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근 詩線] 사막에 길이 있다 (There Is a Road in the Desert)

유호근 남아공 선교사 | 기사입력 2026/03/07 [18:04]

[유호근 詩線] 사막에 길이 있다 (There Is a Road in the Desert)

유호근 남아공 선교사 | 입력 : 2026/03/07 [18:04]

■ 사막에 길이 있다

 

 ▪︎ 작시: 유호근(예종)

 

사막에 길이 있다.

지도에는 없고

발자국에도 남지 않는 길.

 

모래는 매 순간

자신을 다시 지우며

통과한 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도착보다

견딤이 먼저 길이 된다.

 

태양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내려와

모든 허위를 태운다.

그 아래서

인간은 이름을 벗고

숨으로만 존재한다.

 

오아시스는 약속이 아니라

환상과 진실이

겹쳐지는 지점,

믿음이 없으면

물조차 모래가 되는 곳이다.

 

밤이 오면

사막은 하늘을 빌려

별로 길을 낸다.

빛은 방향을 말하지 않고

지속을 허락한다.

 

이곳에서 길은

앞에 있지 않다.

뒤에도 없다.

오직

한 걸음과 다음 한 걸음 사이,

포기하지 않은 호흡 속에 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왜 사막에 길이 있는가.

그러나 사막은 대답하지 않는다.

길은 설명이 아니라

통과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알게 된다.

사막이 길을 숨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너무 쉽게 생각해 왔음을.

 

사막에 길이 있다.

살아 있는 자에게만 보이고,

끝까지 남아 있는 자에게만

완성되는 길이다.

 

그 길은

도착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을 바꾸어

보내줄 뿐이다.

 

■ There Is a Road in the Desert

 ▪︎ Poem by Yoo Ho-Geun (Yejong)

 

There is a road in the desert—

not on any map,

not even in footprints.

 

The sand erases itself endlessly,

remembering no one who passes.

Here, endurance

becomes the road

before arrival ever does.

 

The sun asks no questions.

It descends in silence,

burning away all pretense.

Beneath it,

a human sheds their name

and exists only as breath.

 

An oasis is not a promise

but the overlap of mirage and truth,

a place where, without faith,

even water

turns back into sand.

 

When night arrives,

the desert borrows the sky

and lays a road of stars.

Light offers no directions—

it grants only the right

to continue.

 

Here, the road is not ahead.

Nor is it behind.

It lives solely

between one step and the next,

within a breath

that refuses to surrender.

 

Many ask

why there should be a road

in the desert.

But the desert does not answer.

A road is not an explanation—

it is a passage.

 

At last, one understands:

the desert did not hide the road;

we simply believed

roads were meant to be easy.

 

There is a road in the desert,

visible only to the living,

completed only

by those who remain.

 

That road

never arrives.

It merely returns a person—

changed.

 

▲ 남아공 케이프타운 윗쪽 국가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Namib Desert) 명칭의 의미 : 원주민인 나마(Nama)족의 언어로 '아무것도 없는 곳' 또는 '광대한 장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작가의 노트

 — 사막에 길이 있다

 

 이 시는 “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흔히 길을 지도 위의 선으로, 도착을 보장하는 통로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막은 그 모든 전제를 무너뜨린다. 사막에서는 표식이 남지 않고, 방향은 고정되지 않으며, 기억조차 모래처럼 흩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막을 건넌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길의 본질을 다시 묻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사막은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근원적인 상태로 환원되는 장소이다. 태양 아래에서 이름과 직위, 성취는 의미를 잃고, 인간은 오직 호흡과 걸음으로 존재한다. 길은 외부에 주어지지 않으며, 인내와 지속이라는 내부의 태도를 통해 비로소 생성된다. 그래서 이 시에서 길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에 가깝다.

 

 나는 오아시스를 구원의 확정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것은 믿음이 없으면 실재하지 않는 지점이며, 환상과 진실이 겹쳐 있는 불안정한 경계다. 이는 인간이 기대하는 기적보다, 기적을 견디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형식적으로는 극도의 절제를 지향했다. 사막이라는 공간이 요구하는 언어는 설명이 아니라 침묵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장은 짧고 단정하게, 여백은 넓게 남겨 두었다. 독자가 이 시를 읽으며 의미를 ‘이해’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속도를 점검하기를 바랐다.

 

 이 시는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남아 있는 자에게, 길은 언제나 존재했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사막은 길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쉽게 길을 생각해 왔을 뿐이다.

