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이 시대의 포청천, 이진관 판사...그의 판결이 남긴 것

심춘보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1/26 [16:09]

[논설위원 칼럼] 이 시대의 포청천, 이진관 판사...그의 판결이 남긴 것

심춘보 논설위원 | 입력 : 2026/01/26 [16:09]

 

▲ 이진관 부장판사     

 

[신문고뉴스] 심춘보 논설위원 = 권력(權力)의 '권'은 저울추(權)를 의미합니다. 권력이란 본디 한쪽으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맞추는 엄중한 도구라는 뜻이라고 이해합니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가운데를 제대로 잡으면 권이 필요 없다"라고 하셨으나, 사욕과 독선이 들끓는 현실에서 그 중용의 도를 지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균형의 요체는 공평과 공정이며, 이는 올바른 권력을 이루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법부를 논할 때 공정의 상징으로 판관 포청천을 소환하곤 합니다.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추상과도 같았던 판결로 공정함을 증명했던 그에게는 세 개의 작두가 있었습니다. 황실 종친을 단죄하던 용작두, 고위 관료의 목을 치던 호작두, 그리고 민초들의 죄를 엄히 다스리던 개작두가 그것입니다. 법 앞에 성역이 없음을 몸소 실천한 그의 판결은 시대를 넘어 정의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법부에서도 이 '작두'의 서슬 퍼런 기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진관 판사가 한덕수 총리에게 내린 판결은 권력의 무게에 굴하지 않는 현대판 작두형의 부활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박성재 전 장관의 재판이 시작됩니다. 공교롭게도 재판장은 포청천을 연상케 하는 이진관 판사입니다.

 

이에 박 전 장관은 한덕수 선고를 접하고 아마 걷잡을 수 없이 떨고 있을 겁니다. 꿈속에 작두가 떠다니는 것은 아닌가 모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영합해온 이들에게, 원칙을 고수하는 판관의 존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압박이자 공포일 것입니다.

 

현재의 사법부는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아래서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귀연이라는 희대의 판사는 법정을 희화화했습니다.

 

이처럼 수뇌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이진관 판사와 같은 강직한 판관의 등장은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습니다. 그가 보여준 법리와 양심에 근거한 결기는 국민에게 포청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 사람의 올곧은 판관이 사법부 전체의 중심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진관 판사가 보여준 포청천의 추상같은 정의에 박수를 칩니다.

 

비록 그의 이마에는 포청천의 상징인 반달 문양이 없을지언정, 그의 판결문에는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정의의 달빛이 서려 있기를 여전히 기대합니다. 조희대가 망쳐놓은 사법부의 저울추가 다시금 공정의 수평을 찾는 날,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격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심에 이진관 판사가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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