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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한미 통상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7월 30일 양국이 3,500억 달러(한화 약 490조 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합의한 지 석 달, 협상은 ‘현금 투자 비중’이라는 한두 개의 쟁점을 남긴 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분수령으로 삼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한 금액의 크기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건 ‘선불 투자(up-front)’, 다시 말해 일본식 ‘백지수표 투자’에 가깝다.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곳에 쓰겠다”는 식의 요구다.
하지만 ‘선불 490조 원’의 투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두 달 사이 “한국의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며 두 차례 직접 압박했으나 한국이 이 돈을 한 번에 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응이다.
490조 원은 우리나라 예산의 70%를 넘는 규모이자, 외환보유액의 80%에 해당한다. 이 돈을 단숨에 쏟아부으면 환율 급등, 금융 불안, 국가 신용도 하락이 한꺼번에 닥칠 게 뻔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직접 투자 비중 최소화’에 매달리는 이유다.
이에 정부는 최대 1,500억 달러를 10년에 걸쳐 분할 투자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8년간 2,0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요구한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유사한 수준의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만 했다. 이 협상이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닌 ‘경제주권의 경계선’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미국 측의 무리한 압박에 국내의 일부에선 차라리 25%의 관세를 감수하고, 그 돈을 국내 산업에 투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외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GDP 손실은 연간 7~9조 원 수준. 이를 단순 계산하면, 490조 원이면 70년치 GDP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미국에 쏟아붓기보다 한국 산업에 투자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감정적 대응 대신 냉정한 길을 택했다. 트럼프의 압박을 “무시”할 수도, “굴복”할 수도 없는 딜레마 속에서 협상과 버팀의 균형점을 찾고 있다. 김용범 실장은 “한두 가지 핵심 쟁점을 두고 양국 입장이 끝까지 팽팽하다”고 했다. 그 ‘한두 가지’가 바로 ‘현금 투자 비중’ 국익의 마지노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의 성과가 절실하다. 그는 말레이시아·일본을 거쳐 29일 경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다음 날에는 시진핑 주석과 만난다.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간판 아래,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경제적 보상을 챙기려는 노골적인 일정이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의 책상 위엔 ‘트럼프의 정치적 시간표’와 ‘한국의 국익에다 외환시장 안정선’이 동시에 놓여 있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24일(현지시간) “한국이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수용하면 즉시 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미국이 합의의 ‘속도’보다 ‘조건’이 문제라는 걸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APEC 회담을 앞두고 서두르지 않는 이유다. 무리한 선불 투자에 서명하는 대신, 단계적 투자·보증형 참여로 국가경제의 체질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한미 통상협상은 단순한 경제 이슈가 아니다. 490조 원을 어디에, 언제, 어떻게 쓰느냐는 ‘한국 경제의 미래 설계도’를 결정짓는 일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버티는 건 ‘반미’가 아니라 ‘균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침착함이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세우고 있는 것은 ‘국익의 방파제’다. 그 방파제가 끝내 트럼프의 파도를 막아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는 굴복 대신 계산된 버팀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지점이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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