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려인마을 사람들, 작은 빵집에서 피어난 기적

고려인마을가족카페 ‘텐올가’, 공동체를 일으킨 한 여성의 따뜻한 나눔 이야기

김영남기자 | 기사입력 2025/11/26 [10:24]

광주고려인마을 사람들, 작은 빵집에서 피어난 기적

고려인마을가족카페 ‘텐올가’, 공동체를 일으킨 한 여성의 따뜻한 나눔 이야기

김영남기자 | 입력 : 2025/11/26 [10:24]

[신문고뉴스]김영남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이름이 있다. 바로 ‘텐올가(전올가·39)’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마을을 지탱하는 따뜻한 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201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를 따라 한국 땅을 밟은 스물여섯 살의 젊은 엄마 그녀는 손에 쥔 것이라고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고, 남편과 함께 농촌 일용직을 전전하며 버텨야 했던 시절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같았다. 하지만 텐올가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의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은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라 믿었다.

 

▲ 광주고려인마을 사람들, 작은 빵집에서 피어난 기적     ©김영남기자

 

작은 빵집에서 피어난 기적의 시작

 

그 믿음은 2013년 광산구 월곡동, 허름한 공간 한 켠에서 문을 연 ‘고려인마을 가족카페’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장판이 울고 배수도 좋지 않던 작은 가게였다. 하지만 텐올가는 새벽 어둠을 깨우며 반죽을 치고,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아들이며 묵묵히 하루를 쌓아 올렸다.

 

그 성실함은 빵의 온기처럼 사람들에게 전달됐고, 손님들은 하나둘, 다시 그 빵 냄새를 찾아왔다. 그렇게 마련한 자본으로 2호점, 3호점이 잇달아 문을 열었고 작던 가게는 어느새 마을의 자랑이 되었다. 

 

최근에는 ‘고려인이 만든 중앙아시아 전통빵’이 SNS와 온라인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면서 하루 수백 건의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이제 그 빵집은 고려인 동포가 운영하는 가게를 넘어 광주를 찾는 이들이 일부러 들르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텐올가의 진짜 성공은 매출이 아니다. 조금 숨을 고를 여유가 찾아왔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돌아본 곳은 늘 ‘동포’였다. 병원비가 없어 울먹이던 동포들의 진료비를 대신 내주고, 보증금이 부족해 집을 얻지 못한 동포를 조용히 도왔다. 생활이 버거운 청소년들에게는 해마다 장학금을 건네며 “너희의 꿈이 자라는 것을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2019년, 고려인광주진료소가 건축비 부족으로 공사가 멈추자 텐올가는 단숨에 사재를 털어 건축비 대부분을 후원했다.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저도 빈손으로 왔어요. 동포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 마음은 2022년 전쟁으로 난민이 된 고려인동포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곳곳의 난민센터에 흩어진 동포들이 귀국 항공권이 없어 발을 구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텐올가는 망설임 없이 1,000만 원을 내놓았다. 그녀의 제안은 큰 흐름이 되었고, 결국 900여 명의 전쟁난민 고려인동포들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열렸다. 누군가는 “그녀가 첫 번째로 불을 붙였고, 그 불은 희망의 횃불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헌신은 지역사회와 정부에도 큰 울림을 주었다. 텐올가는 한국 사회 통합과 이민자 지원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광주광역시장상’, 그리고 2022년 ‘세계인의 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특히 국무총리상은 외국 국적 고려인에게는 처음으로 수여된 상이었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녀는 특유의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이 상은 제 이름이 아니라, 저와 같은 모든 고려인동포에게 주어진 상이에요. 서로 돕고 기대어야만 이 땅에서 다시 뿌리내릴 수 있으니까요.”

 

광주는 그녀에게 ‘두 번째 고향’

 

2012년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광주는 이제 그녀에게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텐올가는 오늘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아픈 이웃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내일을 건네며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채워가고 있다.

 

그녀가 정성으로 반죽한 빵에서 풍기는 따뜻한 향기는 이제 단순한 식빵의 냄새가 아니다. 희망의 냄새,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의 온기로 광주 고려인마을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

 

 

 

# 김영남기자 nandagre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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