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독감'.. 세계화 시대 지구촌의 손님

<추천칼럼> 전염병 확산속도는 인류의 이동속도다

채수경 | 기사입력 2009/05/04 [03:31]

'돼지독감'.. 세계화 시대 지구촌의 손님

<추천칼럼> 전염병 확산속도는 인류의 이동속도다

채수경 | 입력 : 2009/05/04 [03:31]
▶ 1665년 유럽을 휩쓴 흑사병. 당시 모습을 그린  유화
전염병은 동물 몸속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속으로 침입하여 발생하지만 그걸 여기저기 옮기는 것은 사람이다.
 
‘전염병’ ‘유행병’을 뜻하는 영어 ‘epidemic’의 뿌리 또한 ‘-위에’ ‘-와 관련된’을 뜻하는 접두사 ‘epi-’에 ‘사람’을 뜻하는 ‘demos’가 합쳐져 만들어진 그리스어 ‘epidemia’로서 ‘방문’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한국서도 천연두는 ‘큰 손님’, 홍역·수두는 ‘작은 손님’, 두 볼이 항아리처럼 부어오르는 이하선염은 ‘항아리 손님’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사람이 병을 옮긴다는 인식은 동서양 공통이었던 것 같다 같다.
 
그러다가 홍수나 가뭄 때 더러워진 물에 의해서도 병이 옮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생겨난 게 ‘염병할 놈’의 염병(染病)이다.
 
천을 나무[木]에서 뽑은 진액[水]에 여러 번[九] 담근다는 의미의 물들일 염(染)은 홍수나 가뭄 때 오염된 식수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돌림병을 말한다.
 
또 돌림병 역(疫)은 병들어 기댈 녁(疒) 속에 몽둥이 수(殳)를 넣은 것으로서 본래는 ‘돌아다니면서 몽둥이로 때리듯이 아프게 만드는 것’ 즉 ‘돌림병 퍼뜨리는 귀신’을 뜻했었다. 
 
전염병의 확산속도가 인류의 이동속도와 정비례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상식, 14세기 유럽인구의 1/4을 줄여버린 페스트는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하여 당시 유럽을 침략했던 몽고군과 비단길을 오가던 대상들의 말을 타고 번졌다는 게 정설이기도 하다.
 
1918년 스페인에서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5억명을 감염시키고 2천 164만 2274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슈퍼독감은 자동차를 타고 확산됐으며,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의 경우 직업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 곳의 여자들과 섹스를 즐기던 미국 항공사 여객기 승무원이 ‘patient zero’ 즉 ‘제1호 환자’였기에 역사상 그 어떤 전염병보다 세계 곳곳으로 빨리 퍼져나가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세계보건기구는 ‘보건 투자로 보다 안전한 미래 건설하자(invest in health, build a safer future)’는 보고서를 통해 “매년 20억명의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항공기가 전 세계로 질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주요매개가 될 전망인 가운데 인류가 10년 안에 에이즈나 사스,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과 같은 규모의 대규모 질병 확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돼지독감', 글로벌화만을 외친 이들에게 따끔한 경고 

멕시코에서 돼지독감이 창궐하자마자 한국서 ‘추정환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입이 딱 벌어진다. 세계화 시대의 ‘전염병’은 지구촌의 ‘손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돼지인플렌자 ‘추정환자’는 급성호흡기증후군이 있고 신종 인플루엔자 발병지역을 여행한 사람을 뜻하는 ‘의심환자’ 가운데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가 발견돼 감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다.
 
지난 19일부터 멕시코시티 남부 모렐로스 지역을 여행한 후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경기도 거주 51세 여성이 37.7℃의 고열과 기침, 콧물 등의 증상을 보여 검사한 결과 ‘추정환자’로 판명됐다.

세계보건기구의 경고가 공갈협박(?)만은 아니라는 것을 재차 실감하거니와 “세계화가 경제위기나 돼지독감 등의 재앙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2009년도 보고서에도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월스트리트에서 발생한 금융 쓰나미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덮쳤듯이 현대사회는 교통, 무역, 결제 시스템 등 사회연결망이 특화ㆍ집중화돼있기에 그 부분에서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발생할 경우 파급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져나간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것 같다.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를 채 만끽하기도 전에 부정적 효과부터 온몸으로 겪는다는 점이 떨떠름하기 짝이 없지만 무조건 세계화를 찬양하고 밀어붙여온 사람들에게는 따끔하고 유익한 경고가 될 것으로 믿는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돼지'가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쑥스럽기는 하지만.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원본 기사 보기:worldane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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