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스웨덴'..어떤 복지국가 만들 것인가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기사입력 2016/10/20 [06:30]

'그리스와 스웨덴'..어떤 복지국가 만들 것인가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입력 : 2016/10/20 [06:30]

 

10월 15일(토요일) 오후, 나는 동서울터미널에서 경북 안동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신입 연구원 한 명이 인쇄소에서 막 배달된 신간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 책 10여권을 직접 들고 나와 동행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독립예술영화 특별기획 상영을 하고 있던 ‘안동중앙아트시네마’였다.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다큐멘터리 영화 《아고라》가 이 예술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그리스 경제위기의 진행 과정과 보통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 현장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로 ‘민주주의에서 시장으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나는 90분간의 영화 상영이 끝나면 곧바로 ‘경제위기와 복지국가’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래의 사진은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념으로 예술극장 대표와 함께 찍은 것이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2011년쯤 그리스의 실업률은 27%까지 치솟았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29년 시작된 미국 대공황의 상황이 최고로 나빠졌을 때인 1932년경의 실업률이 27%였다. 그 끔찍한 상황이 최근 그리스에서 경제위기로 재현된 셈이다. 그리스의 가난한 사람들은 구호소를 찾거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거나 시장에서 버려진 야채들을 주워간다.

 

어떤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50%를 넘어섰다. 학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음식 배급을 학생들에게 실시한다. 정부의 긴축정책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위기로 보통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넘쳐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심해진다. ‘황금새벽’이라는 극우 폭력 정당이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입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보통사람들은 삶의 불안과 고통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스의 경제위기와 민생불안의 심화 과정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은 무책임과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보다 더 추할 수는 없다.

 

복지를 확충하면 경제위기가 올까

 

그런데 그리스가 경제위기로 큰 고통을 겪자마자, 보란 듯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주류 세력은 복지와 경제위기에 대한 거짓 선동을 시작했다. 성장지상주의와 낙수효과를 내세워 그동안 국민을 속여 왔던 신자유주의 주류 세력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내지도 못했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던 낙수효과도 거짓으로 드러나자 이번에는 그리스 경제위를 빌미로 복지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이들은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고복지가 나라 경제를 망친’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들 신자유주의 주류 세력은 주요 언론을 통해 각종 기획의 형태로, 또는 경제 전문가의 의견 형태로 ‘복지 확대는 곧 경제위기 또는 경제적 어려움 초래’라는 등치관계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복지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경제성장에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할 때라는 논리였다. 지금의 작은 파이를 분배해서 먹고 없애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 파이를 경제성장에 투자해서 더 키울 것인지를 선택하라면서 국민과 여론을 압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상 아무 근거가 없는 양자택일의 경제-복지 이분법적 국민 협박이며 완전한 사실 왜곡이다.

 

우선 그리스가 고복지 때문에 경제위기를 맞았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이 주장은 틀렸다. 무엇보다 그리스는 ‘고복지’를 하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7년, 그리스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은 22%였다. 이것은 당시 OECD 평균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이 논점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리스는 고복지가 아니라 OECD 평균 수준의 복지를 하는 ‘중복지’ 국가라고 해야 한다.

 

국가 복지의 수준을 의미하는 지표인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을 OECD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살펴보자. 2014년 현재, 이 비중이 30%를 넘는 나라들은 프랑스(31.9%), 핀란드(31%), 벨기에(30.7%), 덴마크(30.1%)이다. 25∼30%인 나라들로는 이탈리아(28.6%), 오스트리아(28.4%), 스웨덴(28.1%), 스페인(26.8%), 독일(25.8%) 등이 있다. OECD 평균은 21.6%이며, 우리나라는 10.4%, 미국 19.2%, 그리고 영국은 21.7%이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진짜 원인

 

그러므로 그리스가 경제위기를 맞은 진짜 원인은 고복지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 그리스는 왜 경제위기를 맞았을까? 한마디로 잘못된 경제-복지 체제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경제와 복지 분야로 나누어 상세하게 살펴보자.

 

첫째,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유로 존 가입과 경상수지의 적자 누적 때문이었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 존에 가입하면서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 대신 유로화를 사용했다. 이때 유로 존 내의 다른 국가들과 경제력 격차가 존재함에도 단일통화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는 실질 통화가치가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과 프랑스 등 산업 경쟁력이 높은 국가의 제품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수입되었고, 그리스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누적되었다.

 

둘째,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경기변동에 취약한 산업 구조 때문이었다. 2011년을 기준으로 그리스는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8%에 그쳤다. 그것마저도 제조업의 대부분이 식음료와 담배 제조업 등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스에는 제대로 된 고부가가치의 생산성 높은 제조업이 없는 셈이다. 반면에 서비스업의 비중은 90%를 넘고 있으며, 특히 관광업과 부동산 서비스업이 각각 전체 GDP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적인 산업 구조로 인해 그리스 경제는 유로화 강세와 물가상승 등의 경기변동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단일통화(유로) 사용에 따른 독자적인 통화 정책적 대응의 곤란 때문이었다. 그리스가 유로 존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자국 통화의 가치 절하 등의 환율 조정을 통해 무역적자가 감소하거나 정부가 화폐 발행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로 존은 이자율과 화폐공급 등의 통화 정책을 유럽중앙은행(ECB)에서 관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로 존 내의 개별 국가인 그리스는 자국의 대외 경쟁력 제고와 무역적자의 감소를 위해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화 정책적 수단이 없다.

