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4일 줄다리기 '사과'없이 '유감'으로 종료

남북 고위급 마라톤 회담 6개 항 합의 '타결' 합의문 동시 발표

임두만 | 기사입력 2015/08/25 [02:29]

무박4일 줄다리기 '사과'없이 '유감'으로 종료

남북 고위급 마라톤 회담 6개 항 합의 '타결' 합의문 동시 발표

임두만 | 입력 : 2015/08/25 [02:29]

[신문고 뉴스] 임두만 기자 = 비무장 지대 지뢰 폭발로 야기된 서부전선 양측 포격 사태로 초래된 한반도 군사적 긴장 상황을 논의하는 남북 고위급 접촉이 2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지난 22일부터 25일 새벽까지 남북에서 최고위급 2인씩 4인이 무박 4일간 43시간 이상의 마라톤 협상을 진행한 끝에 극적 합의를 이룬 이번 회담에는 남측에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서는 황병서 군 총 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참여했다.

 

▲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kbs 뉴스속보 영상  캡쳐   ©임두만

    

25일 새벽 2시 청와대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한 김관진 안보실장은 북한 측의 도발에 대한 명시적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한 회담이었다고 회담의 결과를 자평했다. 그러나 남북간 합의한 합의문과 김 실장의 발표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어 보인다.

    

즉 합의문 2항인 “북 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 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 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함”이란 문구가 그렇다.

 

이 합의문은 ‘지뢰를 북한이 매설했으며 그 지뢰로 인해 남 측 군인들이 부상한 것을 사과한다’는 명시적 표현이 아니라 그냥 남 측 군인들이 부상한 것이 유감이란 정도이므로 “북한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받아냈다”는 김 실장의 발표는 일방적 해석으로 보여진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와 재발방지”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합의문 어디에도 사과는 커녕 재발방지 같은 문구는 없다. 그냥 '유감'이라고 했다. '지뢰폭발'에 대해서, 그것도 행위 주체는 명시하지 않은 채 유감이란 표현만 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당신네 지역에서 지뢰가 폭발하여 당신네 군인이 다친 것인데 그걸 우리가 했다고 하니 유감이다. 즉 우리는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하므로 그게 유감이란 말이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합의문 자체로만 보면 북 측은 포격에 대해선 물론이요, 지뢰 '도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재발 방지 약속도 하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은 언감생심이다.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시한 마지노선인 '원칙'은 전혀 관철되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되었다.

    

도발 책임을 인정하게 만들고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루게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는데, 정작 아무 것도 달성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김관진은 말한다. 이에 대해 질문한 기자에게 명확한 답변도 없이 ‘북의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은 것은 성과이며 이는 우리가 처음부터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쯤하여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강경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왜 이런 합의를 승인했을까, 이 정도가 자신이 말한 사과와 재발방지에 흡족한 답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누군가 합의를 종용한 보이지않는 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긴장고조, 무력충돌 상황이 만들어진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것 아닐까, 여러 의구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제 3항도 그렇다. “남 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는 문구도 상당한 해석이 필요하다.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는데 그 앞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란 전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란 북한 측의 도발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는 합의한 시간이  8월 25일 0시 55분, 합의문을 발표한 시간은 8월 25일 02시이므로 앞으로 10시간 동안 계속 방송을 하겠다는 것이 된다. 쌍방 평화협상으로 마무리 지었는데 그 후 10시간 동안 계속 적진을 향해 총을 쏘겠다는 말이다. 이상하지 않을 수  없는 합의문이다.

    

하지만 어떻든 남북 양 측은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가 얻을 것은 얻은 회담으로 보는 것 같다. 따라서 휴전선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한 것에 대하여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회담 막판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란 마지노선을 공개적으로 제기, 회담 대표들의 운신폭을 좁혀버림에도 이 같은 ‘타결’소식을 가져 온 협상팀의 자세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남북이 합의한 합의문 6개항 전문이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이 2015년 8월22일부터 24일까지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다. 쌍방은 접촉에서 최근 남북 사이에 고조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진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함.

    

3.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

    

4. 북측은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했다.

    

5. 남과 북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 초에 가지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이상의 발표문에서 보듯 남북 양 측은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교류의 활성화를 통한 평화무드 조성을 위해 쌍방이 확실한 합의를 한 것. 이는 현재 남북 양 측이 처한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발 쇼크가 우리 경제 전반을 덮친 지금 휴전선 변수까지 겹친다면 바닥에 가라앉은 경제는 땅 밑으로 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은 이런 현실에 대해 전전긍긍 대북변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북한 김정은 정권 또한 북한식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대내외에 천명, 평양을 비롯한 북 측에 외국인들의 활동공간을 넓여주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군사적 충돌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던 셈이다.

 

따라서 합의문에서 보듯 미묘한 부분은 양 측 모두 자기들이 승리했다는 명분을 얻었다고 선전활 수 있도록 모호한 해석이 가능한 문구로 합의문을 작성하고, 그 외 이산가족 상봉과 교류 활성화 등 능동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은 명확하게 언급, 서로의 입장을 세워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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