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그림 하나, 화가에겐 '자신만의 우주'

오진국 화백 | 기사입력 2009/02/07 [07:01]

작은 그림 하나, 화가에겐 '자신만의 우주'

오진국 화백 | 입력 : 2009/02/07 [07:01]

 
"지구본"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518)
original image size 6000 x 4000 pixel(68.7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 작은 그림 하나가 화가에게는 자신만의 우주다.
 
은하계에 그 수 많은 별들 중에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인간들- 그것도 동 시대에 같은 지역이나 나라에서 같은 주제로 희로애락을 나누는 이웃들은 어찌 보면 정말 가족보다 진한, 질기디 질긴 인연이다.
 
우주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보면 무소유, 무집착의 불교적 가르침이 얼마나 소중하며, 그런
작은 집착이 가지는 허망함과 보잘 것 없음이 더욱 확연해진다. 특히 우주관에서 부피나 크
기에 관한 문제를 대입해 보면 거리와 크기의 함수관계로 인하여 사람의 눈에서 읽히는 사물의 질량이 얼마나 허상인가도 알게 되고 '나노'단위의 백만 분의 1도 안되는 작은 점 하나가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우주관은 <대폭발 이론>과 함께 천체물리학과 같은 과학적 토대로 씌여진 것이지만 중국의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란 '천지만물의 총칭으로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모든 세계를 가리킨다.'거나 '천지(天地) 사방(四方)과 고왕(古往) 금래(今來)'라는 추상적 표현에 더 비
중을 두고 있다.
 
하기야 서양에서 조차도 과학적 사실보다 종교적 신앙에 기본을 둔 시절이 있었는데 우주의 기원에서 부터 영역적 사고가 불가능했던 고대 중국인들로써 어떻게 더 이상 이론적 근접이 가능했겠는가?
 
10호 짜리 작은 그림 한 점이 화가에게는 우주(the universe 혹은 the cosmos)다. 창작이란 늘 새로운 형상이나 물질, 또는 내면적 발로를 표현하는 과정으로 그것이 곧 창조의 일환이라고 보기 때문에 수많은 産苦를 수반하여야 하고 그러한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그것이 미숙아건, 저능아건 간에 하나의 생명을 부여받는 과정은 동일하므로 산모는 그러한 불행을 막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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