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아니고"우럭 얻으려 갔을뿐이고"

[살며 사랑하며] 잔챙이만 있는 줄 알았던 서해 경기권 우럭낚시

추광규 기자 | 기사입력 2009/06/16 [04:58]

낚시 아니고"우럭 얻으려 갔을뿐이고"

[살며 사랑하며] 잔챙이만 있는 줄 알았던 서해 경기권 우럭낚시

추광규 기자 | 입력 : 2009/06/16 [04:58]
"뚜!"
"자! 낚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4~5미터 쯤 됩니다"
 
짧은 신호음과 함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장의 말이다. 스피커의 짧은 '뚜!'소리는 낚시채비를 물속으로 넣으라는 신호음이다. 두번 짧게 '뚜-뚜!' 울리게 되면 낚시채비를 걷어 올리라는 신호음이기도 하다.
 
서해권 우럭 선상 낚시의 경우 이렇게 신호음으로 낚시대 채비를 물속에 넣거나 걷어 올릴때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뚜'하는 신호음과 함께 채비를 바닷물속에 담궜다. 한참후, 낚시대에 붙어 있는 릴의 수심계는 30미터를 훌쩍 넘고 있다고 표시되고 있는데 4~5미터쯤 된다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순간 바늘이 암초에 걸린 듯 하다. 이리저리 낚시대를 흔들면서 바늘을  빼볼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결국 포기하고 줄을 당겨서 봉돌을 비롯한 바늘채비를 포기할 수 밖에.
 
 
▶ 내가 탄 배 옆으로  짙은 해상안개를 뚫고 또 다른 낚시배가 가까이 다가왔다.     © 추광규

# 짙은 '바다안개' 탓에 몇 십미터 앞도 안보이고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탓에 우럭낚시를 위한 군산권이나 안흥권 출조는 요 몇년 동안은 하지를 못했다. 대신해서 집에서 접근하기 쉬운 인천시 영흥도에서 출조하는 우럭낚시배를 즐겨 타곤 했다. '종일 배' 즉 8시간 남짓 낚시를 하게되는 배를 탄다고 해도 고작해야 뱃길로 1시간 남짓되는 거리인 당진 화력발전소 인근의 풍도나 육도 부근에서 맴도는게 전부였다.
 
육지와 가깝고 수 많은 낚시배들이 들락거리다 보니, 잡히는 고기들이라고 해봤자 씨알이 작을 수 밖에 없다. 개우럭이라고 칭하는 4~50cm급은 운이 좋아야 한 마리 정도 잡는 수준에 불과하다.
 
3주전 출조에서도 영흥도에서 우럭 선상낚시배를 탔지만 그 날도 조과는 그리 풍성하지는 않았다. 어른 손 바닥 만한 놀래미만 20여수 남짓 걸어 올렸고, 씨알이 굵은 우럭은 잡지 못했다. 당시 배에 탄 20여명의 낚시객들중 손맛 을 제대로 본 사람은 몇명 없었다.
 
10여년전 한창 우럭낚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때는 군산권은 물론이고 안흥권 까지 두루 섭렵한바 있다. 시간이고 경비고 그때는 자다가도 꿈에 낚시대에 우럭이 걸려 올라오는 꿈을 꿨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장거리 우럭낚시 출조는 엄두를 못냈다. 그러다가 재작년 부터 영흥도에서 나가는 우럭낚시배에 간간히 타곤 했다.    
 
하지만 영흥도 출조배들은 거의 대부분 내만권인 당진 앞바다에서 낚시를 하다보니 그것도 슬슬 흥미를 잃던 참이다. 고작해야 낚시꾼들이 '깜팽이'라고 부르는 손바닥 만한 우럭이나 놀래미를 잡기 위해 하루를 투자 한다는게 내키지 않았기 때문.
 
지난 금요일(12일), 토요일 출조를 마음먹고 예약을 하기 위해 영흥도에 위치한 '신흥낚시'에 전화를 해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귀가 번쩍 트이는 정보를 전한다. 바로 나 같은 매니아를 위한듯 영흥도에서도 먼 바다 출조를 한다는 것이다. 
 
