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국무총리, 별세…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회복 못하고 운명

조현진 기자 | 기사입력 2026/01/25 [17:53]

이해찬 전 국무총리, 별세…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회복 못하고 운명

조현진 기자 | 입력 : 2026/01/25 [17:53]

[신문고뉴스] 조현진 기자 = 이해찬 전 국무총리(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가 베트남 출장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70년대 서울대 운동권 출심으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서 시작해 7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여당 대표를 거치며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을 이끌어온 정치 원로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정치권은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 이해찬 전 총리의 위중 소식에 범여권이 회복을 기도하고 있다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을 방문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 숨을 거뒀다. 유가족은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다.

 

고인은 1970년대 박정희 유신체제에 맞선 학생운동으로 정치 여정을 시작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는 등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민주화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외쳤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현실 정치에 뛰어든 그는 1988년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 관악갑에 출마 당선된 뒤 지역구를 옮겨 가면서도 ‘무패의 7선 의원’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민주 진영의 핵심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청문회에서의 집요한 추궁은 ‘면도날’이라는 별명을 낳았고, 노동 입법과 개혁 정책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돼 교육 개혁을 주도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돼 ‘실세 총리’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과의 두터운 신뢰 속에 행정수도 이전, 국정 운영 조율 등 굵직한 과제를 이끌었지만, 이른바 ‘3·1절 골프 파문’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정치적 시련도 겪었다.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강한 여당’ 구축을 주도했고, 코로나19 국면 속 21대 총선 압승을 이끌며 정점에 섰다. 이른바 ‘민주 진영 20년 집권론’은 그의 정치적 비전이 집약된 상징적 발언으로 남았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 역시 깊다. 고인은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며 대선 국면과 집권 이후에도 원로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된 것도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위독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이 정무특보를 급파하는 등 각별한 예우를 보인 것도 이러한 관계를 방증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정부까지, 민주당 출신 네 명의 대통령 모두와 굵직한 인연을 맺으며 ‘키맨’으로 역할해온 이해찬. 강단 있는 화법과 타협하지 않는 정치 스타일은 호불호를 낳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진 50년을 온몸으로 관통해온 인물이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민주화 투사에서 국정 운영의 중심까지, 시대의 가장 거친 현장에서 늘 전면에 섰던 정치인 이해찬의 생은 그렇게 역사의 한 장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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