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왜 전교 1등은 모두 법대와 의대를 갔을까?
 
이진우 소장   기사입력  2016/12/23 [14:50]

[신문고 뉴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 = 내가 학창시절을 보낼 때만 하더라도 공부를 아주 잘하는 친구들(전교 1등, 전국수석 등)에게는 일종의 도그마가 있었다. 문과라면 법대를 가서 사법고시에 도전하거나 경제학과를 가서 행정고시 재경직에 도전하고, 이과라면 의대를 가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게 하나의 당연한 도식이었다.

 

▲ 서울대학교 정문 야경     © 자료사진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아무리 전교 1등이고 전국 수석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성장해온 배경, 품성, 기질이 천차만별일 텐데 어떻게 성공방정식 만큼은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을 수 있냐는 것이다. 전교 1등임에도 불구하고 철학과나 신학과를 갈수도 있고, 역사학과, 사회학과나 심리학과를 갈 수도 있고, 의대가 아닌 천문학과나 섬유공학과에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 산업화 초기 단계에 부모 세대나 자식 세대 모두 사회적인 경험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누구의 눈에서 보더라도 충분하게 검증된 극히 일부의 성공 모델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공 방정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도 단순하고 편중되어 있다 보니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모두로부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정주영과 이병철이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끝내 기업인으로 살다가 인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김영삼과 김대중이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끝내 많은 것을 이룬 정치인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그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맞는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장 배경, 품성, 기질 상으로 크게 무리가 없는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후회 없이 평생 자부심과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유독 폴리페서(정치인을 겸업하는 교수)들이 많고, 폴리널리스트(정치인을 겸업하는 언론인)들이 많은 이유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과 목표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교수라는 직업이 천직이라면 곁눈질을 할 필요성도 여유도 없을 것이며, 정말로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천직이라면 정치인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갑이 아닌 을로 낮춰가며 이들의 비위를 맞추고 그 요구를 들어줘야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진경준 검사장과 나는 대학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그는 우리 대학 동기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고, 그의 천재적인 두뇌에 혀를 내둘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랬던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간 것은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공간이 커져나간 ‘일탈’이다.

    

검사라는 옷이 그에게 맞지 않다 보니 그 직업 본연의 모습에서는 흥미를 찾기가 어려웠고, 내부적으로는 더욱 권위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거기서 오는 상실감과 허탈감을 재벌오너들과의 교류와 거래로 대신 채워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검사에서 권력자로, 그리고 권력자에게서 괴물로 점점 변해갔다.

    

그와 정반대 쪽에는 또 다른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너무너무 전교 1등을 하고 싶었고, 너무너무 SKY대를 가고 싶었지만 끝내 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평생의 한을 품고 살아가게 되고, 놀랍게도 그 한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 투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 부모들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또 다른 잠재적 권력자 혹은 괴물이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뒷골이 송연해진다.

    

직업 전선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SKY 프리미엄은 철저하게 무너졌는데도 아직도 이들의 눈에는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또 다른 형태로 비극이 대물림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왜 우리나라에 더 이상 신흥 재벌이 탄생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창업과 창조적 경영으로 성공 모델을 이룩한 사람을 우리 부모 세대가 전혀 보고 경험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자식에게 권할 수가 없다.

    

학교 선생님들도 자신들의 손을 거쳐 간 학생들 중 그 방향으로 가서 성공한 모델이 없기 때문에 혹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아이가 있을지라도 그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러니 여전히 로스쿨과 의전을 전교 1등에게 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가 계속 되풀이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법률가나 의료인이나 사실 그 본질만 놓고 보면 국가경제에 그다지 기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률가는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활동에서 빚어지는 법률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일종의 보조적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의료인 또한 개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이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일종의 보조적 역할이다.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가치, 새로운 고용창출 등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들과 이들 직업군과는 사실상 큰 연관성이 없다. 역동하는 경제일수록 우수한 인력들이 부가가치가 높고 파급력이 높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지금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부진에 빠졌고, 가계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까지 터져 국정운영 콘트롤타워 마저 실종되어버렸다. 검찰수사와 청문회에서 드러났듯이 정경유착의 뿌리도 여전히 건재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법조계, 의료계, 관료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오너家의 세습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고, 기존 성공방정식이 그대로 대물림되다보니 2세, 3세로 넘어가고도 경영에 있어서 어떠한 새로운 업그레이드도 진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한줄기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자기주장이 강한 세대들은 연일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김연아, 박태환, 손연재, 소녀시대, 이세돌 그리고 올림픽 펜싱 영웅 박상영까지... 담대함과 열정으로 세계의 높은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린 인재들이 우리 주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정말 기대가 되는 세대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의 허리와 머리로까지 기어 올라가기까지는 아직도 20년 정도를 더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나와 같은 386세대, 아니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의 속칭 ‘낀 세대’들이 얼마만큼 유연해지고 얼마만큼 패기와 끈기를 갖고 버텨주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를 또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나의 품성과 기질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이 나한테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잘 버텨주고 잘 길을 닦아주고 터줘야 보다 나은 미래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오늘이다.

배너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6/12/23 [14:50]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배너
주간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