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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한항공 부기장 출신 이채문 씨가 신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공익제보자 대한민국을 고발한다>를 통해 자신의 삶과 한국 항공 산업, 그리고 사법 시스템의 이면을 정면으로 고발했다.
■ 대한항공 입사에서 내부 고발까지
이채문 씨는 1987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는 입사 초기부터 조종사 자격 취득 과정이 항공법과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회사는 사업용·계기비행 자격을 요구했지만, 정작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비행 교육이나 시간은 제공하지 않았고, 그 결과 동기들 상당수가 비행 경력과 계기비행 시간을 조작해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뒤, 승진에서 배제되고 결국 해고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군 비행시간 2,400시간 이상, 계기비행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11년 넘게 기장 승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대목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실력보다 조직 논리’의 상징적 사례로 제시된다.
■ 공익제보, 그리고 형사처벌
해고 이후 이채문 씨는 “대한항공이 무자격 조종사를 운항에 투입해 왔다”는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보호가 아니라 형사 고소였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고 서술한다.
책은 이후 이어진 재판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다. 변호사의 돌연한 사임, 재판부 판단의 급격한 변화, 입증 책임이 뒤바뀐 심리 과정 등은 한 개인이 거대 기업과 사법 시스템 앞에서 어떻게 고립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2020년 대법원이 “허위사실 적시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목은, 저자에게 이 싸움이 단순한 개인적 억울함이 아님을 확인해준 결정적 계기로 등장한다.
■ 군 생활과 ‘원칙주의자’의 형성
책 전반부는 저자의 개인사로 독자를 데려간다. 울산 울주군 농촌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 육군3사관학교 1기로 입학해 격동의 안보 상황 속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뇌물과 청탁이 관행처럼 오가던 현장에서 이를 거부하며 “악질 소위”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일화는, 이후 대한항공과의 충돌을 예고하는 성격의 장면으로 읽힌다.
군 복무 중 DMZ 감시 비행 경험을 통해 과장된 안보 담론과 구조적 공포 조성에 의문을 품게 된 대목은, 저자의 시선이 단순한 조직 내부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 전반으로 확장되는 계기다. 이 경험은 훗날 항공 안전 문제를 ‘개인의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결과’로 바라보게 만든 배경으로 제시된다.
■ 운항 현장과 안전의 실종
이채문 씨는 국내선·국제선 운항 경험을 통해 당시 대한항공의 운항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하루 수차례 이착륙, 주 6일 근무, 피로 누적 상태에서 이어지는 비행 스케줄, 그리고 기장의 음주 강요와 졸음 운항까지. 그의 증언은 “안전보다 스케줄과 서열이 우선이던 문화”를 드러낸다.
국제선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거리 연속 운항과 인력 부족 속에서 조종사들은 혹사당했고, 문제 제기는 곧 인사 불이익으로 돌아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발생한 항공 사고들은 우연이 아니라, 이미 예정된 결과였다는 것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 산업–관료–사법의 결합
책의 후반부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구조적 고발로 확장된다. 저자는 대한항공과 건교부(현 국토부) 간의 유착 의혹, 무자격 심사관 운용, 고령 기장의 국제선 불법 투입, 비행시간 조작과 감독 부실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한다. 이는 항공 산업의 안전 관리가 어떻게 형식화되고 왜곡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특히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사면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해외 공항과 도시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간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지 못한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절박한 선택으로 그려진다. ICAO의 공식 회신은, 저자의 문제 제기가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제시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공익제보자 대한민국을 고발한다』는 영웅담도, 단순한 피해자 서사도 아니다. 이 책은 한 공익제보자가 20년 넘게 겪어야 했던 배제, 침묵, 장기 재판의 시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저자는 묻는다.
공익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왜 보호받지 못했는가!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해 작동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의 현재진행형 보고서다.
■ 저자의 말
나는 평생 하늘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육군 항공대에서 20여 년, 그리고 대한항공에서 다시 11년 3개월. 조종사로서 비행은 내 직업이자 삶의 전부였다. 규정을 지키고, 절차를 따르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그것이 조종사의 기본이자 양심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대한항공에 들어간 이후, 나는 믿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조종사들이 비행에 투입되고 있었고, 일부는 입사 후 5~6년 만에 기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나는 1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기장 승진 기회를 받지 못했다. 이유를 묻고, 문제를 제기하자 돌아온 것은 침묵과 배제, 그리고 결국 부당해고였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침묵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실을 말하고 모든 것을 감수할 것인가. 조종사로서의 양심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무자격 조종사 사용이라는 내부 비리를 1인 시위로 고발했다. 그 순간부터 싸움은 시작됐다.
대한항공은 허위사실 유포를 이유로 나를 고소했다. 증인도, 증거도, 물증도 있었지만, 결과는 구속이었다. 법무법인 광장과의 공모 속에 나는 범죄자가 되었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에도 일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이 싸움을 국내에만 가둬두지 않겠다고.
나는 미국과 캐나다 몬트리올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영국 런던의 국제사면위원회를 찾아가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개인의 억울함이 아니라, 항공 안전과 공공의 생명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재심이 열렸다.
대법원은 분명히 밝혔다.
내가 외쳤던 “30년간 무자격 조종사를 사용해 온갖 사고를 내왔다”는 주장은 허위로 단정할 수 없으며, 명예훼손의 범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원심 판결은 사실을 오인했고,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법 앞에서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당해고로 잃은 시간, 26년간 이어진 소송과 투쟁, 그 과정에서 소모된 비용과 삶의 균열은 단순한 금전으로 환산될 수 없었다. 구속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시된 3억 원의 화해안도 나는 거절했다. 이것은 개인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익제보자의 존엄과 기준을 세우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의 회고록이 아니다.
침묵을 강요받은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었고, 다시 공익제보자로 서기까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은 왜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하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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