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과 박용철 형제 의문사를 보며...

[김양수 칼럼] 남북 로열페밀리의 비운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 언론이 부끄럽다

김양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02/16 [14:16]

김정남 암살과 박용철 형제 의문사를 보며...

[김양수 칼럼] 남북 로열페밀리의 비운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 언론이 부끄럽다

김양수 칼럼니스트 | 입력 : 2017/02/16 [14:16]

[신문고 뉴스] 김양수 칼럼니스트 = 북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해외 공항에서 살해당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팩트’는 김정남이 두 명의 여성에게서 독극물 공격을 받았으며, 그중 한명이 체포되었고 체포된 여자 용의자는 베트남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 김정남 죽음을 보도한 일본의 텔레비젼 뉴스회면

 

하지만 이 두 가지 팩트만으로 대한민국 언론은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지시를 받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암살의 이유로 김정남이 김정은 절대 권력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라던가, 김정남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비자금 때문이라는 추측이 거론되며,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을 이복형마저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로 아주 쉽게 단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대북정보의 신빙성으로 판단해 보면 국정원의 수준은 동네 흥신소와 동급이 아닐까 하는 게 나의 결론이다.

 

물론 민간인 사찰이나 ‘종북 좌익 사범’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보자면 국정원은 CIA나 모사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량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한심한 대북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예컨대 처형 혹은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던 북측 고위 인사가 예수처럼 부활하여 북의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다반사였다. 장웅 북한 IOC 위원,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김원홍 국가안보위상,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등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고, 현영철의 경우 반당, 반역 행위로 총살당했다고 하지만 북의 각종 기록 영상에서 삭제되는 일 없이 빈번히 등장하는 이례적인 현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대북 강경책의 가장 큰 이유인 미사일과 핵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국정원은 단 한 번도 북의 미사일 발사 시점을 의미 있는 타이밍에 예측해낸 적이 없었다.

 

최근 발사된 ‘북극성 2호’가 고체연료를 사용할 만큼 기술적 진보를 이룩했다는 사실 또한 발사 후 화염을 보고서 비로소 파악했을 정도이다. 국가 안보를 위한 조직으로는 0점, 정권 안위를 위한 조직으로는 100점. 바로 대한민국 국정원의 자화상이다.

 

이렇게 저렴한 대북정보력을 자랑(?)하는 국정원이 김정남 살해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모르는 것 하나 없이 상황의 알파로부터 오메가까지 청산유수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듣다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피붙이들 대부분이 조만간 김정은의 손에 처형당할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김정은이 3대 세습의 주인공으로 등극할 때 언론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북한정권 조기붕괴설’이 새삼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먼저 나가떨어진 쪽은 다름 아닌 박근혜 아니던가.

 

끈 떨어진 신세로 정처없이 해외유랑으로 여생을 보내던 로얄패밀리가 테러로 추정되는 범죄로 인해 갑자기 사망했다. 이는 지구촌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사건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팩트에 ‘북한과 김정은’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자 국내 언론은 벌집을 쑤신 듯 흥분하며 온갖 추측과 상상을 동원하며 다양한 형태의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다.  

 

이 모든 기사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북한은 막장드라마 같은 현상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불량국가이며. 권력자 김정은은 사이코패스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엽기적인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메시지로 압축된다.

 

절대 권력자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이라는 국가는 21세기 보편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옳다, 그르다를 떠나 북의 정권이 보여주는 행동과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는 일은 현명한 대북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뒷골목 흥신소 수준의 대북정보력을 자랑하는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기사를 써대는 대한민국 언론이 북한을 분석하는 방법은 언제나 그들의 입장과 시각이 아닌 우리의 입장과 시각에 기초해 왔다. 그러한 분석의 결과는?

 

당연히 ‘북한=미개한 깡패국가, 김정은 = 사이코패스’ 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결과에 따른 대북정책은? ‘북한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원천봉쇄하여 내부로부터 무너지기를 기다린다.’ 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왜? 사이코패스가 지배하는 깡패국가와 대화를 통한 타협은 불가능하니까.

