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설날'이면 박정희의 망령이 떠올려 지는가

설날 떠오르는 단상...박정희는 독재자, ‘그 때 그 사람’으로 남을 뿐

조종안 편집위원 | 기사입력 2009/01/23 [08:23]

나는 왜 '설날'이면 박정희의 망령이 떠올려 지는가

설날 떠오르는 단상...박정희는 독재자, ‘그 때 그 사람’으로 남을 뿐

조종안 편집위원 | 입력 : 2009/01/23 [08:23]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철부지 시절 교실에서 신나게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는 해 설날은 속상한 명절이 되곤 했습니다. 올처럼 1월에 들어 있으면 방학기간이니까 괜찮은데 2월에 들어 있으면 학교에 가야했거든요.   
 


세배를 다니면서 세뱃돈을 받아야 하는 시간에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때에는 등교하라는 선생님을 원망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선생님 심정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겠더라고요. 
 
철부지들이 ‘민족 명절’, ‘전통문화’ 등에 무슨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오직, 새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면서, 세뱃돈을 모아 팽이와 구슬을 사고, 영화도 보러 갈 수 있는 즐거운 날로만 알았지요.
 
연말에 신문사에서 나온 달력에 표시해가며 기다렸던 설날에 학교에 가야 했으니 속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서랍에서 제 손을 기다릴 딱총과 구슬, 인파로 넘치는 영화관 앞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무슨 공부가 되었겠느냐는 것이지요. 
 
선생님이 설날에도 학교에 와야 한다고 하면 여기저기에서 ‘우~’하는 소리가 들렸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간 우리는 양지쪽에 모여 세뱃돈을 화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얄궂었지요. 
 
선생님은 우리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공부시간에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 발사와 핵무기 경쟁, 미국의 헤비급 복서 리스튼과 패터슨 대결 등 흥미 있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멸시와 차별을 받던 흑인선수 소니 리스튼은 패터슨에 도전, ko승을 거두고 승승장구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 (나중에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난 후에 이름이 무하마드 알리)에게 두 번이나 ko로 패하고 링을 떠났지요.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도 “음력은 정확하지 않으니 양력설을 쇠어야 한다. 집에 가거들랑 어머니에게 꼭 전해라.”라는 대목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전통문화를 절단하려 했던 박정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구국의 영도자라며 떠받드는 박정희는 ‘민족’이나 ‘자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민족의 전통 명절인 설을 쇠지 못하게 했고, 음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단기(檀紀) 표기를 없앴고, 설날을 두 개(‘신정’과 ‘구정’)로 절단 내는데 선봉에 섰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기(西紀)는 서양에서 시작됐고, ‘단군기원’(檀君紀元)의 준말인 단기(檀紀)는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던 1948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부당하게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가 ‘서기’만 사용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중과세 방지를 홍보하면서 ‘단기와 음력은 구시대적이다.’, ‘단기와 음력은 정확하지 않다.’는 등의 말이 나돌았고 지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이 친일세력의 기만극에 놀아나는 것을 시급히 막아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양력 1월1일을 ‘신정’, 음력 1월1일을 ‘구정’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특히 ‘디지털’과 ‘돼지털’도 분간 못 하는 얼뜨기 지식인들이 tv에 나와 ‘구정’이 ‘신정’ 동생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고, 전통문화를 절단하려 했던 독재자를 기리는 집회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양력설을 ‘왜놈 설’이라고 했던 어머니에게 들은 얘긴데요. 왜놈들은 제사에 사용할 술을 빚는 일은 물론 설날을 보름 정도 남겨두고부터 방앗간기계를 돌리지 못하게 했답니다. 설날 아침에는 경찰을 동원해서 흰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막았고, 양력설에 세배를 안 다니고 무색옷을 안 입는다며 흰 무명옷에 물총을 쏘아댔다고 합니다.
 
왜놈들의 감시와 박해 속에서도, 숨어서 우리 설을 쇠었다며 누구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던 어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을 생각하면, 박정희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고 혈서만 쓸 줄 알았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구국의 영웅인지 대일본제국의 영웅인지 헷갈리는 박정희. 그는 전통 명절인 설을 없애려고 했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피죽으로 연명하던 일제하에서도 지켜온 설날을 물자부족과 기강을 명분으로 쇠지 못하게 했는데, 장기집권을 위한 사전포석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때 그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뿐 
 
‘용돈’이라는 낱말도 생소했던 아이들 손에 세뱃돈이 몇 푼씩 쥐어지고, 가난뱅이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던 설날은 아이들에게도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해부터는 절망으로 바뀌었지요. 
 
아무리 뒤져봐도 우리 조상들이 일 년에 설을 두 번씩 쇠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이중과세를 들먹이며 공무원을 출근시키고 학생들을 등교시키면서 우리의 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왜놈들의 문화말살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민의 권리를 여지없이 짓밟았던 것이지요. 
 
친일파들의 활동공간을 제공해준 이승만 시절만 해도 겉으로일망정 일본을 감시하면서 나름대로 자존심을 지켰는데, 박정희가 등장하면서 사회 전반에 일본제국주의 문화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았고, 초등학생들은 지정된 장소에 모여 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며 열을 지어 등·하교를 했습니다. 지방순시 때는 며칠 전부터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는 연습을 했는데요. 훗날 대한뉴스에서 평양 학생들이 기를 들고 줄지어 가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진짜 ‘좌빨’이 누구인지 고민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답게 왜놈들 설에는 ‘금딱지’인 ‘신정’을 붙이고, 천 년 넘게 이어져 오는 우리 설에는 ‘곰보딱지’ 같은 ‘구정’을 붙여 조상과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포장된 업적을 나열하면서 경제를 일으키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대통령이라며 선동합니다. 지구촌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들이 많다는 것은 가슴도 아프지만,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별을 두 개나 달고 대장으로 진급해서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던 박정희.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30년 넘게 후퇴시켰으며 의식과 개념까지도 병들게 했던 박정희도 이제는 딸 같은 처녀들과 양주를 마시다 부하의 총에 비명횡사한 독재자, ‘그때 그 사람’으로 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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