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고뉴스] 조찬옥 칼럼 = 주말이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전광훈 교회 세력들의 극우 집회에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하는 장면은 단순한 이변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세대 이념의 공식이 근본부터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때 상식처럼 통하던 말이 있었다.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고, 나이 들어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이 격언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낡은 구호가 되었다. 이 변화는 성향 변화라기보다 사회 구조와 정치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젊은층이 왜 진보였나
과거 젊은 세대가 진보 성향을 보였던 이유는 도덕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고용 안정, 경제 안정, 주거 사다리, 미래에 대한 낙관이라는 전제가 존재했다. 일자리는 지금보다 안정적이었고 주택은 언제든 마련할 수 있었으며 노력과 보상이 연결된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존재했다.
진보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제도 개혁과 연대, 점진적 변화가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했다. 이 조건 속에서 진보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제가 무너진 사회에서 점진적 개혁과 연대, 제도 개선을 말하는 진보는 너무 느리고 멀며 추상적으로만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된다는 인식은 이미 획득한 자산과 지위를 지키려는 심리, 그리고 제도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흐름은 성장 사회라는 조건 위에서만 성립되었다.
문제는 청년들이 접하는 보수의 모습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이다. 책임, 질서, 제도, 안정이라는 전통적 보수의 언어는 약화되고 그 자리를 반정부 정서, 음모론, 종교, 애국을 앞세운 감정 동원이 대신하고 있다.
현재 청년 세대는 성장 사회가 아닌 정체·불안 사회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제 미래는 희망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다른 이름이 됐다.
특히 젊은 남성층에서 군 복무에 대한 보상 부족, 취업 경쟁 실패, 연애 관계 좌절 등 복합적인 실패 경험이 정체성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취업은 불안정하고 주거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이 됐으며 노력과 보상이 연결된다는 사회적 신뢰가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미래를 전제로 한 정치 자체가 설득력을 잃었다.
이 복합적 실패 경험이 정체성 위기로 이어지고, 극우 담론은 “세상이 너를 속였기 때문”이라며 분노의 출구를 제공했다.
젊은 세대의 극우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방치한 결과
요즘 젊은 세대가 노골적인 극우 성향을 드러내는 현상은 더 이상 일시적 일탈이나 온라인 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사회가 젊은 세대를 방치했고 정치는 그 공백을 극우 선동 세력에게 통째로 내줬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실패하도록 내몰렸다. 노력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은 무너졌고 집값, 고용,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미 상실했다. 그러나 국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진보가 설득에 실패한 방식도 결정적이었다. 이 지점에서 불편하지만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진보 역시 청년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왜 구조 개혁이 필요한지, 왜 연대가 개인의 손해가 아닌지, 왜 단기 분노보다 장기 제도가 중요한지를 말이다.
이 복잡한 설명을 건너뛰고 도덕적 우위만 강조하는 순간, 청년에게 진보는 현실을 모르는 훈계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진보가 강조해 온 장기 개혁, 구조 개선, 사회적 연대는 현재의 고통을 겪는 청년에게 너무 느리고 추상적인 언어로 인식되기 쉬웠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사람들은 즉각적인 해답과 명확한 책임 대상을 찾게 된다. 미래가 봉쇄된 세대에게 진보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공허한 수사가 되었다.
정치의 무능이 ‘가짜 보수’를 청년 앞에 내놓았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은 내일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주거, 노동, 교육 어느 하나도 개선의 경로를 제시받지 못한 채 실패의 책임만 개인에게 전가되었다. 미래가 봉쇄된 사회에서는 진보는 설득력을 잃고 분노는 즉각적인 배출구를 찾게 된다.
책임과 절제를 말해야 할 보수는 사라지고 음모론, 혐오, 반지성만 남았다. 과거의 보수는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있었다. 질서, 책임, 제도의 안정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에서 청년들이 접하는 보수는 다르다. 한국 젊은층의 극우화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 무책임한 정치, 그리고 분노를 수익화하는 알고리즘이 결합해 만든 시대의 병리적 현상이다.
정책도, 책임도, 국가 운영 능력도 없다. 대신 있는 것이라면 음모론, 혐오, 반지성, 종교, 애국운동, 감정 선동뿐이다.
전광훈 집회와 같은 극우 집단은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분노의 방향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 분노가 향해야 할 대상은 여성도, 이주민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분노의 방향을 잘못 틀어주는 순간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공격하게 된다. 이것이 극우 선동의 본질이며 사회적 자해 행위다.
알고리즘은 진보적 사유가 자랄 시간을 빼앗았다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도 중요한 변수다. 숏폼 알고리즘은 분노, 혐오, 음모론을 가장 잘 확산시킨다. 극우 유튜버들은 “진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언론은 모두 가짜 뉴스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분노와 혐오, 음모론은 조회 수와 광고 수익으로 환산되며 산업화되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언어를 도둑질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진보는 복잡한 사고와 토론을 요구하지만 플랫폼은 분노와 단정, 적대가 더 빨리 퍼진다. 극우 콘텐츠는 짧고 강하며 세계를 흑백으로 나눈다.
토론은 배신, 타협은 굴복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 이렇게 사고의 근육이 퇴화한 공간에서 ‘젊음=개방성’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론
요즘 ‘젊음은 진보, 나이 들면 보수’라는 격언이 실종된 것은 젊음이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젊음을 극단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진보는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고 보수는 책임을 포기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을 훈계하는 도덕론이 아니라 미래를 다시 열어주는 정치, 공정을 구조로 복원하는 정책, 분노를 클릭으로 바꾸는 산업에 대한 책임 규제다.
젊은 세대의 극우화는 청년의 타락이 아니라 사회의 실패이며 국가의 직무유기다. 이 경고를 외면한다면 그 대가는 민주주의 전체가 치르게 된다.
#청년세대 #정치변화 #세대이념 #한국사회 #민주주의위기 #극우정치 #알고리즘정치 #청년문제 #사회구조 #정치개혁 <저작권자 ⓒ 신문고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