 

 

 — 유호근(예종)

 

 ■ 신학적·철학적·문학적 종합 비평

— 「사막에 길이 있다」를 중심으로

 

Ⅰ. 신학적 비평: 결핍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은총의 역설

 

 이 시에서 ‘사막’은 성서적 전통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험과 계시의 장소를 환기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막을 단순한 고난의 은유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막은 은총이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하나님은 이 시에서 말하지 않으며, 기적은 선언되지 않는다. 대신 태양과 침묵, 견딤이라는 자연의 질서를 통해 계시는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도착보다 견딤이 먼저 길이 된다”는 진술은 출애굽기의 광야 신학을 연상시키면서도, 목적지 중심의 구원 서사를 해체한다. 이 시에서 구원은 ‘도달’이 아니라 ‘변형’의 사건이며, 길은 종착이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빚는 과정이다. 이는 십자가 신학의 핵심인 약함 속에서 완성되는 능력의 논리를 자연의 언어로 재서술한 것으로 읽힌다.

 

 오아시스를 “약속이 아니라 환상과 진실이 겹쳐지는 지점”으로 제시한 대목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기적을 소유하거나 증명하려는 신앙 태도를 경계하며,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은총조차 실재하지 않는다는 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사막에서 길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는 존재로 암시된다.

 

▲ 남아공 케이프타운 윗쪽 국가 나미비아 🇳🇦 사막     

 

Ⅱ. 철학적 비평: 존재를 드러내는 극한의 공간

 

 철학적으로 사막은 이 시에서 존재의 불필요한 층위가 제거된 장소로 기능한다. 이름, 기억, 성취가 모두 모래처럼 지워지는 공간에서 인간은 오직 ‘살아 있음’ 자체로만 존재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비본질적 세계로부터의 이탈, 즉 존재 물음의 원초적 상황을 연상시킨다.

 

 “길은 앞에도 뒤에도 없고, 한 걸음과 다음 한 걸음 사이에 있다”는 인식은 시간에 대한 선형적 이해를 전복한다. 미래의 도착점이나 과거의 성취는 이곳에서 무력화되며, 현재의 지속만이 의미를 획득한다. 이로써 길은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실존적 행위로 전환된다.

 

 또한 이 시는 인간의 인식 욕망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수행한다. 길을 설명하거나 지도에 고정하려는 시도는 사막에서 무의미해진다. “길은 설명이 아니라 통과”라는 문장은 언어의 한계를 자각한 철학적 선언으로, 사유보다 먼저 와야 할 것은 체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Ⅲ. 문학적 비평: 침묵과 절제의 미학

 

 문학적으로 이 작품은 극도의 절제 속에서 높은 밀도를 확보한다. 문장은 짧고 단정하며, 감정의 고조나 수사적 과잉을 철저히 배제한다. 이는 사막이라는 공간이 요구하는 미학적 태도와 정확히 부합한다. 독자는 설명을 통해 설득당하기보다,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도록 요청받는다.

 

 자연 이미지는 상징으로 고정되지 않고 유동한다. 태양은 심판자가 아니라 허위를 태우는 존재이며, 별은 방향을 지시하지 않고 지속을 허락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비지시성은 독자의 해석을 열어 두며, 작품을 특정 이념이나 교리로 환원하는 것을 방지한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그 길은 도착하지 않는다 / 다만 사람을 바꾸어 보내줄 뿐이다”라는 결말은 이 시의 미학적·사유적 성취를 응축한다. 이는 서사의 종결이 아니라 변형의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세계 문학이 지향하는 개방적 결말의 전형을 보여준다.

 

 

Ⅳ. 종합 평가

 

「사막에 길이 있다」는 길과 구원, 존재와 희망에 대한 오래된 은유를 새롭게 갱신한 작품이다. 이 시는 독자에게 위로를 제공하지 않으며,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의 사막을 통과하도록 요구한다. 그 요구는 엄격하지만 정직하며,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길을 외부 조건이 아닌 인간의 태도로 환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길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도, 신이 일방적으로 내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끝까지 남아 있는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통과의 흔적이다.

 

 결국 이 시는 말한다. 사막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너무 쉽게 믿어 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 이후에야 비로소, 사막에는 언제나 길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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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면쉬었다가자 2026/04/15 [10:10] 수정 | 삭제
  • 잘 감상했습니다. 훌륭한 언어의 행렬이 아름다운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실어나르듯 잘 조탁되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