외한 대다수의 서민대중들의 인식은 마치 역전의 약장수가 펼치는 뱀쑈나 원숭이 재주를 구경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소동은 바로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개헌논의의 미진에서 유래한 것도 아닐 뿐더러, 고작 권력구조에 국한되어 촉발된 노무현발 개헌 소동이 자신과 사회의 장래를 유동적으로 만들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솔직히 나는 노무현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논의가 미흡할지나마 액면 자체에는 진정성과 선의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가 개헌논의의 근거로 제시한 몇가지 역시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와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음을 공유할 수 있다. 내친김에 더 나아가 최근 한나라당을 포함한 대다수와 심지어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제기하는 시기의 적절성 역시 말이 안되는 궤변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노무현이 제기한 개헌논의의 판을 키우면서 더욱 빡세게 치킨게임을 주도하지 못하고, 하나마나한 <숨은 정략 찾기>에만 골몰하는 인상을 주는 민주노동당의 제 구실 못하기에 넌더리가 날 정도이다.

노무현발 개헌소동의 한계

솔직히 이번에 제기된 원포인트 개헌논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운운하며 시기의 적절성에 문제제기를 하는 기억상실증은 문제가 크다. 그동안 수년 전부터 정치개혁을 논의하는 테이블마다 이 문제와 선거구제는 단골메뉴였었고, 또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의 일정한 공감대는 항상 존재해왔었다. 심지어 정치의 고비용 고리를 끊어내는 현실적 방안으로 연임제 개헌과 국회의원 선거와의 일치 여부는 다수의 동의가 이루어졌으며, 극심한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정책중심의 정당정치를 일상화시키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중대 선거구제는 물론 독일식 정당명부제까지 다양한 방안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보수언론은 소위 전문가를 잠칭하는 필객들을 동원하여 연일 공감대 타령을 하고 있다. 심지어 평소 연임제 개헌이 자신의 소신이자 견해라고 말하던 한나라당 빅쓰리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환각증에 시달리며 오로지 '노무현이 제기해서 싫어'라고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이제 연임제 개헌에 대한 정당과 후보들의 평소 입장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으며, 오로지 시기의 적절성을 빙자하여 죽어가는 권력에 대한 왕따와 거리두기만 존재할 뿐이다. 하기야 노무현의 입장에서도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일 것이다. 막말로 청와대의 항변처럼 4년전의 대통령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것이 무슨 죄일까?

그러나 노무현발 개헌소동의 한계는 전혀 엉뚱한 곳에 존재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이 정확하게 언급하듯이 서민의 삶의 문제와 사회적 진보개혁 의제가 배제된 노무현발 개헌소동은 그 자체가-노무현 개인이 정략적인지 여부는 관심도 없지만- 보수정치판의 정략적 산물에 불과하며, 이러한 판세 속에서만 선거구도를 형성하는데 익숙했던 노무현 정권의 한계이다. 비유컨데 국회 의석수를 늘이고 줄이는 것이 정치개혁의 본의와 직결될 수 없는 것이며, 기껏 권력구조 변화 여부가 당대 시대정신을 가늠하는 사활적 패러다임으로 작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들은 보수정치권과 주요언론들이 바람을 잡고 있는 노무현발 원포인트 개헌논의에 필요이상의 관심을 기울일 여유도 이유도 없어지는 셈이다.

노무현의 블러핑과 진보진영의 응전

어릴적의 우화에 여우와 황새 이야기가 있었다. 여우는 황새를 초대하여 접시에 식사를 담아내고, 황새 역시 주둥이가 긴 물병에 음식을 담는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스스로가 공언한 것처럼 노무현의 감각은 오로지 한나라당에 대항하여 발달된 신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는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 역시 오직 한나라당과 불량언론 탓이며, 열린우리당의 난파 역시 한나라당의 원심력이 일정 역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무현의 정치적 해석과 결단에는 항상 한나라당이 상수로 존재하며, 대연정과 양대산맥론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냉온탕을 오가는 정치적 셈법에 서민과 진보개혁의 의제는 대부분 열외였던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이 노림수가 거의 바닥난 노무현의 이번 거의 막바지 블러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당연히 한나라당이야 잃을 것이 분명한 싸움이기에 발을 빼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한 보수정치권이 절대로 응전하지 못하는 그 지점을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이 선점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인 점이다.

가깝게는 헌법개정 논의에 담아낼 요구와 의제들이 산적해 있다. 소위 '김종인 조항'이라고 불린다는 헌법 119조 2항을 점진적으로 구체화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토지와 주택의 공공성 명시 등 구체적 민중성과 직결되는 문제들이 비단 하나 둘 뿐이랴. 더 나아가 오늘의 민주노동당을 있게 만들었던 의료와 교육 문제를 접근하는 관점에서부터 조세부문에 있어서까지 보수정치권은 엄두도 내지 못할 테제와 정책들을 격의없는 테이블 논제로 제기하는 소중한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일로 예정된 청와대 논의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만 불참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를 막 접했다. 막말로 이것은 미친 짓이다. 그들만의 게임에 들러리를 서지 않는다고 상황이 해결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말자. 또한 고답적인 시선으로 개헌소동을 매개로 보수집단들이 펼치는 선정적 득실게임을 방관하지도 말자. 이미 당의 누군가는 이번 개헌소동의 깃발을 온전하게 민중적 관점으로 되찾아 제헌논의를 촉발시키자는 의견까지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제 누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예정된 블러핑에 맞서 시대적 요청과 민중의 요구를 온전하게 대변하며 보수정치권을 향하여 치킨게임을 선도할 것인가? 비록 노무현이 벌인 판이지만, 오히려 보수정치권의 정략적 개헌소동을 민중적 개헌논의로 변화시키자. 승객이 타지 않았다고 이미 출발한 열차는 되돌아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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