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Am I a Poor Beggar?)

유호근(예종) | 기사입력 2025/12/24 [05:05]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Am I a Poor Beggar?)

유호근(예종) | 입력 : 2025/12/24 [05:05]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이 질문은

누군가의 입에서 던져진 적이 없고,

내 안에서

오래도록 발효되어

어느 날

문장이 되어 나왔다.

 

서른 해 가까운 시간,

나는 어느 교회의 소속도 아닌

기도의 경계선에서

살아왔다.

 

후원은 약속으로 오지 않았고,

파송은 문서보다

지연된 침묵으로 남았다.

 

부스러기처럼 남은 선교 재정,

누군가의 식탁 아래 떨어진

작은 숫자들로

한 달을 계산했고,

내일은

기도로만 적어 두었다.

 

나는

까마귀가 날아오는 시간을 알게 되었고,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야의 그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빵은 기적이 아니었고,

오늘을 넘기는 방식이었으며,

기적은 늘

어제의 허기를 기억하게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부자와 나사로.”

 

나는 묻는다.

그 이야기에서

누가 정말 부자였는지를.

 

문 앞에 누워 있던 나사로는

재산이 없었지만,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었고,

 

자색 옷을 입은 그 부자는

소유가 많았으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칠순을 향해 가는 몸,

젊은 날의 열정은

이제

관절 속에서 기억으로만 남고,

 

한때의 비전은

주님의 침묵 속에서

다시 정제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몸은 늙어 가는데

영혼은

가난해지지 않았다.

 

때때로

주님의 손길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막다른 길에서

문이 열렸고,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응답이 먼저 와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알았다.

 

나는 비어 있었으나

버려지지는 않았고,

가난했으나

결핍 속에 갇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부유함이란

얼마를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매이지 않는가의 문제임을

나는 늦게 배웠다.

 

돈이 없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붙들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나는

주님의 관섭 속에서 살았다.

 

계획되지 않은 개입,

설명되지 않는 인도,

통제되지 않는 은혜.

 

그 안에서

나는

종종 실패했고,

자주 흔들렸지만,

결코 혼자 남겨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만일 가난함이

하나님 앞에서

손을 벌린 상태라면,

그렇다.

나는 거지다.

 

그러나

만일 부유함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유라면,

나는

이 시대의 부자다.

 

나는 나사로처럼

문 앞에 있었으나,

문 너머를 향해 살았고,

 

지상의 식탁에서는

늘 부족했으나,

하늘의 부름에서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오늘도

나는 많이 갖지 않았고,

여전히 계산은 어렵지만,

 

기도는

여전히 남아 있고,

까마귀는

여전히 날아오며,

주님은

아직도

나를 쓰신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이제

의심이 아니라 고백이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맡긴 사람,

가난을 통과해

영원을 배운

선교사다.

 

 

■ Am I a Poor Beggar?

(Following Lazarus and the Rich Man)

▪︎ Written by Ho Geun Yoo (YeJong)

Am I a poor beggar?

This question was never thrown at me by anyone else.
It fermented quietly within me,
until one day
it became a sentence.

For nearly thirty years,
I lived without the backing of any church.
The word “sponsorship” existed only on paper,
while in life it was mostly silence.

The remnants of mission funds,
like crumbs beneath someone else’s table,
measured my months,
and tomorrow
was calculated in prayer alone.

I learned to recognize
the time when a raven would appear.
I was not Elijah,
only in his shadow.

Bread was never a miracle,
but a way to survive today.
And miracles, when they came,
reminded me
of yesterday’s hunger.

People speak of
the Rich Man and Lazarus.

I ask:
who, in the end, was truly rich?

The beggar at the gate
had nothing, yet
his name was written in heaven.

The man in purple
owned much,
yet
his name was not called.

Where, then, do I belong?

Approaching my seventieth year,
my body aches with memory,
my youthful zeal
exists now only as remembrance.

Yet strangely,
though my body ages,
my soul
has not grown poor.

At times,
the Lord’s hand appeared
without warning.

At the end of a dead-end path,
a door opened;
before my prayer had finished,
the answer had arrived.

