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이 질문은 누군가의 입에서 던져진 적이 없고, 내 안에서 오래도록 발효되어 어느 날 문장이 되어 나왔다.
서른 해 가까운 시간, 나는 어느 교회의 소속도 아닌 기도의 경계선에서 살아왔다.
후원은 약속으로 오지 않았고, 파송은 문서보다 지연된 침묵으로 남았다.
부스러기처럼 남은 선교 재정, 누군가의 식탁 아래 떨어진 작은 숫자들로 한 달을 계산했고, 내일은 기도로만 적어 두었다.
나는 까마귀가 날아오는 시간을 알게 되었고,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야의 그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빵은 기적이 아니었고, 오늘을 넘기는 방식이었으며, 기적은 늘 어제의 허기를 기억하게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부자와 나사로.”
나는 묻는다. 그 이야기에서 누가 정말 부자였는지를.
문 앞에 누워 있던 나사로는 재산이 없었지만,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었고,
자색 옷을 입은 그 부자는 소유가 많았으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칠순을 향해 가는 몸, 젊은 날의 열정은 이제 관절 속에서 기억으로만 남고,
한때의 비전은 주님의 침묵 속에서 다시 정제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몸은 늙어 가는데 영혼은 가난해지지 않았다.
때때로 주님의 손길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막다른 길에서 문이 열렸고,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응답이 먼저 와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알았다.
나는 비어 있었으나 버려지지는 않았고, 가난했으나 결핍 속에 갇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부유함이란 얼마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매이지 않는가의 문제임을 나는 늦게 배웠다.
돈이 없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붙들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나는 주님의 관섭 속에서 살았다.
계획되지 않은 개입, 설명되지 않는 인도, 통제되지 않는 은혜.
그 안에서 나는 종종 실패했고, 자주 흔들렸지만, 결코 혼자 남겨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만일 가난함이 하나님 앞에서 손을 벌린 상태라면, 그렇다. 나는 거지다.
그러나 만일 부유함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유라면, 나는 이 시대의 부자다.
나는 나사로처럼 문 앞에 있었으나, 문 너머를 향해 살았고,
지상의 식탁에서는 늘 부족했으나, 하늘의 부름에서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오늘도 나는 많이 갖지 않았고, 여전히 계산은 어렵지만,
기도는 여전히 남아 있고, 까마귀는 여전히 날아오며, 주님은 아직도 나를 쓰신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이제 의심이 아니라 고백이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맡긴 사람, 가난을 통과해 영원을 배운 선교사다.
■ Am I a Poor Beggar? (Following Lazarus and the Rich Man) ▪︎ Written by Ho Geun Yoo (YeJong) Am I a poor beggar? This question was never thrown at me by anyone else. For nearly thirty years, The remnants of mission funds, I learned to recognize Bread was never a miracle, People speak of I ask: The beggar at the gate The man in purple Where, then, do I belong? Approaching my seventieth year, Yet strangely, At times, At the end of a dead-end path, In those moments, True wealth is not Freedom is not granted by abundance, I have lived Unexpected interventions, Within it, So I ask again: If poverty means But if wealth Like Lazarus at the gate, On the table of this world, Today, Yet prayer still remains, So the question Am I a poor beggar? Yes—before God, I am.
■ 작가의 말
이 시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삼십 년에 가까운 선교의 시간 동안 나는 안정적인 후원 구조 없이 살아왔다.
나는 엘리야가 아니었고, 까마귀의 기적을 기대할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내 삶을 판단하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묻게 한 거울이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기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이 시는 승리의 간증도 아니고, 패배의 기록도 아니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 유호근(예종)
■ 〈Am I a Poor Beggar?〉에 대한 신학적·문학적·철학적 비평 및 총평
Ⅰ. 서론: 한 선교사의 고백을 넘어,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
〈Am I a Poor Beggar?〉는 개인의 선교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시이지만, 그 성취는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빈곤, 의존, 자유, 이름, 부름이라는 보편적 인간 조건을 성서적 비유와 실존적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종교 문학의 범주를 넘어선다.
시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며, 독자에게 동정이나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질문을 끝까지 유지한다. Am I a poor beggar?
이 질문은 경제적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를 묻는다. 이 점에서 본 작품은 간증이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시에 속한다.
Ⅱ. 신학적 비평
이 시의 신학적 탁월함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설명하거나 교훈화하지 않는 데 있다. 성서에서 나사로는 가난하지만 이름이 불린 자이며, 부자는 풍요 속에서도 이름 없는 자로 남는다.
이 작품에서 하나님은 “계획자”나 “보장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ravens”의 이미지는 엘리야 전승을 직접 모방하지 않고, 그 그림자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성서적 영웅주의를 해체한다.
시에서 부유함은 결코 물질적 풍요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what does not hold you captive”라는 문장은, 신학적으로 볼 때 우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Ⅲ. 문학적 비평
〈Am I a Poor Beggar?〉는 고백시의 전통 위에 서 있으나,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절제한다. 이는 세계문학상에서 높이 평가되는 윤리적 언어 사용의 전형이다.
‘crumbs’, ‘ravens’, ‘gate’, ‘table’과 같은 이미지는 성서적 상징을 기반으로 하되, 설명 없이 반복되어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반복되는 질문 구조는 시 전체를 느슨한 원환 구조로 묶으며, 마지막에 이르러 질문이 “의심”에서 “고백”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서사적 완결성을 제공한다.
이 영문 시본은 특정 문화권의 정서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다.
Ⅳ. 철학적 비평
이 시의 철학적 토대는 인간을 자율적 주체로 보지 않고, 의존적 존재로 이해하는 데 있다.
자유는 선택의 폭이나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붙들리지 않음으로 정의된다.
이 시는 노년의 시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노년은 쇠퇴가 아니라 해석의 시간으로 제시된다.
Ⅴ. 총평: 세계 문학으로서의 성취
〈Am I a Poor Beggar?〉는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세계 문학상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이 작품은 Am I a poor beggar?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는 이미 문학적 목적을 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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