 

넷째,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복지 체제가 잘못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라면 복지 재정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그리스는 사람에 대한 직접 투자를 의미하는 사회서비스 분야가 미발달한 가운데 일부 상위 계층에 대한 고급여의 소득보장이라는 잘못된 복지 정책을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복지의 계층화’가 나타났다. 결국 그리스 정부는 많지도 않은 복지 재정을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가령, 그리스의 공적연금은 소득대체율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노인 빈곤율은 23%로 OECD 평균 14%에 비해 한참 높다. 공무원, 법조인, 교원 등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엄청난 연금 혜택을 받지만 시간제나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은퇴한 수많은 보통사람들은 연금 혜택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득보장 쪽에 정부 재정을 많이 지출하다 보니 아동, 여성, 청년 등을 위한 사회서비스 투자는 크게 부족했고, 이것이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미발달로 이어져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결국 경제위기에 취약하게 된 것이다.

 

어떤 나라의 복지 수준이 높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경제위기의 초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만약 관련이 있다면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세계적으로 높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먼저 망했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며, 경제와 교육 등의 국제 경쟁력도 최고로 높다. 지금까지도 이들 북유럽 보편주의 복지국가들에서는 그리스와 달리 정치는 꽃보다 아름답고 경제는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위기에 대한 대응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진짜 복지국가는 ‘경제-복지의 유기적 통합체’이다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잘 짜인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누구나 일을 한다. 그래서 고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누진적 세금과 비례적 사회보장 기여금을 낸다. 그래서 국민부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하지만 조세저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한 편이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국민 누구나 필요한 복지를 차별 없이 향유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경제·노동-국민부담-복지’가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잘 짜여있다. 여기서 경제와 복지는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경제 없는 복지’는 생각할 수 없듯이 ‘복지 없는 경제’도 생각하기 어렵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원래부터 경제와 복지는 유기적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보편주의 복지국가에서는 양성평등 속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매우 높고, 여성이 보다 행복하고, 사회가 통합되어 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그만큼 더 강한 것이다. OECD 2015년 고용률 통계(15∼64세)에 의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속하는 4개 나라들(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은 여성 고용률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 스웨덴의 여성 고용률은 74%이고, 노르웨이 73%, 덴마크 70.4% 아이슬란드는 무려 81.8%로 단연 1위이다. 여기에 여성 고용률 67.7%인 핀란드를 포함시켜도 세계적으로 높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행복지수와 출산율이 모두 높다. 또 이들 나라에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가 왕성하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같은 유럽이지만 북유럽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나라들이 있다. 남유럽 국가들이다. 그리스의 여성 고용률은 42.5%에 불과했고, 이탈리아 47.8%, 스페인은 53.4%였다. 이들 남유럽의 세 나라는 모두 OECD 평균 여성 고용률 58.6%에 크게 못 미친다. 출산율도 매우 낮다. 이들 나라는 경제와 복지의 구조가 일·가정 양립이 어렵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들 남유럽 국가들 못지않게 여성 고용률(54%)이 낮고 출산율도 낮다. 이것은 여성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임신을 하지 않고, 임신을 하게 되면 직장에서 행복하기 어렵고 자아실현에도 장애가 초래되므로 임신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는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하도록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구의 안정적 유지와 함께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효과까지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GDP 성장률을 보면, 스웨덴은 3.23%로 서구 선진국들의 2%대 성장에 비해 우월한 성적을 냈다. 스웨덴은 고용률이 높고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정부가 복지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조세를 통해 확보하기도 좋다. 결국 스웨덴은 재정 지출을 많이 하는 만큼 조세 수입이 많으므로 정부 재정이 건전할 수밖에 없고, 국가부채가 아주 낮은 나라에 속한다. 2014년 현재,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33%, 이탈리아 144%, 그리스 189%, 그리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유럽대륙 국가들이 대체로 80∼100% 수준이고, 미국 110%, 영국 113%, 그리고 OECD 평균은 113%였다.

 

그런데 스웨덴의 국가부채는 GDP의 52.7%였다. 이렇게 스웨덴과 다른 나라들을 비교해보면, 보편적 복지를 하는 제대로 된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경제-복지 통합 체제’에서는 국가부채가 늘어나기는커녕 정반대로 국가부채가 아주 낮은 수준에서 건전하게 잘 관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제-복지 통합 체제’의 제도적 우수성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인 북유럽 국가들에서 이런 현상은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가부채도 각각 GDP의 58.4%와 53.2%에 그쳤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편견을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복지에 돈을 펑펑 쓰면 국가 재정이 금방 거덜 난다는 얄팍한 상식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미국식의 선별적 복지에 돈을 펑펑 쓰면 실제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 복지국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보편적 복지는 더 큰 이익(혁신적 경제성장)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에 대한 보편적·적극적 투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가 나라 재정을 고갈시켜 국가부채가 늘어난다는 ‘그럴듯한 왜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그 반대편에 있다.

 

 

 

※이 칼럼의 주요 내용과 핵심 논리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이번에 기획 출간한 신간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에서 인용하거나 일부 수정한 것임을 밝혀둔다.

 

복지국가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를 위한 안내서

경제학과 복지학을 넘나드는 복지국가 교과서이자 안내서
또 왜 복지국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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