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오남용이 내성의 원인은 아니다.

안성훈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1/20 [14:37]

항생제 오남용이 내성의 원인은 아니다.

안성훈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1/20 [14:37]

[신문고 뉴스] 안성훈 칼럼니스트 = 모든 생물체가 그러듯이 세균도 진화를 한다. 이게 길게 봐서 진화라고 표현한 것일 뿐, 세균 자신은 그런 개념이 없다. 세균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번식할 때 유전자 복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일정 비율로 돌연변이라는 게 발생한다.

 

▲   각종 항생제들

 

이 돌연변이는 순전히 우연히 발생한다. 그 결과 새로운 DNA를 가진 놈들이 생겨난다. 이런 유전자 수준의 돌연변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며, 별 영향 미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대부분은 세 번째의 경우에 해당될 거다.

    

아무튼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하여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불리한 놈들은 오래도록 살아남기 힘들다. 당연히 자손을 남기기도 쉽지 않다.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멸종한다. 그렇다면 다들 눈치 챘겠지만, 더 유리하게 작용하게끔 돌연변이가 일어난 놈들은 더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고, 그 결과 자손도 많이 남기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진화다. 생물의 진화.

    

그 어떤 주체도 이런 과정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더 불리한 놈들은 멸종하고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놈들이 번성하는 결과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마치 자연이 이 모든 과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자연선택이라고 말을 할 뿐이다. 자연은 결코 선택이라는 것을 하지 않지만 말이다.

    

물론 유불리는 그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고려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15세기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아이가 돌연변이에 의해 펠레나 메시 뺨 칠 정도로 축구에 소질이 있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그 아이가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과연 유리했을까?

 

쇼팽이나 모차르트를 능가할 정도로 피아노를 잘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더라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능력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아니, 능력이 있다는 평가 자체를 받지 못한다. 그게 능력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어떤 면이 먼 미래에는 아주 특출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반복해 설명한다. 세균이 번식할 때 DNA 복제과정에서 돌연변이는 항상 일정비율로 일어난다. 그 결과 돌연변이 된 새로운 DNA를 갖는 세균 중에는 우연히도 어떤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녀석들도 생길 수 있다. 그 항생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균에 감염되어 특정 항생제를 사용 중인데 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면 해당 항생제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겠지만, 그런 돌연변이는 해당 항생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항상 일정 비율로 세균에서 일어난다.

 

다만 그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세균이 항생제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황에선 돌연변이가 일어난 세균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멸종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에 그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녀석일지라도 다른 세균에 비해 더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같은 특성이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하다는 의미다.

    

우연히, 하지만 항상 일어나는 돌연변이의 내용 자체도 방향성이 없다. 먼 훗날 발명될, 그래서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세균이 지금 돌연변이에 의해 생기는 거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그 녀석들 지금은 그런 특성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런 세균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항생제가 지금 세상에 존재하든 안 하든. 항생제 내성은 돌연변이에 의해 언제든지 생긴다. 해당 항생제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만일 해당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특성을 가진 세균은 다른 세균보다 더 유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경우 항생제를 바꾸어버리면 이제 그런 능력이 다시 유리한 특성이 아니게 되겠지만,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돌연변이 세균은 다른 세균에 비해 생존에 더 유리할 것이기에, 돌연변이 세균은 그렇지 않은 세균보다 더욱 번성할 것이다.

 

항생제 사용이 항생제 내성의 원인은 결코 아니지만, 돌연변이에 의해 일단 내성균이 발생했을 때에도 해당 항생제 계속 투여하는 행위는 내성균 번성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성균이 다시 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또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내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래서 효과가 없어진 항생제가 다시 유효해지는 상황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내성균이 동시에 내성을 잃지 않는 한 의학적으론 의미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마찬가지로 돌연변이에 의해 A라는 항생제에는 내성을 가지게 된 세균이 그렇지 않은 세균에 비해 더 유리하다할지라도 화학구조가 다른 B라는 항생제에 대해서는 전혀 유리하지 않다는 것도 이젠 알 수 있으며, A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과 그렇지 않은 세균에서 같은 비율로 B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 신석기 시대에도 사격을 기가 막히게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것이고, 화성으로 신혼여행을 가게 될 먼 미래에도 창으로 사슴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아이는 태어날 것이다. 일정한 비율로. 돌연변이에 의해. 그런 능력이 유리한가 불리한가 아니면 중립적인가는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론 돌연변이와 상관없이 그런 유전적 특성을 가진 부모로부터 해당 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존재할 것이다.

    

과거에는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먼 미래에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즉 먼 미래에나 발명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과거에 이미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거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해당 항생제 사용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말이다.

    

더 나가 보자. 돌연변이에 의해 A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발생할 확률과 B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세균이 생길 확률은 각각 독립적이다. 따라서 두 가지 항생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 두 가지 항생제 모두에 내성을 가져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내성균이 발생할 확률은 각 확률의 곱이 되므로 그 가능성은 한 가지 항생제만 투여하는 경우보다 훨씬 작아진다. 전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결핵 같은 병에서 세 가지 이상의 약을 동시 투여하는 이유이다. 다른 세균에 비해 훨씬 독종인 결핵균의 특성을 고려한 치료방법으로 보면 되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핵약을 투여하지 않는 결핵 환자에서 항결핵제에 내성을 가지는 균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제 항결핵제를 복용 중인 환자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발생한 내성균이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내성이 없는 다른 결핵균에 비해 생존에 더 유리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안성훈/가정의학과 전문의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