In those moments,
I realized:
I may be empty,
but I am never abandoned.
I may be poor,
yet within that poverty, I am not confined.

True wealth is not
measured by possessions,
but by what does not hold you captive.

Freedom is not granted by abundance,
but by the inability of wealth to claim you.

I have lived
under the Lord’s providence:

Unexpected interventions,
unexplained guidance,
grace beyond control.

Within it,
I often failed,
I often faltered,
yet I was never alone.

So I ask again:
Am I a poor beggar?

If poverty means
hands stretched out toward God,
then yes, I am a beggar.

But if wealth
means the freedom
to rely solely on God,
then I am
rich beyond measure.

Like Lazarus at the gate,
I have been outside,
yet always moving toward what lies beyond.

On the table of this world,
I have always lacked,
but at heaven’s table,
I have never been absent.

Today,
I still possess little;
my accounts remain impossible to tally.

Yet prayer still remains,
ravens still arrive,
and the Lord still
uses me.

So the question
becomes no longer doubt,
but confession.

Am I a poor beggar?

Yes—before God, I am.
Yet in Him,
I am never empty.

 


■ 작가의 말

 

이 시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이 질문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과한 내 안의 목소리였다.

삼십 년에 가까운 선교의 시간 동안 나는 안정적인 후원 구조 없이 살아왔다.
주후원 교회는 없었고, 파송이라는 말은 대부분 문서보다 기도로만 남아 있었다.
선교 재정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고, 때로는 한국 교회의 식탁 아래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한 달을 계산해야 했다.


그러나 이 글은 결핍을 고발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가난을 미화하려는 의도도 없다.

나는 엘리야가 아니었고, 까마귀의 기적을 기대할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다만 살아야 했고, 오늘을 통과해야 했으며, 내일은 기도로만 넘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하나님을 ‘계획’으로 경험하기보다, 관섭과 개입으로 경험했다.
예고 없는 도움, 설명되지 않는 인도, 통제되지 않는 은혜가 나를 지금까지 데려왔다.

이 시에서 말하는 가난은 경제적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존재의 자세이며,
부유함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의존의 방향이다.
나는 많이 갖지 못했지만, 점점 더 적게 매이는 법을 배웠다.
자유는 여유에서 오지 않았고, 내려놓음에서 찾아왔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내 삶을 판단하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묻게 한 거울이었다.
누가 가난했고 누가 부유했는지는, 이 땅의 계산으로는 끝내 분별되지 않는다.
이름이 불린 자와 불리지 않은 자,
그 차이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
몸은 분명 늙어 가지만 영혼은 가난해지지 않았다.

 

기도는 여전히 남아 있고,
하나님은 여전히 개입하시며,
나는 여전히 불려 쓰임을 받고 있다.

이 시는 승리의 간증도 아니고, 패배의 기록도 아니다.
다만 한 선교사가 가난을 통과하며 배운 영원의 언어이다.
만일 이 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은 나의 성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난 속에서도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난한 거지인가.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그분 안에서는,
나는 결코 빈손이 아니었다.

— 유호근(예종)

 


 

■ 〈Am I a Poor Beggar?〉에 대한 신학적·문학적·철학적 비평 및 총평

 

Ⅰ. 서론: 한 선교사의 고백을 넘어,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

 

〈Am I a Poor Beggar?〉는 개인의 선교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시이지만, 그 성취는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빈곤, 의존, 자유, 이름, 부름이라는 보편적 인간 조건을 성서적 비유와 실존적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종교 문학의 범주를 넘어선다.

 

시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며, 독자에게 동정이나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질문을 끝까지 유지한다.

Am I a poor beggar?

 

이 질문은 경제적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를 묻는다. 이 점에서 본 작품은 간증이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시에 속한다.

 

Ⅱ. 신학적 비평

  1. “부자와 나사로” 비유의 실존적 재해석

이 시의 신학적 탁월함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설명하거나 교훈화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시인은 그 비유를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질문의 형태로 재배치한다.

