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핵심’ 정호용 사망…5·18단체 “죽었다고 학살 책임 끝난 것 아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전두환·노태우 등 이어 94세로 사망...5·18서울기념사업회 “끝내 진실 고백·사과 없이 떠나…역사적 책임 남아”

이재상 기자 | 기사입력 2026/09/14 [00:09]

‘신군부 핵심’ 정호용 사망…5·18단체 “죽었다고 학살 책임 끝난 것 아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전두환·노태우 등 이어 94세로 사망...5·18서울기념사업회 “끝내 진실 고백·사과 없이 떠나…역사적 책임 남아”

이재상 기자 | 입력 : 2026/09/14 [00:09]

[신문고뉴스] 이재상 기자 = 12·12 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핵심 인사였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13일 94세로 사망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희성·황영시 등에 이어 정 전 장관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이른바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5·18 당시 집단발포 명령자를 비롯한 핵심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았다. 특히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 전 장관이 생전 5·18 진압 책임을 인정하거나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사망하면서 신군부 핵심 당사자의 직접 증언을 통해 진실에 접근할 기회도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 김종배 농성단 단장이 정호용 씨 잡 앞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5.18농성단 제공

 

(사)5·18서울기념사업회는 이날 정 전 장관 사망 직후 입장문을 내고 “죽었다고 5·18 학살의 책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적 책임 규명과 미완의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까지 사과 없었던 정호용…신군부 핵심 5인 모두 사망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정 전 장관은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기다.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 인물이었던 그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올랐으며 1980년 5·18 당시 특전사 병력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다.

 

정호용은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사법부는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정 전 장관의 5·18 당시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 관여 등을 인정했고, 그는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생전에는 자신이 5·18의 학살 책임자라는 주장을 부인했고, 직접적인 발포명령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5·18서울기념사업회는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을 비롯한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생전에 5·18의 진실을 제대로 고백하거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단체는 “신군부 5적 가운데 5·18의 진실에 대해 고백하거나 인정하고 사과한 자는 하나도 없다”며 정 전 장관의 사망으로 법적 책임과 별개인 역사적·도덕적 책임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46년 지나도록 ‘누가 발포 명령했나’ 미완의 질문

 

정 전 장관의 사망이 더욱 주목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진상조사를 거쳤음에도 5·18의 핵심 쟁점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19년 말부터 4년 동안 조사를 진행해 민간인 사망·상해,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행방불명자·암매장, 북한군 개입설의 허위성, 계엄군 성폭력과 헬기사격 등 상당수 사안에서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 책임자는 특정하지 못했다. 조사위는 책임자를 특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부분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남겼다.

 

이에 따라 ‘누가, 어떤 지휘체계를 통해 시민을 향한 발포를 결정하고 지시했는가’라는 5·18의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5·18서울기념사업회는 특히 정 전 장관이 당시 특전사령관이라는 핵심적인 지위에 있었던 만큼 그가 알고 있던 사실을 생전에 밝혔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5·18서울기념사업회는 과거 정 전 장관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던 사안들도 다시 제기했다. 단체에 따르면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은 2019년 당시 특전사 보안반장이었던 김충립 씨 등을 통해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신군부 핵심 인사들의 움직임과 회의 내용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특히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이 참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발포와 관련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발생한 희생자들의 암매장 의혹과 이후 시신 처리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이 알고 있는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 가운데 상당 부분은 국가 진상조사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사실관계가 최종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결국 정 전 장관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추가로 증언하지 않은 채 사망하면서 당시 신군부 핵심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발포 지휘체계와 암매장 등 미규명 의혹에 접근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 김종배 농성단 대표(전 국회의원)가 정호용 씨 집에 질의서를 전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5·18단체 “사망으로 역사적 책임 소멸 안 돼”

 

5·18서울기념사업회는 이날 정 전 장관이 신군부 집권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국방부 장관, 국회의원 등을 지낸 사실을 거론하면서 “5·18 학살의 대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단체는 또 과거 정 전 장관의 재산 형성 과정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닉자금 유입 가능성 등에 대한 제보와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단체가 이날 입장문에서 제기한 정 전 장관의 구체적인 부동산 보유 규모와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자금 유입설 등은 사법기관의 수사나 판결을 통해 확인된 사실로 보기 어려워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단체는 이를 토대로 과거 추진했던 이른바 ‘5공 부정축재 환수 특별법’ 제정 운동을 다시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5·18서울기념사업회는 “끝까지 학살의 피 앞에 진실을 숨기고 부귀영화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한 채 94살의 천수를 누리다 죽은 정호용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앞에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역사정의 회복 차원에서 7년 전 시작했던 5공 부정축재 환수 특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는 모두 떠났다…5·18 진상규명 ‘기록의 시간’으로

 

정 전 장관의 사망은 5·18 진상규명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도 갖는다.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해 이희성·황영시와 정호용까지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모두 사망하면서 이제 이들의 직접적인 고백이나 증언을 통해 5·18의 미완의 진실을 규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4년 동안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도 발포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핵심 관계자들의 잇따른 사망은 향후 진상규명이 증언보다는 당시 군·정보기관의 문서와 작전기록, 해외 자료 등 객관적 기록을 찾아내는 작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음을 보여준다.

 

실제 5·18 관련 단체들도 정 전 장관의 사망을 두고 단순히 신군부 시대의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록과 자료를 찾아내 미완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호용 전 장관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결정했는지, 당시 지휘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등 46년 동안 이어진 질문은 여전히 남았다.

 

5·18서울기념사업회가 그의 사망을 맞아 “죽었다고 5·18 학살의 책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당사자의 고백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남아 있는 기록과 자료를 끝까지 찾아내 역사적 진실을 완성하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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