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장 신년칼럼] 허니문은 끝났다, 이제는 실력의 정치다

임두만 편집위원장 | 기사입력 2025/12/31 [23:06]

[편집위원장 신년칼럼] 허니문은 끝났다, 이제는 실력의 정치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입력 : 2025/12/31 [23:06]

[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해가 바뀌는 문턱에 서면 늘 같은 질문을 마주한다. 우리는 과연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그러나 누구도 그 답을 시원하게 말하기는 힘들다. 특히 지난 한 해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선택이 비슷할 때 역사는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근대 대한민국 정치 70년사가 그렇다.

 

▲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 전경  

 

2025년 기사년의 정치도 한마디로 극단적 편가르기의 시간이었다. 정책보다 진영이 앞섰고, 설득보다 동원이란 쉬운 길이 선택됐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되자, 정치는 자연스럽게 극단적 편기름 외엔 길을 찾지 못했고, 그 와중에 민생은 어려워졌다.

 

다른 목소리는 곧바로 ‘적’으로 규정됐고, 이렇게 형성된 정치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길을 가고 있다. 이는 특히 권력의 영구화를 꿈꾸다 ‘내란 수괴’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야당의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야권공동체’ 전체를 자기불신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여당이라고 다른가? 민주당은 여전히 ‘개혁’을 말한다. 사법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플랫폼 규제까지 레퍼토리는 풍부하다. 그러나 목소리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

 

야당 시절 민주당은 권력 남용에 민감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행정부, 공공기관, 대기업이 얽힌 사안에서 민주당은 시민의 시선보다 시스템의 편의를 먼저 고려하는 모습이 잦다. 쿠팡 청문회 같은 사안에서도 분노의 언어는 있지만 해결책은 미흡하다.

 

검찰과 사법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가 ‘반(反)검찰’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이 묻는 것은 이제 단순하다. “그래서 민주당이 만들려는 새로운 질서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 답변보다 뜬금없는 친명 친청 논란의 와중에 있다.

 

민주당은 지지층의 분노와 충성도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지지층의 신뢰는 무한하지 않다. 지지층은 ‘편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정치, 그리고 자기 편에도 엄격한 정치를 원한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개혁의 언어를 행동으로 번역할 용기, 중도확장과 자기편 굳히기의 조화, 대기업·권력·자기 진영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관성, ‘누가 나쁘냐’가 아니라 ‘어떤 국가를 만들 거냐’에 대한 답이다.

 

춘추시대 제나라를 일으킨 관중은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대표되는 신뢰의 상징이다. 그는 권력자의 환심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했다. 개인의 이해를 넘어 공공의 질서를 세울 때 비로소 국가는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해가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리더십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원칙은 흐릿하고, 여론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며, 책임지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새해를 맞는 태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다만 최소한 전철을 밟지 않을 지혜는 필요하다. 전국시대 소진이 말했듯, 멀리 내다보는 자만이 패하지 않는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꾀에 스스로 속게 된다.

 

2026년의 문 앞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은 선택해야 한다. 편한 길로 가다 익숙한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원칙을 세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만들 것인가. 고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사는 늘 현재형이다.

 

새해에는 적어도 한 가지쯤은 분명해졌으면 한다.

 

누구를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묻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기를...그것이 새해를 맞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새로운 방식일 것이다.

 

이제 병오년이다. 말의 해는 본래 지경을 넓히는 해다. 달리기만 잘하는 말이 아니라, 방향을 읽고 균형을 잡는 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정치에 요구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포용의 반경이다. 더 많이 말하는 정치가 아니라, 더 넓게 듣는 정치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허니문은 끝났다. 선거 직후의 기대, 정권 초반의 관성적 지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부터 지지는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실력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국정은 말 바꾸기로 인식될 뿐이다. 국민은 약속보다 결과를, 구호보다 실행을 본다.

 

정치는 본래 갈등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능력이다. 관중이 제나라를 일으켰던 이유는 같은 편만 챙겼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가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신뢰와 포용이 결국 가장 강력한 통치 자산이기 때문이다.

 

병오년의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국정을 맡은 순간, 정치는 전체를 설득해야 할 의무를 진다.

 

병오년에는 적어도 이 한 가지 원칙만은 분명해야 한다. 누가 우리 편인가를 묻는 정치가 아니라, 무엇이 공동체를 살리는가를 묻는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허니문 이후의 정치는 냉정하다. 그러나 바로 그 냉정함 속에서, 진짜 실력은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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