덕적도와 백아도를 포함하는 소위 '울도'권 출조란다.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 자리가 남아 있다고 하기에 일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예약을 했다. 일요일 만큼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야 한다는 아내의 경고가 귓전에 맴돌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제대로된 우럭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유혹은 너무도 컸다. 전가의 보도를 빼들 수 밖에. 남자들이 꺼내는 핑게중 이 것만큼 효력을 발휘하는 핑게는 없는것 같다. 그것은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로 '비즈니스를 위해!' 일요일날 낚시 간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 짙은 해상 안개속에서도 낚시객들은 고기를 잡는 삼매경에 푹 빠져 있었다.     © 추광규

▶이날 오후 들어서는 해상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굴업도 인근 해상이다.     © 추광규

# 새벽 3시에 나섰지만 출조는 다섯시 반이 다 되어서야    

금요일날 예약을 할때 일요일 새벽 4시 반까지 오라고 했기에 토요일날 설래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간후, 알람이 울리자 마자 깬후 이것저것 챙겨든 후 신흥낚시에 도착하니 새벽 4시 반이다.
 
우럭채비와 미끼등을 준비한 후 기다렸지만 안개때문에 출항 허가가 늦어진다고 한다.  1시간여를 기다린 후 5시 반경이 되어서야 낚시배는 힘찬 시동소리와 함께 영흥항을 떠날 수 있었다. 시속 30노트를 자랑한다는 '경영호'는 영흥항을 떠난지 1시간도 안돼 '각흘도'에 도달했다.
 
해는 떴지만 해상 안개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안간다. 몇 십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것. 하지만 선장은 gps등 장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생각했던 포인트에 당도한 것 같았다. 곧 바로 "뚜!" 소리와 함께 이날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낚시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바늘은 암초에 계속해서 걸리기 시작했다. 평소 출조할 경우 봉돌 4~5개에 우럭 채비도 4~5개면 넉넉했는데 낚시를 시작한지 한 시간도 안돼 가지고간 채비가 거의 소진됐을 정도였다.
 
옆 사람들은 굵직 굵직한 우럭들을 한 마리씩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놀래미도 씨알이 엄청굵다. 놀래미 크기가 40cm가까우니 그 정도면 손맛도 실하고 먹는 맛도 제법일터. 또 그 정도로 씨알굵은 놀래미는 요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크기였다.
 
우럭의 경우도 '개우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했다. 십오륙년전만 해도 낚시꾼들 사이에 '개우럭'이라고 한다면 '6자' 즉 60cm는 넘어야 되고, 최소한 '5자'는 되어야 그렇게 '개우럭'을 잡았다고 큰소리 쳤다.
 
하지만, 지금은 '3자'나 '4자'만 잡아도 개우럭이라고 당당히 부르는 상황에서 이날 낚여 올라오는 우럭은 '5자'가 넘는것 같으니 충분히 개우럭이라고 부를만 했다. 낚시를 시작한지 1시간이 넘게 남들은 그렇게 커다란 우럭을 낚아 올리고 있었지만 나는 뜯긴 채비를 바꿔 다느랴 시간을 다 소비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다시 한번 선장의 말이 울려나왔다.
 
"자 어초는 오후에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다. 이날 낚시를 시작한지 1시간여 동안 어자원 조성을 위해 넣어둔 어초 위에서 낚시를 시작했던것. 어초 낚시의 경우 채비를 어초 높이만큼 허공에 뛰어놓은 상태에서 배가 어초위를 지나갈때 바닥에 닿게하는 낚시법을 구사했어야만 했다. 
 
나 처럼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그대로 들고 있으니 직각으로 세워져 있는 어초에 당연히 걸릴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동안 어초 낚시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이날 새로운 낚시법을 배운 셈이다.

오랜만에 걸려든 '개우럭', 사진만 여섯번을 찍고 
 
▶백아도 인근에 있는 '선단여'. 선단여는 높이가 30여 미터 이상 되는 깍아 지른듯한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추광규
이날 오전 낚시배는 '선단여' 등을 돌면서 비교적 얕은 수심에서 배를 운행했다. 조류가 거세기 때문에 물때를 맞추느랴 여가 있는 곳이나 '각흘도'나 '가도'등 섬 가까이에 배들 대고 낚시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렇게 섬과 가까운 곳에서도 올라오는 고기들의 씨알은 굵었다. 주로 놀래미가 나왔지만 놀래미의 크기가 3~40cm급이었다.
 
오후 들어 선장은 다시 한번 어초에 배를 댔다. 이제는 요령을 깨달았으니 줄을 내린 후 선장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 이번에는 5~6m 쯤 입니다."
"좌측부터 어초를 타고 넘어 갑니다."

 
그랬다. 아침의 의문의 4~5m 라는 선장의 목소리는 바로 어초의 높이를 말한 거였다. 그걸 모르니 계속해서 채비만 뜯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령을 익히니 어초 낚시는 그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순간 채비가 바닥에 걸렸는가 싶었지만 감아보니 힘겹게나마 릴이 돌아간다.
 
