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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향년 88세로 사망했다. 그는 최근 건강이 악화해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전날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독재정권의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하던 인물, 누군가의 죽음은 대개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정리되고, 때로는 용서와 연민의 언어로 봉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앞에서는 그 흔한 애도의 문장조차 쉽게 꺼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도 살아 있었느냐”는 냉소와 분노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악독한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인물이다.
특히 김근태 고문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되며 ‘고문 기술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들과 맞닿아 있다.
그의 삶은 한 개인의 일탈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전기 고문과 폭력,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자백’은 단순한 수사 기법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도구였다. 그 체제는 법의 이름을 빌렸지만, 실상은 법을 가장한 폭력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단순한 부고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을 다시 끌어올린다. 우리는 과연 과거를 제대로 청산했는가.
그는 도피 끝에 자수했고, 법의 심판을 받았으며, 출소 이후에는 목사가 되어 참회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의 사과가 충분했는지, 아니 진정성이 있었는지에 대해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생전 “그것은 애국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또 한 번 상처를 남겼다.
참회와 정당화 사이를 오간 그의 태도는, 개인의 회한을 넘어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두고는 인간적인 연민조차 거부한다. “사람다워야 사람 대우를 받는다”는 냉혹한 평가가 등장하는 이유다. 그것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던 권력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죽음이 현재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의 폭력에 대한 단죄와 성찰이 충분하지 않을 때, 그것은 언제든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윤어게인 세력의 '난동성' 행보들, 쿠데타나 반란을 '구국'으로 치환하려는 자칭 우파들의 행보, 이들의 권력 다툼과 제도적 갈등 역시, 그 기저에는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를 잊는 사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근안이라는 이름이 불편하게 남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물음표에 가깝다. 우리는 그 시대를 정말 끝냈는가, 아니면 아직도 그 잔재 속에 살고 있는가.
죽음은 모든 것을 덮지 않는다. 어떤 죽음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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