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늘은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 시험일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실패할 때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 한 번쯤 인생의 역경에 도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오영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5/11/16 [02:46]

[칼럼] 오늘은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 시험일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실패할 때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누구든 한 번쯤 인생의 역경에 도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오영 칼럼니스트 | 입력 : 2025/11/16 [02:46]

 

오늘은 2025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중고등학교가 있어서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자식들을 배웅하기 위해 학교앞 문앞에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랬겠지만 대학입시 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날은 가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수험생 본인 이나 가족들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수험생 본인과 가족들에게는 오늘 아침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일은 엄숙한 날이겠구나 생각한다.

 

더욱이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거기다 재수까지 합하면 십여 년을 공부하여 왔던 결과를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날이어서 긴장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을 어느 학교를 졸업 했느냐는 한평생 살아 가는데 있어서 간판과 같이 따라 붙는 일이어서 인생사 중요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면 훌륭한 학벌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학벌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믿었던 학벌이 자존심의 수단이 되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밑바닥을 알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훌륭한 대학을 나왔더라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대학 졸업의 학벌이 평생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를 안했고 언제나 열등생으로 살았다. 안한 것도 있었지만 못한 것도 있었다. 안한 것은 철이 들지 못했고 게을러서 그런 것이고 못한 것은 너무 성적이 뒤 쳐져 있어서 잘하는 친구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고 자포자기 했었다.

 

그런데 나는 사회에 나와서는 학창 시절 때처럼 농땡이 치면서 살면 안되겠다고 생각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회에 나와서는 단 한루 도 새벽 4시 5시 이후에 일어나 본 적이 없었고 정말 피나게 살았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백척간두 절벽 위에 서있는다는 심정으로 절체절명의 마음을 다지며 살았다.

 

내가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인데 나의 친구가 대구의 국립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는데 그 친구가 우연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앞을 지나가는데 제법 비싼 검은 벨벳 양복을 맞추어 입고 내 앞을 지나가는데 친구야 하고 인사 한 마디 못하고 부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도 대학에 제대로 입학했다면 나의 어머니께서 멋있는 양복 한 벌 맞추어 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속상함에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께도 못난 아들이어서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수 십년이 지나서 우연히 동창회 모임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그는 다니던 삼성전자를 3년 정도 다니다가 일찍 회사를 그만두고 선배들과 회사를 차렸는데 경험 없이 만들었던 회사가 오래 갈 리가 없었다. 그 후 특별한 성과 없이 이런저런 회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동창회에서 만나서 나는 그 친구에게 그 옛날 대학 1학년 때 멋있는 벨벳 양복 입고 다녔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느냐고 화들짝 했다. 그것도 40여년 전의 일이었는데 어떻게 그 것을 알고 있느냐고 놀라워 했다. 

 

나는 내가 대학을 낙방하고 재수  삼수하던 시절의 그때의 그 서러움을 한평생 살아가면서 잊은 적이 없었고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우뚝 서야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면서 살아왔기에 친구가 벨벳 양복을 입고 지나가는 장면을 가슴에 새기고 한평생을 살아 왔기에 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 하는 말이 멋있는 벨벳 양복 입고 학교에 갔더니만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공부는 안 하고 학교에 폼 내러 학교에 오는 것이냐고 하면서 내일 부터 벨벳 양복 입고 학교에 나타 나지 마라고 오히려 호통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한평생을 벨벳 양복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공부 못한 설움을 가슴에 새기면서 언젠가는 성공해서 친구들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왔다. 지금은 초로의 나이에 조금은 이루고 살고 있지만 오히려 그 친구는 벨벳 양복의 기억은 교수님에게 야단 맞은 기억 밖에 없다고 하니 세상 살아가는 것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생각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이 비단 이것 뿐이겠는가 젊은 시절 힘들었던 시절은 돈 주고도 못산다 라는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곳은 대구의 중심부의 어느 골목 동네였는데 초등학교 동급생 친구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 그 친구는 공부를 꽤 잘했고 성격도 온순하고 어른 서러웠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 당시 어느 시골의 경찰 서장을 했었기에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 후 그 친구는 대구에서 일류 중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서울의 내 놓으라 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최근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그 친구가 나오게 되면서 근황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서울의 일류 대학 통계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통계학과는 경영대학에는 소속 되어 있지만 신생 학과여서 그 후 직장을 잡기가 힘들었다고 하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그다지 큰 대기업이 아닌 회사에 다니면서 한평생을 보냈고 은퇴한 지금은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케어하는 돌봄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3번 정도 나가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성공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았고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다. 나는 자동차 회사에 입사해서 일본 지점장을 오랫동안 지내다가 한국으로 복귀해서 일본 주재 시절 알게 된 일본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의 사업을 30년을 해 왔다. 

