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수당 이어 '아동수당' 복지포퓰리즘?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 기사입력 2016/10/13 [07:23]

청년수당 이어 '아동수당' 복지포퓰리즘?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 입력 : 2016/10/13 [07:23]

 

 

더불어 민주당의 박광온 의원이 아동수당을 도입하려는 취지의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새누리당도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금고지기로서 아동수당이 출산율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돈만 허비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청년수당에 이어 아동수당도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보통사람들은 이 문제를 과도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덧칠하기보다는 해결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동수당이나 청년수당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소극적인 정부보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장단기적으로 가동할 제도적인 프로그램을 가진 정부를 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사회라는 미명 아래서 만사를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사주의(privatism) 교리에 강박되어왔다. 그래서 정치적 권력, 경제적 부, 사회적 지위를 갖지 못한 개인들은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미래에는 지금까지 운명으로 수용해왔던 바를 민주주의와 공동책임으로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동수당이 신설되더라도 자신의 자녀세대들에 더 좋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의도적인 혹은 비의도적인 출산파업을 계속할 것이다. 빈곤의 미래가 확정된 상황에서 자녀를 출산하겠다는 부모의 결단이 종족보존이라는 허망한 욕망일 뿐이라고 말하면 불합리한 것일까?

 

나는 현재의 정치와 경제가 무력한 대중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대안적인 정치와 대안적인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적으로 보통사람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 이들의 자력갱생을 북돋아주는 체제가 그것인데, 이를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라고 부를 수 있다. 자유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아동수당이나 청년수당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개혁으로 가는 초기 방책들 중 하나이다.

 

최근에 이러한 고민의 일단을 담은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유작 <공정으로서의 정의: 재서술(이학사, 2016)>이 주목을 끌고 있다. 롤스는 자유주의의 철학 안에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자유사회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자유사회주의자들의 요구사항인 사회상속제에 동조하고 나섰기 때문에 거론해볼 필요가 있다. 롤스는 자신의 이상적인 정치경제체제를 ‘재산소유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라 표현하였다.

 

 

 

 

롤스는 이미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1971)>으로 20세기 후반 정치경제의 담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의의 두 원칙을 기반으로 자유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수정자본주의나 복지국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롤스의 이론이 자유자본주의 체제를 실제로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 그러한 수정작업에서 어떤 장기를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극단적인 재산권 절대주의자가 아니라면 자유자본주의자들도 체제의 존속을 위해서 어느 정도 복지정책의 시행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색의 이론은 시저와 브루투스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지만, 롤스는 만년에 자신의 입장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롤스는 <정의론 수정판(2003, 이학사)> 서문에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제시함으로써 복지강화론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번역된 <공정성으로서 정의: 재서술>은 재산소유민주주의를 경제체제론의 관점에서 부연하였다. 롤스는 재산소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1977년 노벨상을 수상한 자유사회주의자 제임스 미드(James Meade 1907-1995)로부터 수용하였다.

 

미드는 이미 1930년대에 오늘날 기본소득으로 알려진 시민소득(citizen’s income)이나 국가배당금(state dividends)을 구상하였다. 물론 기본소득이나 사회상속 관념은 역사가 더 길다. 미국 독립전쟁기에 토마스 페인이, 1830년대에 토마스 스킷모어가 사회상속제를 제시하였으며, 오늘날에는 하버드 대학의 로베트로 웅거(Roberto Unger) 교수가 실험주의적 사회구상 안에서 상세하게 전개해 놓았다.

 

사회상속을 제도로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은 하나다. 사회에 진입하는 모든 개인들은 부모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자신의 삶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이 재산에 대한 인권으로서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인생의 전환점에서 재정적 수요를 충족시킬 재원을 공급해준다.

 

그래서 개인은 대학입학, 취업, 결혼, 창업 시에 중요한 재원을 향유하게 된다. 개인은 일생동안 부를 보유하고 증식시킬 수 있지만, 사망시에 자신이 증식시키고 보유한 재산의 필수적인 부분만을 자녀에게 상속시킬 수 있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회는 태어나는 모든 개인들 앞에서 사회의 모든 부를 들고 가서 심판을 받는다.

 

개인이 1/n의 몫을 통해 기존의 사회질서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수저가 기본적으로 1/n로 수렴되도록 하는 것이다. 증여세와 상속세는 사회상속 관념을 어느 정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증여세와 상속세를 당연시하면서도 사회상속제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청년수당, 아동수당, 기본소득은 약자에 대한 배려에 기초한 전통적인 복지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경제 질서에 대한 동등한 참여권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복지가 아니라 재산의 분산과 경제의 민주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앞서 말한 자유사회주의는 자유주의의 혁신 논리를 기성의 자유자본주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에 대해서도 가동시키려는 운동이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도 생산수단과 경제적 부의 사회적 소유를 증강시키려는 운동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개인들의 자력갱생과 보통사람들의 삶을 밑받침하는 국가의 책임재산을 강화하고 증식시키는 정치론이다.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실제로 아동수당이 출산율 증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 경우 문제는 아동수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동수당과 연쇄반응을 선순환적이고 누적적으로 가져다줄 사회의 공정한 토대와 미래지향적 비전이 없다는 데에 있다.

 

민주적인 토대와 비전은 돈으로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돈이 없다면 결코 될 수 없는 일이다. 보통사람들은 지난 50년간 정치적 독재에 허덕여왔다. 최근 20년은 빠져나올 수 없는 경제적 독재와 빈곤 속에 갇혀 있다. 이미 내년 대선의 프레임은 복지에서 경제민주화로 이동하는 것 같다. 부자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 빈곤계층에게 이전시키는 것만으로는 현안을 다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재산, 특히 생산수단을 소수의 수중에 두지 말고, 널리 확산시키고,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소유방식들이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생산과 소유의 영역에서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실린 글 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