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 뉴스] 이준화 기자 = 더불어민주당 8.27 전당대회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를 얻어 압도적으로 당선된 추미애 신임대표는 대구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출신 5선의원이다. 이런 추 신임대표는 또 호남 며느리이기도 하다. 그의 남편은 전북 정읍 출신 서성환(60) 변호사,
부부는 추 대표가 1977년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1년 선배인 서성환 변호사를 만나 사귄 캠퍼스 커플로서 1981년 함께 졸업했다. 그리고 졸업 이듬해인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추 대표가 먼저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하고 1985년 춘천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반면 남편인 서 변호사는 아내인 추 대표가 판사로 임관하던 해인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27기를 수료하고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다.
이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추 대표는 판사 초임 시절인 1986년 건국대 사건 등에서 주목을 받는 판결을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 후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정치권에 영입제의를 했다고 한다.
이에 추 대표는 1995년 광주고법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뒤 그해 9월 김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는 입문 당시 38세의 젊은 여성 판사 출신에 TK출신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후 1996년 서울 광진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 당선된 그는 1997년 대선에서 DJ캠프 선거유세단장을 맡으며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주로 자신의 고향인 대구지역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맡았다.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이 때 생겼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반(反)호남, 반(反) 김대중 정서에 맞서 유세한 것을 '잔다르크'에 비유한 별명이다.
2000년 총선에서 재선한 추 대표는 급격하게 젊은 여성 지도자로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2002년 대선 때는 희망유세단 공동본부장으로 활약하며 '희망 돼지 저금통'을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왔으며 노 전 대통령이 차기주자로 말한 정도까지 되었다. 특히 정몽준의 연대파기 선언이 나온 직접적 동기가 된 것도 유명하다. 즉 대선유세 마지막 날 서울 종로에서 노 전 대통령이 차기 주자로 정동영 추미애 두 사람을 거명한데 따라 정몽준이 연대 파기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자 추미애는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있다가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했다.
그러나 탄핵반대 촛불이 타오르고 탄핵안은 헌재에서 기각되었다. 2004년 총선은 거센 탄핵역풍 속에서 치러졌다. 이 역풍에 맞선 추미애는 새천년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광주에서 '삼보일배'를 시작으로 전국 지원유세를 했으나 민주당은 9석만 얻는 참패를 했으며 본인도 낙선했다.
그리고 4년의 와신상담, 그는 2008년 총선에서 자신의 옛 지역구를 탈환, 3선 의원으로 여의도에 롤백했다. 이후 추 대표의 노선은 완연한 친노계 성향을 띈다, 이윽고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2015년 2·8 전당대회에도 문 전 대표를 도왔고, 문 전 대표는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으로 화답했다. 반노 성골이 친문 성골로 변신한 것이다.
이어 2016년 더민주 전당대회의 추미애는 확실한 문재인 호위무사임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그는 원하던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이래는 이날 추 대표가 발표한 <당대표 수락연설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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