 

일본에서 지점장 생활을 하면서 그때만 하여도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조금은 더 선진국이었다, 선진국 일본에 가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생면부지의 일본회사를 방문 해야 했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일본국이 낳설기는 하였지만 일본의 자동차회사와 부품협력사를 1년에 천 개사를 방문하고 다녔다,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나의 회사는 번창 했고 지금도 사업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정말 다행 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한때 잘되어 가는 친구들을 보고 친구들 마큼 되지 못해 마음도 아파 보았고 속이 상한 일도 많았고 알게 모르게 자책감에 스스로가 위축되는 때도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를 지켜 봐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시는 부모님 교육 덕분에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삼시세끼 밥 먹고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게 되는 삶을 살고 있고 부모님의 바램 대로 정당하고 바르게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대입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은 것은 중요하고 일생일대의 큰일이기는 하여도 지나고 나면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학창 시절 재수 삼수 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잠시 잠깐 친구들보다 학업에서 뒤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속상해 하거나 체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때 잘나가던 사람들도 자칫 잘못 엉뚱 한 길로 들어서서 직장을 잃어 버리는 일도 있을수 있고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뒤 쳐질 수도 있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인생은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고 나중에 잘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못 받았더라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는 데에는 작은 돌 뿌리도 있고 감당 하기 어려운 난관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당시 견디기 힘든 일들도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때도 있을 것이기에 실망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재수 삼수해서 겨우 턱걸이 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학부에서는 기계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장래를 위해서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그 후 일본에 가서 오랫동안 내가 다녔던 회사의 주재원 생활도 했다. 그 후 한국에 복귀해서 방송통신대학을 나왔고 또다시 대학원에 들어가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린 시절 공부 못했던 서러움을 시간이 지나더라도 성공해 보기 위해서 박사학위를 받고자 하였고 공부하기에는 늦은 나이가 되었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열심히 살았다.

 

이제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 뒤돌아 보니 나름대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구나 생각한다.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논문 작성하는 하는 일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1차 심사 2차 심사까지 거쳐야만 했고 교수들의 쪽집게 질문에 답해야 했다. 졸업종합시험 치르고 영어 시험을 패스 하여야 했는데 해석본을 들여야 보아도 이해가 안되는 어려운 영어책을 들여다 보면서 400페이지 되는 영어책 한 권을 달달 외어 보기도 했다. 중도에서 포기할까도 싶었다. 

 

그래도 죽자 살자 매달렸고 길을 걸을 때도 책을 보았고 출퇴근할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영어 문장을 외우고 또 외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다 외워서 시험장에 들어갔고 좋은 성적 으로 패스했다. 눈을 시력이라고 표현하는데 눈에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공부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도 배우는 것이 많구나 생각 했다. 

 

지나고 나니 노력해서 안되는 일은 없었다. 엄두가 안나는 일들도 부딪혀 보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다. 한 사람의 지나온 삶이 좋은 일들만 있었겠는가 어려운 일들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어렵고 힘든 일들도 어느새 아름다운 기억으로 변모해 있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에서 실패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행여 젊은 청춘들이 낙심해서 마음 아파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인생은 긴 여로여서 이번에 못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마지막에 성공한 사람이 진정한 승리 자 이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동안 어려운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 남아 누구 못지 않는 성상 위에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든 한 번쯤 인생의 역경에 도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살아보니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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