투두둑 하면서 손맛이 전해진다. 바다 바닥에서 고기가 바늘에 물려 있다는 편지가 드디어 온것이다. 전형적인 개우럭이 잡힌 것 같다. 40미터 이상 풀려 나가 있는 줄을 기대되는 마음을 한껏 간직한채 서서히 감아보니 우럭 한 마리가 물속에서 맴을 돌고 있다.
 
개우럭급이다. 50cm에 가까우니 오랜만에 제법 큰 우럭을 잡아 올린 것이다. 한 번 요령을 터득한 후에는 나머지 시간은 쉬웠다. 바닥에 줄을 내린 후 선장이 말하는 높이 만큼 릴을 다시 감아 올린 후 어초를 타고 넘어가고 있다고 말할때 고패질 동작을 작게 취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다섯마리 이상의 씨알 굵은 우럭이 내 릴대에 잡혔다. 선장을 보조하는 사무장은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고기들을 사진 찍느랴 바쁘다. '경영호'의 정원인 열다섯명을 꽉채워 출조한 이날 사람당 평균 대여섯수 이상은 잡은 것 같다.  
  
# 잔챙이는 모두 살려줬는데도  굵은 우럭과 놀래미가 쿨러에 가득
 
배에서 내리기 위해 어깨에 둘러멘 쿨러가 제법 묵직하다. 얼음이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고기 무게만 10여킬로는 나가는 것 같다. 킬로급 우럭이 6마리에 제법 굵은 놀래미 한 마리를 포함해 20여수 이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은 상당히 막힌다. 영흥항에서 출발해 시화방조제에 도달한 시간이 두 시간 남짓 걸렸으니 말이다. 피곤한 몸을 상쾌하게 씻고 나오니 아내가 우럭을 손질하고 있다.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아내는 지난 십수년동안 숱하게 바다고기를 잡아오더라도 단 한번도 손질 한 적 없다. 고기 손질은 오롯이 내몫이었다. 손질좀 하라고 말할라 치면 아내는 물고기는 비린내 난다고 손사레 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달랐다. 제법 커다란 플라스틱용기에 손질한 우럭과 놀래미를 차곡차곡 담고 있다. 아내의 행동이 재미있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요리 할려고?" 
"근데 자기야 이렇게 많은데 요거는 목사님 드리자!"

 
그랬다. 아내가 우럭을 손질하는 이유는 바로 목사님한테 드릴려고 그렇게 자신 스스로 비린내를 맡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것. 일요일날 예배를 가지 못했으니 그 댓가로 기분을 맞춰 줄 수 밖에 없었다. 행여나 아내의 심기를 건드렸을 경우 그 후환이 무척이나 두렵기 때문이다. 두 말 않고 혼쾌히 맞장구를 쳐줬다. 아니 한 수 더 거들어 줬다.

" 야 너무 작다 나머지 몽땅 드려라. 그래 이 두 마리만 남기고 드리면 되겠다"
 
횟감으로 썰어 먹을 두 마리와 매운탕용으로 한 마리만 남기고 몽땅 갖다드리라고 말했다. 아내도 나의 말에 만족하는 듯 하다.
 
오늘 새벽이다. 아내는 손질한 우럭을 가득 담은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새벽기도를 갔다고 한다. 아내가 교회 부엌 냉장고에 통을 갖다 놓기 전에 교회문을 열고 들어서다 목사님과 아내의 눈이 딱 마주쳤단다. 목사님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란다.
 
"아니? 이 집사님 그거 뭐에요... 와! 우럭이 무척 크네요!"
"우럭인데요. 남편이 어제 얻어 온거래요..........."
 
"????????"


▶내 바로 옆에서 커다란 우럭을 잡아 올린 한 낚시객. 50cm가 훌쩍 넘는 진짜 '개우럭' 이었다.  우럭낚시배 에서 자신들 조과를 자랑하기 위해 찍는 사진은 요령이 있기도 하다. 바로 낚시꾼이 팔을 뻗어 앞으로 내민채 사진을 찍으면 손바닥 만한 우럭도 무척이나 크게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    © 추광규

▶  오랜만에 걸어 올린 40cm급 우럭. 50미터 수심에서 올라온 관계로 부레가 입 밖으로 빠져 나와 있었다.    © 추광규

그렇다. 일요일인 어제 교회에 출석해야할 남편은 절대로 낚시를 간게 아니었다. 다만 우럭을 얻어 올려고 일요일 낮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듣고 출근준비에 바쁜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뭐! 하느님도 그런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혼에 눈이 멀어 시집오면 예배당에 나가겠다는 약속 탓에 지난 십수년간 주일 대예배만 달랑 한번 참석하는 나 같은 엉터리 집사가 하느님의 그 심오한 마음을 알턱은 없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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