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경비 마련, "돼지새끼 사다가 키우자"

<샘터에서>김 문호, “초등학교 김영영 선생님”

김문호 | 기사입력 2009/02/25 [07:29]

수학여행 경비 마련, "돼지새끼 사다가 키우자"

<샘터에서>김 문호, “초등학교 김영영 선생님”

김문호 | 입력 : 2009/02/25 [07:29]
그 해 사월초하루, 막 오학년이 된 우리들의 담임으로 전근 오신 분이 바로 김영영 선생님이셨다. 약간 큰 키에 유별나게 긴 목, 왼쪽 눈꼬리 밑의 팥알만한 사마귀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무섭게 보이는 인상이었다.

거기에 혀가 짧은지 수업 내내 ‘알았나?’ 대신 ‘안나?’를 반복하셨다. 그러자 선생님의 별명은 당장에 ‘쟐비스’로 굳어졌다.
 
그 때 나이 많은 급우들이, 사회생활 교본에 나오는 ‘안나 쟐비스’ 부인의 이름에서 따다 붙인 것이었다. 휴전 후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의 우리 반에는 적령(適齡)보다 대여섯 살이나 많은 처녀 총각들도 적지 않았다.

오월 중순께의 어느 날이었다. 하루의 수업을 끝낸 선생님이 우리들을 주목(注目)시키고는 돼지 새끼를 사다 키우자고 말씀하셨다.
 
육학년이 되면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계산한 소요 경비를 우리들에게 할당시키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추렴이 쉽지 않았다. 월사금(月謝金)도 제대로 못내는 반원들이 허다했던 당시의 여건상 적지도 않은 가욋돈이란 당초에 무리였다. 급기야 교장선생님이 만류하고 나섰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면내의 마을들을 자전거로 돌면서 기어코 거지반의 기금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도저히 어려운 몇몇 급우들의 몫을 당신이 대납해서 갓 젖을 뗀 새끼 돼지 한 쌍과 함석 바께스 두 개를 사 오셨다.

우리들의 돼지치기는 세 사람씩 조를 짜서 하루씩 돌아가며 당번을 서는 방식이었다. 돼지 당번이 드는 날이면 평소보다 일찍 등교해서 먹이를 준비해야 했다. 빈 바께쓰를 들고 선생님 댁으로 가면 사모님의 설거지 구정물로 채워진 다른 바께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막대기에 걸어서 들고 와서 쌀겨와 타서 먹이는 것이었다.

달포가 지나면서 새끼 돼지들은 예상외로 잘 자라 주었다. 고작 큰 쥐 만하던 몸체가 눈에 띄게 길어지고 키 또한 몰라보게 커졌다. 그러면서 교장선생님의 우려도, 이웃 학부형들의 의구심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나이 많은 급우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돼지 농사는 수지맞는 일이며 쟐비스는 배짱 있는 선생이라고…. 그 때 나는 수지나 배짱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들이 선생님을 대단하게 보고 있다는 것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것은 돼지우리를 지으면서 생긴 앙금이었다. 그 때 선생님은 당신의 지시에 따라 지게를 지고 등교한 나이 많은 반원들을 앞세워서 우리집 선산의 나무를 베어 내린 것이었다. 그것도 어른들의 팔뚝보다 굵은, 십년생은 족히 넘을 소나무만으로 다섯 짐이나 마구잡이로 베어 넘긴 것.

그러고는 울상이 되어 있는 내게, 아버님을 곧 찾아뵐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한 마디가 고작이었고 나로서는 아침저녁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느라 밥맛조차 잊고 지내는 세월이었다.

약주 됫병을 손에 든 선생님이 우리집 사랑방으로 아버지를 찾아오신 것은 그로부터 열흘도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어른들의 말씀이긴 하지만 엿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돼지를 키우게 된 동기며 경과 등 변죽을 울리다가 드디어 나무를 벤 본론으로 들어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선생님은 또다시 나를 경악시키셨다. 당신이 우격다짐으로 했다고 해야 할 일을 마치 내가 자진 헌납한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드님 하나는 잘 두셨습니다.”라고 아부까지 곁들이는 모습은 차라리 야비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그때 나로서는, 학교 인근에 자기네 산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생각 없이 손을 번쩍 든 죄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영락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불호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의 얼굴을 봐서 참으시는가 싶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 집 재물도 지킬 줄 모르는 철부지라고 혀를 차실 것만 같았고 그런 나의 자격지심은 오랫동안 용해되지 않은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우리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나 톱을 빼앗긴 아랫마을 청년들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뜨끔거리는 속병이었다.

