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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신고의 갑론을박과 대통령 기자간담회
[김양수 칼럼] 醫窓에 비친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김양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1/05 [11:18]

[신문고 뉴스]김양수 칼럼니스트 = 2017년 1월 2일. 도피 중이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덴마크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날 저녁 ‘JTBC 뉴스룸’은 단독 보도를 통해 전했다.

 

▲ 정유라씨 체포 순간...JTBC뉴스룸 뉴스화면 캡쳐     ©편집부

    

그리고 이어서 JTBC소속 기자가 정유라를 덴마크 경찰에 신고, 체포되게 한 과정을 숨김없이 전했다. 즉 기자는 독일에서 부터 정유라의 행적을 추적했으며 그녀가 덴마크의 한 승마장 인근 주택에 은신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그녀와 수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그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집안의 불을 끄며 담요로 창문을 가리는 등 접촉 자체를 피하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그녀의 이 같은 행동은 밖의 상황을 주시하다 다시 도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즉 기자가 인터뷰를 포기하고 떠나면 곧 그 은신처에서 사라져 또 다른 은신처에 몸을 숨기는 등 도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에 기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현안을 쓸어남는 블랙홀 역할을 하는 이 최순실 게이트의 진면목을 특검이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현지 경찰에 신고, 그녀를 체포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기자의 추적과 인터뷰 시도, 그리고 신고와 체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JTBC 취재진에 의해 생생하게 촬영되어 보도 되었다. 최순실의 테블릿 PC 보도 이후 JTBC는 다시 한 번 대박 특종을 터뜨린 셈이다.

    

‘돈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원망해’라는 SNS상 발언으로 만인의 공분을 샀던 정유라가 돈 많은 공주님 체면에 잡범인 양 숨어 불 끄고, 담요로 창문을 가리는 모습은 마치 위험에 처한 타조가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꼴불견을 보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런 그녀가 체포되는 과정을 보니 이 사건 관련자들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 즉 박근혜 부역자들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해소되기도 했다.

    

아무튼 정유라는 그렇게 금수저 도피 행각 끝에 이역만리 타국의 유치장에 갇혀 본국 송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세간의 관심은 그녀의 국내 압송 시기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1월 3일 ‘미디어 오늘’은 JTBC 기자가 정유라를 현지 경찰에 신고한 행동이 관찰자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 기자가 저널리즘 원칙을 어겼다는, 그래서 앞으로 기자의 취재에 있어 지극히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 기고자의 주장인 '진실 보도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관찰자로 남아야 한다’는 명제는 일견 그렇듯 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원과 취재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해서 과연 그 행위가 무조건 기자의 본문을 망각하고 언론 본연의 사명을 짓밟는 경거망동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예컨대 연쇄살인범을 취재하는 기자가 살인범으로부터 엠바고를 조건으로 다음 살해 대상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면 기자는 숭고한 저널리즘의 가치 수호를 위해 엠바고를 지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 오늘’의 기고자는 기고문에서 취재원을 경찰에 신고한 JTBC 기자의 행위에 대해 언론 분야 종사자들과 언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길 기대한 것 같은데 기고자의 기대와는 달리 이슈는 그저 ‘찻잔 속 태풍’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박근혜 최순실 일당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이미 연쇄살인범에 대한 분노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만약 JTBC 기자가 보도 윤리를 이유로 취재대상 정유라의 도피를 관찰자의 입장만 고수하며 방조하고 도피이후에 이러이러했는데 그녀가 다시 도피했다고 보도했다면 어땠을까?

    

그 기자는 특종을 위해 연쇄살인범의 살인예고에 대해 앰바고 원칙을 준수하여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방조범이 되는 것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 기고자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논쟁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상 선정이 애초부터 틀려먹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치명적 문제점은 1월 2일 덴마크의 소도시의  정유라 신고가 아니라 그보다 하루 앞선 1월 1일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발생했다.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간담회...기자들이 손을 앞으로 모으고 대통령의 해명을 듣고 있다. JTBC 뉴스룸 캡쳐   

    

여러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새해 첫날, 청와대에서 점심을 먹던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비서진으로부터 식사 후 대통령을 만나 간담회를 갖자는 ‘번개 제안’을 받는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간담회에 참석하는 기자들은 취재의 필수도구인 카메라와 녹음기, 노트북 지참 금지라는 통보까지 받는다. 이 소식은 속보의 형태로 TV와 인터넷 포털에 곧바로 알려졌다.

