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집사람이 큰 병에 걸렸다. 1990년 신혼 초 집사람이 아르바이트 다니던 공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구토도 나고 힘이 들다고 해서 아이를 가져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그만 두었다.
약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아기 주먹만 한 비강암이 발생하였다. 병원에서는 암 발생 부위가 수술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 항암제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항암제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는 아예 암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암제를 써야 한다고 했는데 고농도의 항암제 사용으로 인하여 몸이 많이 망가졌다. 입원실에서 기진맥진 상태로 구토를 하여 밤 10시경부터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했는데도 의료진의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내가 새벽녘에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떴는데 집사람의 등이 활처럼 뻗치며 숨이 넘어가 버려 내가 큰 목소리로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의료진들이 허겁지겁 다수가 와서 썩션을 하고 호흡을 돕고 해서 집사람은 ‘꺼억’ 소리를 내며 숨을 다시 쉬기 시작하였다.
그 고비를 넘긴 이후 집사람이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고 방사선 조사 부위를 표기하러 들어가 있는 동안에 의사가 손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떨다가 빨간 광선이 몸으로 들어왔다고 정신과적으로 이상이 왔다.
나의 옷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자기가 입고 있는 환자복도 보고도 빨간색이라 하고 보이는 것마다 빨간색이라고 했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과 환자는 보통 자신의 행동을 이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만 보이게 되면 자신이 정상인으로 돌아가기보다 그 현실을 받아들여 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격리치료가 필요하다고 정신과 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집사람을 정신과 병동에 입원을 시키고 잠시 병실로 가보았더니 집사람은 창문 앞 라디에이터 그릴 위에 고양이처럼 올라앉아서 창밖을 내려보고 있었다. 창문이 작고 반밖에 열리지 않는 구조라 다행이었지 만일 더 열렸더라면 집사람은 뛰어내렸을 것 같았다. 다행히 집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무사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남았던 방사능 치료를 마저 받고 퇴원을 하였다.
병원에서의 보호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이다.
만일 집사람 숨넘어가는 상황에서 내가 자리에 없어서 살피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았더라면 집사람은 그때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방사선 쏘이는 부위 표시를 위해 집사람을 방사선 치료기 위에 뉘어 놓은 채 의사가 외부 손님을 만나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항암치료로 기진맥진한 집사람이 겪었을 공포를 생각하면 정신병에 걸리는 것도 당연했다. 만일 정신병에서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정말 지금 생각하여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도 그때는 결과가 좋았으니 그저 참아 넘겼다.
의료인들은 위 두 상황에 대하여 의료 과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면책을 주장할 것이다. 만일 광범위한 면책을 법제화하고 의사들의 실수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병석에 눕는 순간부터 의사가 선량한 사람이기만을 기대하는 무장해제 당한 포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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