 

김정은 살해사건은 내막이 밝혀진 바 거의 없는 사건임에도 하루 종일 언론의 주요 뉴스로 자리를 차지했다. 국정 혼란 상황의 갑 of 갑인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톱 뉴스자리에서 밀어낼 정도였다. 설령 김정은이 이복형을 암살한 것이 추측대로 100% 사실이라고 해도 북한 로열패밀리 사이 골육상잔이, 어떻게 보면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기보다 가십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는 살인사건이 뉴스 시간 상당부분을 할애할 만큼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을까?

 

김정남 살해사건이 대한민국 언론을 요란하게 장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천민자본주의의 뉴스 장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나는 단정한다. 김정은 로열패밀리의 골육상잔은 그 자체로 말초적 유희의 종합선물세트인 막장드라마의 본질을 모두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뉴스도 시청률이 나와야 광고가 붙고 돈을 벌수 있다. 막장드라마는 누가 뭐래도 전파 장사 최고의 아이템 아니던가.

 

김정남 살해사건 보도 경쟁의 두 번째 이유는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월감 콤플렉스’이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10년간 대한민국의 국격은 바닥없이 추락했다.   

 

한때는  우리가 ‘*꼴라’ 라며 비하했던 중국의 경제적 성장은 이제 우리에게 ‘넘사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물간 선진국 취급을 하는 일본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네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가 지난 10년간 나아진 것도 거의 없다. 쉽게 말해 이명박-박근혜 덕분에, 그들과 공생적 진영논리로 야당 정치의 기득권이나 누리면서 대안 집권세력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못한 친노 정파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상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별로 내세울 것 없는 3류 국가로 전락했다.

 

이러한 국민의 자괴감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북한이다.

 

적어도 우리의 시각과 가치관으로 재단하자면 북한은 세상에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막장 불량 국가 그 자체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한 북한. 박근혜 같은 인간이 대통령 자리를 누리며 나라를 개차반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들은 ‘요상하고 기괴한 나라 북한’을 보면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아닌, 우리의 시각과 가치관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보는 북한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게다가 그 ‘불량국가’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야수와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면 북한은 우리의 우월감 콤플렉스를 한없이 만족시키고도 남을 언론의 대박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다.

 

김정남의 암살이 김정은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합리적 의심의 영역에 속함을 나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한 팩트에 비해 언론이 너무도 깊고 멀리 나가버렸다는 사실이다. “김씨 로얄패밀리”의 죽음을 두고 합리적 의심으로 그토록이나 많은 기사를 양산해 낼 수 있다면, “박씨 로얄패밀리”의 죽음 또한 그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까?

 

2011년 9월. 박근혜의 5촌 조카 박용철과 박용수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사건은 재조명되며 다시 의혹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주류언론과 정치권은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냉정하게 따져봐서 김정남 암살 사건과 박씨 형제 사망사건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팩트와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을까? 김정남 암살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팩트만으로 김정은의 사주를 자신 있게 추측할 수 있다면, 박씨 형제의 죽음에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추측할 수 있는 배후 또한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짐작할 만한 인물들 아니겠는가.

 

우리 내부의 그러한 엄청난 의혹과 부조리는 완전히 무시한 채 김정남 사망에 대해 이토록이나 집착하는 우리네 언론이야말로 편집광적 징후의 전형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의 시각과 가치관으로 북한을 재단하며 우월감 콤플렉스를 해소하며 그들 로얄패밀리의 골육상잔을 말초적 유희로 즐기며 천민자본주의의 언론을 소비한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 광장에서 애국을 읊조리는 주제에 성조기를 흔들면서 사이코패스 대통령을 지키자고 절규하는 무리들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으로 지구촌 전파를 탈 때마다 대한민국 또한 김정은의 나라 북한보다 그리 나을 것 없는 저렴한 국가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리만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