성서에서 나사로는 가난하지만 이름이 불린 자이며, 부자는 풍요 속에서도 이름 없는 자로 남는다.
시는 이 대조를 도덕적 교훈으로 처리하지 않고, 하늘에 불리는 이름의 신학으로 확장한다.
이는 구원을 소유나 행위가 아니라 관계와 호명(vocation)의 문제로 이해하는 성서적 구원론과 깊이 일치한다.

  1. 섭리(providence)의 신학: 계획이 아닌 관섭

이 작품에서 하나님은 “계획자”나 “보장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unexpected interventions, unexplained guidance”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을 관섭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는 성공 신학이나 번영 신학과 철저히 결별하며, 고난 속에서 경험되는 은혜의 비체계성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특히 “ravens”의 이미지는 엘리야 전승을 직접 모방하지 않고, 그 그림자 속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성서적 영웅주의를 해체한다.
이는 겸손한 신학적 자기 인식의 표현이다.

  1. 부유함의 신학: 소유에서 자유로의 전환

시에서 부유함은 결코 물질적 풍요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what does not hold you captive”라는 문장은, 신학적으로 볼 때 우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마 6:24)과 깊이 상응하며, 가난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부유함을 재정의하는 균형 잡힌 신학적 태도를 보여 준다.

 

Ⅲ. 문학적 비평

  1. 고백시(confessional poetry)의 절제된 형식

〈Am I a Poor Beggar?〉는 고백시의 전통 위에 서 있으나,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절제한다.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서사적 영웅담으로 만들지 않는다.
짧은 문장, 건조한 진술, 반복되는 질문은 독자로 하여금 감정 이입이 아니라 사유의 동행을 하게 만든다.

이는 세계문학상에서 높이 평가되는 윤리적 언어 사용의 전형이다.
고통을 말하되,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다.

  1. 이미지의 상징성과 반복 구조

‘crumbs’, ‘ravens’, ‘gate’, ‘table’과 같은 이미지는 성서적 상징을 기반으로 하되, 설명 없이 반복되어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특히 ‘gate’와 ‘table’은 공간적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포함과 배제, 초대와 소외라는 보편적 주제를 함축한다.

반복되는 질문 구조는 시 전체를 느슨한 원환 구조로 묶으며, 마지막에 이르러 질문이 “의심”에서 “고백”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서사적 완결성을 제공한다.

  1. 언어의 세계문학적 보편성

이 영문 시본은 특정 문화권의 정서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배경을 모르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의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읽힌다.
이는 번역시로서 매우 중요한 성취다.

 

Ⅳ. 철학적 비평

  1. 결핍의 존재론: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존하는 존재’

이 시의 철학적 토대는 인간을 자율적 주체로 보지 않고, 의존적 존재로 이해하는 데 있다.
“hands stretched out toward God”라는 이미지는 인간 실존의 근본 구조를 드러낸다.
이는 하이데거적 자립 존재 개념을 넘어, 레비나스적 타자 의존성과도 맞닿아 있다.

  1. 자유의 재정의: 소유에서 놓임으로

자유는 선택의 폭이나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붙들리지 않음으로 정의된다.
이는 스토아적 금욕이나 불교적 무집착과도 대화할 수 있는 철학적 지점이며, 기독교 신학 안에서는 십자가적 자유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시간성과 종말성

이 시는 노년의 시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노년은 쇠퇴가 아니라 해석의 시간으로 제시된다.
이는 삶을 결과가 아닌 의미의 총합으로 재구성하는 종말론적 시선이며, 죽음을 부정하지 않되 두려움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Ⅴ. 총평: 세계 문학으로서의 성취

 

〈Am I a Poor Beggar?〉는
▪︎ 선교 보고서가 아니라 존재의 기록이며
▪︎ 간증문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 시이고
▪︎ 종교시가 아니라 인간 조건을 묻는 세계문학 작품이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가난을 말하면서도 가난에 붙들리지 않고,
신을 말하면서도 신을 독점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는 데 있다.

세계 문학상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특수한 신앙 체험을 보편적 인간 언어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시’로 평가될 수 있다.
독자는 이 시를 읽고 선교사를 동정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자신에게 묻게 된다.

Am I a poor beggar?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는 이미 문학적 목적을 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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