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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뉴스] 임두만 편집위원장 =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상대팀인 광주일고와 경기 도중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스벅가야지, 탱크데이'라는 응원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친 일로 중징계를 받았다. 교육청은 해당 고교에게 6개월 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후 이준석 한동훈 장동혁 등 보수 정치권 인사들은 징계 수위가 과도하다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들을 포함, 보수 진영 본산임을 자처하는 국민의힘도 "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됐지만 징계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진영논리에 메몰된 매우 정치적이며 스포츠가 왜 혐오와 차별에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스포츠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경쟁은 허용된다. 거친 몸싸움도, 치열한 승부도 경기의 일부다. 그러나 모든 스포츠 경기는 시작 전 상대를 존중하는 상테에서 시작한다.
양팀 선수들은 도열한 상태에서 마주보고 인사하며 상대국 국가 또는 상대학교의 교가를 연주를 들으며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기 중 상대의 인격을 모욕하거나 인종·민족·지역·역사적 비극을 비하하는 행위는 엄격히 제재된다.
국제 스포츠계는 이 원칙을 수십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손흥민은 여러 차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됐고, 가해 선수와 관중은 소속 리그와 구단으로부터 징계와 비난을 받았다.
최근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멕시코와 한국 경기 도중 멕시코 관중이 한국 선수와 응원단을 향해 이른바 '눈 찢기' 행동을 하면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멕시코 축구협회는 이 관중의 경기장 출입을 영구 통제했으며 국제언론은 이를 크게 보도했다.
유럽 축구에서는 흑인 선수를 향한 원숭이 흉내나 바나나 투척만으로도 관중 퇴장과 경기장 폐쇄, 벌금, 승점 감점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미국 프로스포츠 역시 성차별과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선수든 관중이든 예외 없이 징계한다. 이처럼 인종이나 민족을 조롱하는 행위는 오늘날 스포츠에서 결코 '응원 문화'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스포츠는 승패보다 공정성과 존중을 우선하는 가치 위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일부 정치권은 "학생이니까 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만약 같은 나이대의 학생들이 흑인 선수를 향해 피부색을 조롱했다면 "학생이니 선처하자"고 말했을까. 또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구호를 외쳤다면. 특정 종교를 모욕했다면. 외국인을 향해 인종차별적 언행을 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징계가 과하다"는 주장이 나왔을 것인가.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행위에 대해서만 유독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5·18은 단순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사건이며, 희생자와 유공자에 대한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도 존재한다. 이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행위는 단순한 '장난'이나 '응원'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 민주화의 역사를 조롱하는 행위라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학생들이 '스벅가야지' 구호만이 아니라 '탱크데이'를 함께 외쳤음에도 언론들은 이례적으로 '스벅가야지'만 조명하고, 정치인들은 이를 인용, 단순히 '스타벅스'라는 커피를 사먹겠다는 것이 그리 나쁜가?라는 논리를 내놓는다.
즉 의도적으로 '탱크데이'를 생략하면서 비하 내용을 축소하고, 이에 정치인들은 "잘못은 했지만 크게 처벌받을 일은 아니다."를 주장하면서 이를 옹호하는 세력들에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징계는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받는 것이 교육인가. 아니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교육인가.
교육은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배우게 하는 과정이다. 이번 징계가 학생들의 선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한 것도 아니다.
6개월 출전 정지는 자신들의 행동이 스포츠 정신과 학교 공동체의 가치에 얼마나 어긋났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위한 교육적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이 앞장서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육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기준마저 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인은 국민을 통합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혐오 표현은 진영을 떠나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유럽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멕시코 관중이 한국인을 향해 하면 용납할 수 없고, 학생들이니까 5.18을 비하해도 용서한다면...내 편이 하면 실수이고, 남의 편이 하면 범죄라는 이중잣대가 반복된다면 우리 사회의 공정은 설 자리를 잃는다.
스포츠는 승부를 겨루는 곳이지 상대의 역사와 아픔을 조롱하는 무대가 아니다. 혐오를 응원으로 포장하는 순간 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폭력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정치인의 입장이 아니라 학생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책임을 배우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며 교육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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