    

인터넷 댓글 달기를 거의 하지 않는 나는 바로 기사에 접속해서 한마디를 적었다. ‘당신들이 정신 제대로 박힌 기자라면 기자 간담회를 보이콧하는 게 상식이다.’라고. 순식간에 수 백개로 불어난 댓글 상당수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심지어 종편 MBN에서 토크쑈를 진행하던 진행자도 속보를 접한 직후 흥분한 어조로 ‘기자들 간담회 보이콧 한다는 소식 없습니까?’라며 소리칠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순진하면서도 상식적인 기대(?)와는 달리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녹음기와 카메라와 노트북을 ‘무장해제’ 당한 상태로 순한 양처럼 박근혜 앞으로 단체로 끌려가 그녀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적어주는 ‘취재 경쟁’을 벌였다. 그날 저녁, 청와대가 제공한 동영상으로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뇌리에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박근혜의 발언을 열심히 받아 적는 장관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아마 박근혜도 그 날 무장해제 당한 주제에 취재랍시고 수첩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기자 무리들을 보면서 자기 수하 앞에서 연설하는 쾌감을 만끽하진 않았을까?

    

물론 새해 벽두 갑자기 날아든 대통령과의 간담회는 기자들의 입장에서 군침이 도는 ‘꺼리’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꺼리'는 기자의 치열한 노력이 아닌 청와대 비서가 청와대 출입기자 모두에게 적선하듯 던져주는 일종의 레드오션과도 같은 자리였다. 게다가 그 '꺼리'의 대가는 병사의 소총 이상으로 기자에게 있어 취재의 필수품이라 할 카메라와 녹음기와 노트북 모두의 무장해제였다.

    

박근혜는 이미 ‘연쇄담화범’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기자들에게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는 전광석화 간담회, 카메라도 녹음기도 노트북도 금지라는 간담회,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기자와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면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 또한 들어보나 마나한 수준, 연쇄담화범의 잡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예측은 취재의 베테랑이 아니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청와대 출입기자단 그 누구도 저널리스트의 고유 권리를 차압당한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이런 식의 간담회라면 보이콧을 하겠다는 보도 원칙 사수를 위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당시 사진 촬영을 금지당한 기자들이 카메라를 일렬로 늘어놓으며 무언의 항의를 한 것과 판이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기자들은 왜 청와대에서, 박근혜 앞에서 그렇게 무기력한 집단으로 전락했을까? 어쩌면 ‘죄수의 딜레마’와 일맥상통하는, 다른 언론사 기자 다 들어가는데 나만 빠져 혹시라도 건질지 모르는 특종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국민에게 뇌물수수 피의자 취급을 받는 직무정지 대통령이라도 예우를 해줘야 한다는, 기자 정신을 가볍게 쯔려 밟은 노예근성의 발로였을까?

    

말하고 싶을 때 언제라도 마이크를 쥘 수 있는 것, 쓰고 싶을 때 언제든 하고 실은 말을 써서 대중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 이 또한 엄청난 권력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특권을 소유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기자로서 최소한의 대접도 못 받으면서도 대통령의 치졸한 변명투성이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 보여준 ‘친절한’ 저널리즘 정신은 그들이 여전히 박근혜를 살아있는 권력으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토록 비굴했던 저널리즘 정신의 10분의 1이라도 세월호 유가족의 피맺힌 절규를 듣는데 할애했다면 어쩌면 우리는 박근혜의 일곱 시간 비밀을 보다 더 빨리 밝힐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론을 전공하지 않은 나는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1950년대 희대의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은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명언을 남기며 박인수의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마찬가지다. 기자는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건만을 보도해야할 의무가 있다. 취재원인 대통령에게 기자대접도 받지 못한 주제에 대통령 말씀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장광설 변명을 열심히 받아 적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그들의 취재를 뉴스랍시고 보도한 언론사들은 앞으로 언론 취재와 보도에 있어 지극히 나쁜 선례를 남겼다.

    

2017년 1월 1일 대한민국 주류 언론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직무가 정지된, 탄핵을 예약한 대통령과 공모하여 증권사 찌라시만도 못한 황색 저널리즘을 선보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김양수 칼럼니스트는 현직 내과 전문의입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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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5 [11:18]  최종편집: ⓒ 신문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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