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기자인가, 시인인가, 목회자•선교사인가

유호근 남아공 특파원 | 기사입력 2026/01/15 [15:20]

[칼럼] 나는 기자인가, 시인인가, 목회자•선교사인가

유호근 남아공 특파원 | 입력 : 2026/01/15 [15:20]

[신문고뉴스] 유호근 선교사 =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뉴스의 기자입니까, 시인입니까? 아니면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요, 선교사입니까?”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솔직히 난감해진다. 더구나 그 질문이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올 때는, 마음 한편이 오래 묵은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사람일까.

 

▲ 사진 = 유호근     ©신문고뉴스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26년이 넘었다. 척박한 자연환경, 불안한 치안, 늘 부족한 재정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

 

현지인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 교육 사역을 이어왔으며, 어린이 유치원과 한글 학교를 운영했다. 신학교 사역과 더불어 현지인 목회자들을 위한 재충전 교육도 멈추지 않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사명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묻는다.

 “왜 시를 쓰느냐”고,

“왜 기사를 쓰느냐”고,

“목회자•선교사라면 목회•선교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을 통해 오히려 현대 사회가 사람을 얼마나 쉽게 하나의 틀에 가두려 하는지를 본다. 기자는 기사만 써야 하고, 시인은 시만 써야 하며, 목회자는 강단에만 서야 한다는 단순한 분류 말이다.

 

선교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말씀을 전하다가도, 아이들의 교사가 되고, 학교를 세우다가도, 공동체의 아픔을 기록하는 증인이 된다.

 

▲ 사진 = 유호근     ©신문고뉴스

 

기사는 역사의 기록이 되고, 시는 고단한 영혼의 숨이 되며, 목회는 그 모든 것을 품는 삶의 방식이 된다.

 

내가 쓰는 시는 도피가 아니라 기도이고, 내가 쓰는 기사는 직업이 아니라 증언이며, 내가 감당하는 목회와 선교는 직함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기자이면서 시인이고, 시인이면서 목회자이며, 목회자이면서 선교사다. 정확히 말하면, 사명을 따라 살아온 한 사람의 인간이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아이들의 웃음과 목회자•선교사들의 눈물 사이에서, 말씀과 글, 기도와 노동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온 한 사람이다.

 

▲ 사진 = 유호근     ©신문고뉴스

 

정체성은 명함에 적히는 직함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로 증명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것으로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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