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옥 칼럼] 감옥에서 특권 요구하는 재소자 윤석열

조찬옥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 기사입력 2026/03/20 [14:54]

[조찬옥 칼럼] 감옥에서 특권 요구하는 재소자 윤석열

조찬옥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 입력 : 2026/03/20 [14:54]

[신문고뉴스] 조찬옥 칼럼 = 법의 심판대 앞에 서는 순간 모든 권력은 끝난다. 구치소 문을 들어서는 순간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기업인이든 그곳에서는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통한다. 수용자다. 적어도 그래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감옥 안에서도 자신이 아직 대통령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구치소에 수감된 그는 각종 논란을 떠나 재소자가 지켜야 할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그 권력이 사라진 공간에서도 여전히 특혜와 예외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 윤석열 대통령이 판결문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구치소와 교도소는 본질적으로 불편한 공간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대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만 보장받는 곳이며, 식사·의류·위생 정도가 그 범위다. 그 이상은 권리가 아니라 제한된 편의일 뿐이다.

 

재소자에게 적용되는 규칙은 동일하다.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규율을 따른다. 이것이 법치이며 평등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법치주의의 근간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끊임없이 요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치소 내 처우와 인간적 대우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수용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범죄 여부와 관계없이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되지만, 사소한 편의와 특혜를 권리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이러한 간극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밖에서는 권력의 정점에서 조직을 지휘하고 법을 해석하던 위치에 있었더라도, 구치소 안에서는 동일한 번호를 가진 수용자일 뿐이다. 문제는 그 ‘동일함’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한다.

 

누구나 불편함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달라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구치소에서는 교도관을 존중해야 하며, 교도관은 국가를 대신해 질서를 집행하는 공직자다.

 

그럼에도 반복적인 요구와 사소한 불만을 확대하며 마치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할 존재처럼 행동한다면, 그 순간 감옥의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재소자 특혜 논란은 대개 일반 수용자와 다른 과도한 제공, 법 규정을 넘어선 면회·외출·의료 특혜, 특정 인물에게만 적용되는 비공식적 배려 등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익숙해진 특권 의식의 연장선일 수 있다. 구치소는 단순히 범죄자를 가두는 공간이 아니라 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현장이다. 말로만 외치던 법치주의가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치소의 규칙은 단순한 생활 지침이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감옥의 질서는 거창하지 않다. 지켜야 할 사람은 지키고, 집행할 공직자는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조찬옥

 

#법치주의 #구치소 #재소자 #평등원칙 #사법질서 #윤석열  #특혜논란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