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기 칼럼] 하얀 그리움...어머니의 가래떡과 설날

심종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5/01/11 [16:47]

[심종기 칼럼] 하얀 그리움...어머니의 가래떡과 설날

심종기 칼럼니스트 | 입력 : 2025/01/11 [16:47]

▲ 심종기 칼럼니스트     

 [신문고뉴스] 심종기 칼럼니스트 = 1960년 음력 5월에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다섯째로 태어난 아이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병약하고 유약했던 아이는 네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아 죽다 살아났습니다. 

 

아이는 의욕이 없고, 소심하고, 조용하고, 사색적이었습니다. 아이의 유일한 희망은  쌀밥 한 번 배부르게 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린마음에도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봄에는 냉이를 캐러 다니고, 고사리를 꺾으러 다녔습니다. 여름이 되면 도라지와 잔대를 캐러 다녔고, 초가을이 되면 도토리를 따러 이 산 저 산을 헤맸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캐고, 더 많이 따야 집에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되면 벼베기가 끝난 논을 돌아다니면서 이삭도 줍고 우렁도 잡고 그랬습니다. 우렁을 한 봉지 잡은 날이면 엄마는 우렁 된장국을 맛있게 끊여주셨습니다. 하얀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겨울을 나기 위해 땔감도 부지런히 준비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설날이 다가오던 무렵 엄마는 떡쌀을 이고 방앗간에 가셨습니다. 하얀 가래떡을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뽀얀 김을 폴폴 내면서 가래떡은 천사의 되어 연신 하얀 꼬리를 뿜어 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김이 폴폴나는 가래떡이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면서 엄마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엄마는 그런 마음을 알고 계신지 길다란 가래떡 하나를 통째로 집어 주셨습니다. 아이는 천국의 맛을 느끼게 됩니다.

 

설이 지나고 나서도 썰지 않은 가래떡이 통째로 몇 가닥 남아있었습니다. 화롯불에 가래떡을 구워먹으면 참 맛이 있었습니다. 굽는 냄새가 방안에 진동하면 침이 질질 흘러내렸습니다. 따끈따끈하고 쫀득쫀득한 가래떡은 환상적인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이는 서열이 낮았습니다. 남자형제 4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서열이 낮은 아이는 가래떡을 조금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면 눈치보지 않고 가래떡을 실컷 먹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여전히 하얀 가래떡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햐얀 쌀밥과 흰 가래떡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중년을 넘긴 아이는 하얀쌀밥과 가래떡  덕분에 당뇨병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삶의 철학을 망각한 생활습관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중년을 넘긴 아이는 과유불급에 대한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산중의 스님처럼 섭생을 하고 있고, 국가대표 운동선수처럼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흰쌀밥과 하얀 가래떡을 먹지 못한지 50여일이 되어갑니다.

 

이제 며칠 후면 설 명절이 돌아옵니다. 설 명절에도 하얀떡국 대신 현미 떡국을 먹어야 합니다. 현미 떡국이지만 그래도 설날 명절이 기다려집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국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절날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떡꾹을 먹던  <하얀 그리움> 이 분수처럼 솟아납니다.

<하얀 그리움>의 주인공인 엄마가 천상의 열차를 타고 하늘 나라로 가신지 올해로 10년이 됩니다. 방앗간에서 김이 폴폴나는 하얀 가래떡을 볼때마다 하얀 그리움에 눈시울이 불거집니다.

엄마의 가래떡은 하얀 그리움이자 가슴시린 사랑입니다. 올해 설날도 가래떡과 떡국을 보면 <하얀그리움>이 강을 이룰것 같습니다. 

2025.1.11 칼럼니스트 심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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