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사회화

최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6/09/10 [07:01]

이름의 사회화

최지영/ 청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6/09/10 [07:01]

 

“이름이 뭐예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된 질문 중 하나다. 그만큼 인간에게 ‘이름’이라는 두 글자는 친숙하고 친근하다. 인간은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이름’을 지으려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현상이든 ‘이름’이 지어져야 인간사회에서 받아들인다. 인간은 작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명할 때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하게 된다. 생김새, 성격에서부터 특징과 기능까지 다양하게 말이다. 사회에 가장 알맞을 듯한 ‘이름’을 뽑아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이름이 지어지면 사회는 이름에 담긴 뜻을 재조정한다. 이름은 사회의 제도와 세월과 인간의 욕망과 끊임없이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가 생성되고 사라지고 고착된다. 이를 통해 ‘이름의 사회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사회화를 거친 이름은 애초 인간이 지었던 ‘이름’ 본연의 의미와는 전연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 이름은 본뜻보다 강력하고 편향적이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적 영역을 지배하기 쉽다. 인간은 그 이름에 담긴 사회적 감성과 시선에 종속된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인간의 머릿속에 본뜻보다 강력한 사회적 의미가 발동된다.

 

니거(nigger)라는 단어가 있다. 어원은 라틴어 niger(니게르)다. ‘검다’는 뜻이다. ‘니거’도 ‘검다’는 뜻이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흑인 노예를 ‘니거’라 칭했다. 흑인 노예들이 검었기 때문이었다. ‘니거’라는 단어는 노예제도와 200년이 넘는 세월과 인간의 사악함으로 사회화를 거쳤다. 자연스레 ‘니거’는 ‘흑인에 대한 경멸적 호칭’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됐다.

 

 

 

 

 

흑인들은 사회화를 거친 ‘니거’라는 단어에 편견과 차별의 시선, 폭력적 감성을 느낀다. 본래의 뜻인 ‘검다’는 사라졌다. ‘니거’와 같이 사회화를 거치면서 부정적 어감을 가지게 된 이름은 많다. 남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gay’와 ‘faggot’,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lesbian’, 그리고 조센징 등 모두 본뜻과 사회적 뜻이 다른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를 지칭한다. 강자와 다수를 지칭하는 이름은 사회화를 거치더라도 부정적 어감을 가지는 경우가 매우 적다. 

 

왜 그럴까? 무의식적으로 강자와 다수에게 편입되려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 있다. 경쟁과 생존에 익숙해진 인류에게 강자와 다수에 편입되어야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는 논리는 지배적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구별이 아닌 등급과 수준으로 차이를 구별하는 차별이 인간의 본능과 잘 맞아떨어진다. 인간이 지은 이름이 이런 논리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통용되다보니 자연스레 소수자를 대변하는 이름 역시 부정적 어감을 가지게 된다.

 

올해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건이 많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연설에서 니거(nigger)라는 금기어를 이례적으로 사용했다. “흑인을 니거(nigger, 검둥이)라 부르지 않는다 해서 인종차별이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름이 사라지더라도 그에 담겼던 시선과 감성은 지속된다는 뜻이다. 작명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본능에 대한 반성이다.  

 

이 글은 [인권연대] 청춘시대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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