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뉴스] 심춘보 논설위원 = 역사를 소환하는 것을 두고 진부한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역사는 결코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을 비추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자 교훈이다.
《노자(老子)》는 일찍이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상으로 ‘유지(有之)’를 꼽았다. 백성이 지도자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스리는 이가 최고의 리더라는 뜻이다.
최근 정청래 대표의 행보를 보며 이 고사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노자가 말한 이상적 리더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은 흡사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배우를 연상케 한다. 집권당의 대표라는 막중한 자리가 수시로 당내 분란을 자초하는 발원지가 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단연 ‘정무적 감각’이다. 그러나 권력의 단맛은 종종 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정무적 감각은 외줄 위 광대가 손에 쥔 부채와 같다. 화려한 재담(존재감 부각)도 좋지만, 부채가 흔들리면 광대는 줄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정 대표는 부채를 휘둘러 관객의 시선을 끄는 데만 급급해, 정작 자신의 발밑이 무너지는 것을 잊은 듯하다. 최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로 당내가 시끄러운 본질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론이 들끓고 반대 목소리가 거셈에도 요지부동인 모습은 소신을 넘어선 고집의 발로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절차를 무시한 그의 오만함이다. 정 대표는 합당 제안을 먼저 던져놓고 뒤늦게 당원의 뜻을 묻겠다고 한다. 이는 연역법이나 귀납법의 논리적 순서를 따질 문제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철학적 논쟁거리도 아니다. 당원의 뜻을 먼저 묻고 제안하는 것과, 답을 정해놓고 사후 추인을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가 민주적 절차라면, 후자는 오만의 극치다. 야당이 지리멸렬하다고 해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본인과 당에 변고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욕심을 배제한 정무 감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이토록 민감한 사안은 당원의 뜻을 먼저 살피는 것에서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불필요한 분란을 차단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깃발을 들고 당원들에게 따라오라 강요하는 것은 민주 정당의 지도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지금 시대가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던 시절은 아니지 않는가?
오늘도 늦지 않았다. 지도자의 자리는 자신의 빛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빛을 모으는 자리다. 특히 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용기라면 철수하는 것은 지혜하고 했다. 정 대표는 이제라도 호흡을 가다듬고 긴 호흡으로 정치를 조망하기를 기대한다.
'순천자존 역천자망' 이라고 했다. 흐름을 역행하려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지 말기 바란다.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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