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사람들, 고려인마을 시인 김블라디미르

공동체가 만든 문학의 기적 강제이주·귀환·노동이 시가 되다

김영남기자 | 기사입력 2025/11/19 [08:56]

광주 고려인마을 사람들, 고려인마을 시인 김블라디미르

공동체가 만든 문학의 기적 강제이주·귀환·노동이 시가 되다

김영남기자 | 입력 : 2025/11/19 [08:56]

▲ 고려인마을 시인 김블라디미르     ©고려인마을 제공

 

[신문고뉴스]광주 김영남 기자 =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살아가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시인 김블라디미르의 삶과 문학이 독자들의 마음을 잔잔히 울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겪어온 강제이주의 역사, 정체성의 흔들림, 낯선 조국에서의 노동과 생존, 그리고 희망을 담은 기록으로 마을의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시인은 1956년 타슈켄트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문학대학과 의과대학에서 러시아문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심화된 민족차별과 생활고는 그를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고, 국내로 먼저 귀환한 자녀들을 따라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조상의 땅에서 그는 일용직 노동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시를 놓지 않았다. 한국어를 알지 못해 러시아어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지만, 이 언어는 오히려 고려인의 기억과 정서를 더 선명하게 담아내는 도구가 되었다.

 

2017년 국내 귀환 후 처음 발표한 시집 『광주에 내린 첫눈』은 낯선 조상의 땅에서 마주한 첫 겨울, 첫 노동, 첫 외로움, 그리고 꺼지지 않았던 희망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2012년 한국 입국 이후 생계와 언어 문제로 고통을 겪던 그는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고, 이를 정막래 계명대 교수가 번역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이 시집을 두고 “귀환세대의 정착 서사를 가장 진솔하게 기록한 문학적 사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2018년 출간된 두 번째 시집 『회상열차 안에서』는 더욱 특별한 여정을 담았다. 김 시인이 직접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 1937년 고려인 선조들이 걸었던 ‘강제이주의 길’을 따라가며 쓴 작품으로, 개인의 회상이자 공동체의 아픔을 되새기는 문학적 복원 작업에 가깝다.

 

출판비 4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간이 어려웠던 시집은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으면서 가능해졌다. 여기에 소식을 들은 디자인하우스 이경일 대표가 광주까지 내려와 “전액 무상 출판”을 제안하면서 출간이 성사된 감동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번역은 중앙아시아에서 25년간 고려인을 연구해 온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이 맡았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불리는 노래 ‘고려아리랑’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2024년 발간된 세 번째 시집 『어둠 속 빛이 떠오를 때』는 조국에서 살아가는 고려인 후손들의 현실과 노동의 고단함, 그리고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삶의 태도를 담은 78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나주 배밭, 함평 양파밭,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써 내려간 그의 시는 노동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生의 기록이다. 이 시집 역시 출판비가 어려웠으나 마을 주민들이 다시 힘을 모아 발간을 도왔다. 번역은 고려방송(FM 93.5MHz) 진행자와 고려인 한국어교사 등 마을 구성원들이 맡아 원문의 감정과 호흡을 정교하게 옮겼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세 번째 시집은 귀환 고려인의 정착 현실과 디아스포라 문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라며 “문학을 통해 고려인 공동체의 역사와 오늘을 잇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김블라디미르 시인의 세 권의 시집은 고려인의 강제이주 역사, 국내 정착의 힘겨움, 그리고 희망의 불씨를 담아낸 하나의 ‘문학적 여정’”이라며 “그의 작품은 고려인 공동체의 기억과 미래를 잇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김블라디미르의 문학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 이주민 공동체의 아픔과 극복, 그리고 희망을 언어로 복원하는 귀중한 목소리이다. 그의 시집들은 광주 고려인마을이 품어온 기억과 서사를 문학 속에 온전히 새겨 넣으며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 김영남기자 nandagre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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