오학년을 마감하는 날, 통지표를 받고 봄방학으로 들어가는 시간에 선생님의 마지막 훈시가 있었다. 육학년이 되면 담임이 바뀌지만 돼지를 더욱 잘 키우라고, 그래서 수학여행은 전원이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때 선생님의 눈꼬리 밑 사마귀 너머로 무슨 물기 같은 것이 번득였다. 그 순간, 어쩌면 선생님도 마음씨가 나쁘지는 않은 분이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육학년도 여름방학을 지나 선들바람이 불어올 때쯤, 새끼가 열 마리도 넘는 돼지 가족 전부를 내다 판 우리들은 경주와 포항을 아우르는 수학여행 준비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또한 간단하지 않았다. 
 
각자의 배당금에 조금씩만 보태면 되는 일이었지만 대다수의 학부형들이 이것조차 동의하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일 년도 넘게 쌀겨를 갖다 먹인 대가를 배당받으려 했다. 그래서 칠십 명도 넘는 반원 중 마지막 참가자는 이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 교장선생님을 위시한 몇 분 선생님들이 우리들의 여행에 동행했지만 김 영영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술을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교무회의에서 교장선생님에게 자주 대들면서 밉보인 탓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바닷물을 떠 와서 소금을 만들자는 담임선생님의 제의에 흥분해 있던 우리들로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다만 나이 많은 급우들이, 쟐비스가 담임이었다면 자기들도 갈 수 있었을 거라면서 저들끼리 쑥덕거릴 따름이었다.

졸업을 며칠 앞두고 사은회(謝恩會)가 열렸다. 김 영영 선생님은 무척 흥겨운 표정이었다. 우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다정한 눈길로 손을 잡아 주셨다. 나이 많은 급우들을 따로 불러내고는 그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

그러던 한 순간이었다 “이놈들!”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김 영영 선생님이 춤판에서 뛰어 나오셨다. 그러고는 청년이 다 된 제자들을 일렬로 엎드리게 해서 묵직한 몽둥이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선생님의 머리위로 백묵가루를 뿌렸다는 것이었다.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항의하고 나섰다. 당신이 뭔데 남의 잔치에 훼방을 놓느냐고…. 그러자 김 영영 선생님은 더욱 언성을 높이셨다. 당신이야말로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기에 아이들이 스승 어려운 줄 모르도록 그릇됐느냐고…. 자연 사은회가 맥이 빠지면서 몇몇 선생님들이 혀를 차며 일어서자 나이 많은 급우들이 중얼거렸다. 역시 쟐비스는 막걸리가 문제라면서…. 

대처의 중학교로 진학하고 나서 첫 고향 나들이는 새 교복에 모표와 뱃지가 번쩍이는,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김 영영 선생님이 저쪽에서 걸어오셨다. 약주를 하신 듯, 오후의 햇살에 안면이 번득였다. 내가 자랑스럽게 거수경례를 드렸지만 알은체도 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머쓱해진 나를 데리고 어느 길가 집 뒤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러고는 밑도 끝도 없이 모자를 벗으라면서 꾸중을 시작하셨다. 진학을 포기한 채 농사꾼으로 들어선 대다수 동급생들의 마음을 생각하라면서, 앞으로 고향에서는 교복조차도 입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무섭게 나무라시는 것이었다.

자랑스러운 교모(校帽)를 가방에 쑤셔 넣은 채, 짓구겨진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으면서 백 번을 되짚어 생각해 봐도 김 영영 선생님이 너무하신다 싶었다. 워낙 좋아하시는 막걸리 탓이려니 자위해 봐도 영 석연치 않았다. 유독 나에게만 가혹한 선생님의 처사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마흔 해도 더 지난 선생님의 모습과 행적이 지금 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기억력과 감수성이 풍족했던 젊음을 지나 이제 내 나이 또한 수월찮은 잉여의 시간에 마치 인화액 속의 천연색 사진처럼 선연히 떠올라서 전신을 휘감는 연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스승의 위망은 저리도 유장해서, 치졸하기만 했던 제자의 아둔을 이토록 뜨끔하게 편달하는 것인가?

지금 그 어른 혹시라도 어디쯤에 살아 계실까?





▶ 김문호 <문학동인 글마루 회장.>    
▽ 김문호 프로필

現 문학동인 글마루 회장.
한국문협회원
예술시대작가회 회원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한국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2003)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2003)
강남문협 주최 서울문예상 수필부문 수상(2005)
수필집 <내 인생의 자이로 콤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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